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중국 “보안법 역사적 순간”…홍콩 안팎 우려 속 자화자찬
시민을 반역·외세개입 혐의로 광범위하게 엮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홍콩판 국가보안법’의 통과를 두고 홍콩 행정당국과 입법회 의원들은 “안전과 경제를 수호하는 법”이라며 자화자찬했다. 중국 당국과 관영매체도 일제히 환영 의사를 밝혔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 19일 밤 홍콩입법회가 수호국가안전조례(기본법 제 23조)를 전원 찬성으로 가결해 통과시키자 “오늘은 홍콩에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21일 만에 국가안전보장을 위한 법을 제정했지만 홍콩은 26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보안법 도입으로 “안보와 경제를 더 잘 수호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 행정장관 발언은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26년 만에 보안법을 마련했다는 의미이다. 홍콩의 헌법 격인 기본법 제23조는 홍콩 정부가 분리독립·폭동선동·국가전복 행위 등을 처벌하는 법령을 제정할 것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홍콩 정부는 이 조항에 따라 2003년 보안법 제정을 추진했지만 50만명이 법안에 반대해 거리로 쏟아져나오자 보안법 제정을 중단했다. 중국 정부가 일국양제의 모범으로 평가하는 마카오에서는 2009년 보안법을 제정해 이듬해 발효됐다.
홍콩 행정당국은 더는 보안법 제정을 추진하지 않았지만 중국 당국은 보안법 적용이 가능한 때를 기다렸다고 평가받는다.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가 벌어지자 중국은 강경 진압을 지휘한 뒤 2020년 자체 홍콩 보안법을 제정해 홍콩을 압박했다. 홍콩 당국은 2021년 5월 선거제도를 개편해 공직선거 출마 자격을 심사해 ‘애국자’만 출마할 수 있도록 했다.
홍콩보안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입법회는 ‘야당 없는 의회’, ‘애국자들만의 의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평가된다. 의원들은 법이 홍콩의 안전과 질서를 가져오고 투자자를 보호해 경제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서방에서 제기하는 법의 오용과 인권 탄압 우려에 대해 이중잣대라고 비난했다.
친중 성향 정당인 신인민당 도미니크 리 츠킹 의원은 9·11 테러 공격 이후 미국의 애국법 도입을 거론하며 홍콩보안법에 대한 서방 언론의 비판이 이중잣대라고 말했다. 스티븐 호춘 인 의원은 홍콩보안법에 관한 광범위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외부 세력과 언론이 보안법을 호도하고 있다며 “소문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중국 당국의 입장과 동일하다. 국무원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은 20일 “일국양제 사업 발전 프로세스의 중요한 이정표”라며 “국가가 안전해야 홍콩이 안전할 수 있고, 국가가 안전해야 집안도 안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냈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홍콩 국가보안법이 공포·시행된 뒤 홍콩 상황은 혼란에서 질서로 대전환을 이뤘으나 국가안보를 해치는 리스크는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며 향후 더 강력하게 홍콩 사회를 장악할 것임을 시사했다.
대만의 중국 담당 기구인 대륙위원회(MAC)는 전날 ‘홍콩판 국가보안법’의 입법으로 양측 민간 교류 중단 가능성이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국제기구와 인권단체, 서방 정부는 홍콩보안법 통과에 우려의 뜻을 밝혔다. 폴커 투르크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많은 조항이 국제인권법과 양립할 수 없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법안이 통과된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법안이 정부에 대한 반대 목소리와 언론인, 연구원, 시민사회 활동가 및 인권 운동가를 표적으로 삼는 것을 포함해 자의적 오용이 가능하다”밝혔다.
홍콩 주재 캐나다 영사관은 “법안이 국제인권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다”고 비판했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교장관은 “국가안보와 외부간섭에 대한 광범위한 정의는 홍콩에서 사업 하는 사람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베단트 파텔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법안이 홍콩의 폐쇄성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논평했다. 국제 앰네스티는 “가혹한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홍콩 내에서는 보안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명시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국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홍콩 내 외국인 투자자 이탈에 대비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활동가들은 홍콩보안법 관련 페이지를 개설해 재판 상황 등을 남기고 있다. 반면 홍콩부동산개발자협회는 “법이 홍콩의 기업 활동 환경을 더욱 강력하게 보호하고 국제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할 것”이라고 공개 논평했다.
폴 람 팅궈 법무부 장관은 새 법안이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방해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안감은 홍콩 기업인 사이에서 감지된다. 토니 호 인도네시아 상공회의소장은 홍콩 당국에 기업 입장에서 법 조항에 불분명한 회색지대가 있다며 ‘국가보안법 상담센터’를 설립할 것을 촉구했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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