"형님, GTX 밀어주세요···MB, 김 지사가 대통령 되면 하시게"

권구찬 선임기자 2024. 3. 2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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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X창시자 김문수가 전한 에피소드
인수위 찾아가 GTX추진 요청했더니
MB표 4대강사업과 동시 추진 난색
'대심도' 용어 어려워->GTX로 바꿔
시속 180km 달리지만 추진은 만만디
역대 정부 속도냈다면 진작 개통
"수도권 출퇴근자에겐 희망 철도"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창시자인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 중 ‘지옥철, 대통령도 같이 타봅시다’라는 도발적 제목의 저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책은 경기도 부천소사에서 첫 국회의원에 도전한 1996년 쓴 것이다. 이호재 기자
[서울경제]

“10여 년 전 동탄 신도시에서 서울역까지 30분 이내에 도착한다고 하니 다들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그것도 지하 깊숙이 고속 열차가 달린다니 더욱 믿기 어려웠겠죠. 이게 지금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습니까.”

수도권 광역 교통망의 ‘게임 체인저’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노선 남부 구간(수서~동탄) 개통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2007년 수도권 GTX 구상을 내놓은 김문수 당시 경기도지사(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의 혁신적 발상이 새삼 주목되고 있다. 김문수 위원장에게 ‘경기지사 시절의 GTX 추진 경험담을 듣고 싶다’고 요청하자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김 위원장에게 개통식 참석 요청을 받았는지부터 물어봤다. 그는 “요청이 없다. 불러주면 당연히 가겠지만. 다만 얼마 전에 시승 이벤트에는 가봤는데 한마디로 대단한 ‘물건’이더라”고 돌려 말했다. 정부는 30일 GTX-A노선 1단계를 개통할 예정이다.

GTX는 김 위원장이 경기지사 시절이던 2007년 ‘대심도(大深度) 급행 철도’라는 낯선 명칭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대심도 철도는 지하 40m 깊숙이 건설하는 철도로 지상권이 미치지 않아 토지 보상비가 별로 들지 않고 직선화가 용이해 시속 180㎞ 이상 고속 운행이 가능하다.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든 획기적 발상이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경기도로서는 서울 출퇴근 문제 해결이 너무 절박했습니다. 지사 선거 때면 늘 교통지옥 해소가 여야 가릴 것 없이 첫 번째 공약입니다.”

2009년 4월 경기도청에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3개 노선 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김문수(가운데) 경기지사. 연합뉴스

그는 ‘지사 재선을 위해 급조한 GTX 구상이 아니냐’는 지적에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지사에 취임한 2006년 7월 당시 이한준 교통개발연구원 부원장(현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을 정책 특별보좌관으로 모셔왔습니다. 이어 경기도에 철도국을 신설하고 철도청 출신 전문가도 영입했죠. 그들에게 미션을 부여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당시 경부고속도로 지하화와 제2경부고속도로 같은 육상 교통 시설도 검토했지만 보상 문제와 공기 지연 같은 난제로 일단 배제하고 철도에서 어떻게든 답을 찾고자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이한준 특보가 “해법이 있다”며 30분 만에 서울 도심에 닿을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들고 왔다고 했다. 바로 대심도 급행 철도였다.

“전문가 자문을 받고 10대 건설사를 불러 모아 대심도 철도에 대한 기술적·경제적 타당성을 타진했는데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건설사들이 돈은 우리가 댈 테니(민자사업) 민원 문제를 해결해달라더군요.”

초기에는 GTX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대심도라는 용어가 너무 어려워 GTX로 변경하고 2009년부터 이 명칭을 썼다고 했다. “원래 GTX의 G는 경기도를 의미했습니다. 한국에는 KTX, 경기도에는 GTX인 것이죠. 한데 서울시와 인천시가 반대할 것 같아 도중에 ‘Great’로 바꿨습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과의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17대 대선 후 이명박 당선자의 취임을 앞두고 인수위원회를 찾아갔습니다. ‘형님, 수도권 교통난을 해소할 기막힌 구상이 있습니다. 대심도 철도(GTX)를 팍팍 밀어주세요.’ 그런데 MB가 보고서를 한참 읽어보더니 ‘좋긴 좋은데···. 이건 김 지사가 대통령 되면 하시게’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건설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 전 대통령이 GTX의 잠재력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자신의 핵심 공약인 4대강 사업 추진에 장애가 될까 봐 GTX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당시 정종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철도청장 출신의 교통 전문가여서 그나마 GTX를 알아보고 2009년 국토부 업무 보고에 ‘대심도 급행 철도’를 반영했지만 구상의 실행은 청와대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노선 남부 구간 개통이 임박한 가운데 5일 영업 시운전하는 GTX 기관사. 연합뉴스

이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견제했다는 항간의 시각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견제는 박근혜 정부가 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국정과제에 GTX가 반영됐음에도 타당성 조사를 차일피일 미뤘죠.”

김 위원장은 “역대 정부가 빨리 움직였다면 지금쯤 3개 노선이 모두 개통됐을 것”이라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쉽다”고 했다. 이어 “GTX가 최고 시속 180㎞로 달리는 철도지만 추진 속도는 그야말로 ‘만만디’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이 늦었지만 GTX가 수도권을 뻥 뚫는 교통 혁명을 가져오고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에게 희망 철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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