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실패=배임, 유례없는 法체계···무죄율 일반사건 2배 달해"

안현덕 법조전문기자 2024. 3. 2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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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고인물 배임···변화할 때' 세미나] 하태헌 변호사 '명확성의 원칙과 배임죄' 강연
19일 서울경제신문·법무법인 세종 공동으로 개최
법무실 등 관계자 100여명 참석···변화 방안 모색
명확치 않은 범죄 구성 요소···임무 위배가 대표적
판결 엇갈리며 무죄율 7.3%···전체 평균 3.04%
목적 지닌 범죄가 아닌 위험 사태 야기 해도 처벌
日 경우 목적 명시···美 사기·손해배상 등으로 규제
하태헌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 변호사가 19일 서울 광화문 D타워에 위치한 법무법인(유) 세종에서 ‘70년 고인물 배임…변화할 때’를 주제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세종 공동 세미나에서 ‘형법상 명확성의 원칙과 배임죄의 모호성’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권욱 기자
[서울경제]

임무 위배 등 형법상 배임죄가 지닌 모호함을 고쳐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배임죄는 경영 판단의 실패 등을 두고 그동안 법적 판단이 크게 엇갈리는 혐의로 꼽힌다. 동일한 유형의 계열회사 자금 지원 등 사건인데도 1·2·3심의 판단이 엇갈릴 정도다. 범죄 구성 요소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일반 사건보다 무죄율이 두 배가량 높다. 기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며 정상적 경영 판단을 저해하는 이른바 ‘손톱 밑 가시’로 지적되고 있는 만큼 법률 개정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세종은 19일 ‘70년 고인물 배임···이제는 변화할 때’를 주제로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는 배임죄에 대한 바른 변화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각 기업 법무실·준법경영실·법무지원국 등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배임죄는 1953년 제정·시행된 형법과 역사를 함께한다. 경제 발전과 더불어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이나 범죄 요건이 모호하고 범위도 광범위해 다툼의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 법률 개정은 환율 단위 교체 등 단 한 차례만 이뤄졌다. 배임죄를 두고 ‘이현령 비현령(耳懸鈴 鼻懸鈴)’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이날 ‘배임죄의 구성 요건상 모호성에 대한 검토’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하태헌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 변호사는 우선 △임무 위배 행위 △타인의 사무 처리자 △재산상 이익 취득·손해 등 범죄 구성 요건이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고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본인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 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형법상 절도죄가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로 명시하는 바와 같이 범죄행위가 명확히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등법원 판사를 역임한 하 변호사는 “배임은 범죄 구성 요건이 모호하기 때문에 1·2심 판단이 가장 많이 다르게 나타나는 혐의”라며 “그만큼 무죄율도 높다”고 설명했다. 2021년 사법연감 기준 전체 사건의 무죄율은 3.04%다. 반면 횡령·배임죄의 경우 7.3%로 두 배가량 높다.

하태헌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 변호사가 19일 서울 광화문 D타워에 위치한 법무법인(유) 세종에서 ‘70년 고인물 배임…변화할 때’를 주제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세종 공동 세미나에서 ‘형법상 명확성의 원칙과 배임죄의 모호성’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권욱 기자

특히 배임죄의 모호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범죄 구성 요소로 ‘임무 위배 행위’를 꼽았다. 근거로는 앞선 계열회사 자금 지원을 두고 엇갈린 두 판례를 제시했다. 2017년 11월 9일 선고된 대법원 판례에서는 해당 행위가 ‘합리적인 경영 판단의 재량 범위 내에서 행해져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하의 의도적 행위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영 판단이라는 점에서 배임죄를 인정치 않은 것이다. 반면 2009년 7월 23일 판례에서는 ‘설령 동반 부도 사태를 가져온다고 해도 자금 지원을 하면 안 된다’며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계열회사에 대한 동일한 자금 지원이었으나 법원의 판단은 180도 달랐던 셈이다.

하 변호사는 “임무 위배라는 범죄 구성 요소가 모호해 법원의 판단이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며 “판례상 주주 동의를 얻거나, 이사회의 결의가 있었더라도 배임죄라는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타인의 사무 처리라는 범죄 구성 요소에 대해 법원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적용한다면 배임죄 적용 범위는 물론 처벌 가능성도 높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신의칙은 법률관계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 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근대사법 원칙이다.

19일 서울 광화문 D타워에 위치한 법무법인(유) 세종에서 ‘70년 고인물 배임…변화할 때’를 주제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세종 공동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권욱 기자

여기에 배임죄가 객관적 사실 외에 목적·의도가 있을 경우를 뜻하는 목적범이 아닌 위험범(보호 법익에 대한 위험 상태의 야기만으로 구성 요건이 충족되는 범죄)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목했다. 외국은 특정한 기준에 따라 목적범일 경우 죄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으나 국내 법체계는 다르다는 것이다. 하 변호사가 “사후확증편향(결과를 예측할 수 있던 것처럼 생각하는 심리·선입견)에 따라 실패한 경영상 판단을 배임으로 인정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이유다. 실제 일본(형법 제247조)의 경우 배임죄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임무에 위배한 행위를 하고,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할 때’라고 명시한다. 독일(형법 266조)은 ‘법률·관청의 위임, 법률 행위 또는 신용 관계 등에 의해 부과되는 타인의 재산상 이익을 꾀해야 할 의무에 위반하고, 이로 인해 재산상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라고 법률상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주식법 제93조에는 ‘이사가 통상적이고 성실한 주의를 다하였는가의 여부에 관해 의문이 있을 때에는 거증책임을 진다’는 부분을 담고 있다. 미국은 배임죄 규정이 없다. 대신 사기(Fraud) 또는 민사상 의무(Fiduciary Duty)·손해 배상으로 규제한다.

하 변호사는 “배임죄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의사 결정을 신중하게 하고 무책임한 방만 경영을 억제하는 등 긍정적 효과도 있다”면서도 “다만 처벌 기준의 모호함으로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려 자칫 정상적인 경영마저 위축시키는 단점도 있는 만큼 개정 논의 등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현덕 법조전문기자 always@sedaily.com정유민 기자 ymjeong@sedaily.com임종현 기자 s4ou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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