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대 1639명’ 증원 쐐기···의료계 “지역의료 강화? 어림없다” 공분
지방 국립대병원 '빅5' 수준으로 키운다? 현장에선 ‘실효성’ 의문
의대 교수 등 의사단체 강하게 반발···의대생들도 행정소송 의지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증가분 2000명의 80%가 넘는 1639명을 비수도권 대학에 배정하면서 의료계와 교육계가 혼란에 빠졌다. 의대 증원과 함께 지역 거점 국립대병원의 역량을 끌어올려 고사 위기에 빠졌던 지역의료를 소생시키겠다는 정부 취지와 달리,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의대 졸업 후 지역에서 양질의 수련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면 '지역의료 강화'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든 것은 물론, 의학교육 전체가 하향평준화 될 수 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20일 교육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고 경기·인천 지역 대학에 361명(18%)을, 비수도권 대학엔 1639명(82%)을 신규 배정한다고 밝혔다. 7개 거점국립대의 경우 의대 정원이 200명으로 늘어나고, 소규모 의대도 정원이 100명 수준으로 대폭 확대된다. 단 서울 지역 의대에는 신규 정원을 단 한 명도 배정하지 않았다. 비수도권 의대를 중심으로 증원분을 집중 배치하겠다고 강조해왔던 기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정부가 대학별 의대 증원 규모를 못박으면서 지역 및 필수의료 강화릉 위한 여러 지원책을 쏟아냈다. 의대 증원과 배정을 시작으로 필수 및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의료개혁'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특히 지역 환자들이 거주지에서도 양질의 중증·응급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빅5 병원 등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우선 양질의 의학교육 환경 조성을 위해 현재 1200여 명인 9개 거점국립대 의대 교수를 2027년까지 2200명 수준으로 늘린다. 필수의료가 취약한 지역에 더 높은 수가를 적용해주는 '지역수가' 도입을 추진하는 한편, 필수의료 인력·인프라 확충과 역량 강화 지원에 사용할 '지역의료발전기금' 신설도 고려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를 정비하기 위해 지역 거점병원과 병의원 사이 진료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지역의료 혁신 시범사업'도 진행한다.
그러나 사직서 제출까지 결의하며 의대 증원을 강하게 반대해 온 의대 교수와 의사 단체는 정부가 2000명 증원을 확정하자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예산은 물론 시설, 인력 등 의학교육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학생 수만 늘리면 교육 현장이 붕괴할 것이란 이유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정부 발표 직전 입장문을 내고 “더 이상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의료 붕괴 정책을 강압적으로 밀어붙이지 말고 의료가 조속히 정상화될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현명한 결단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연세대의대와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등 연세의료원 산하 의료기관 교수들은 이날 정부 발표 직후 성명서를 내고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증원배정안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의대 증원 배정이 비수도권에 몰린 것을 두고 “교육 여건을 철저히 무시한 정치적 구호”라며 “의학교육현장에서 발생할 참담한 혼란 상황과 이로 인해 국민건강 위협을 초래하게 될 독선적 결정일 뿐”이라고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대한의학회와 26개 전문과목 학회들도 입장문을 통해 "정부의 독단적 결정이 수많은 환자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물론 의학교육과 전공의 수련체계를 마비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인 전공의들이 제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의학 학회가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의료의 미래와 환자 진료에 심대한 타격을 가져올 것"이라며 "그간의 모든 조치를 철회하고 의료 현장의 파탄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충북대를 필두로 경상국립대, 전남대, 경북대, 충남대, 부산대, 전북대 등 내년도 입학 정원 200명을 배정받은 7개 거점국립대의 의대 교수들은 들끓고 있다. 충북의대의 경우 정원이 기존(49명)보다 4배 이상 늘어나 전국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최중국 충북대 의대 교수회장은 "학생 수 50명을 기준으로 교육과정이 맞춰져 있는데 200명을 뽑게 되면 교육이 상당히 부실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4인 가족이 사는 32평 아파트에 17명을 집어넣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실습용 시신, 강의실, 연구 예산 모든 게 부족한데 대책 없이 학생 수 가지고만 얘기를 하니까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의대 증원 추진에 대한 찬반을 떠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고려대의대 교수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조윤정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언론브리핑에서 "대통령의 문제의식 자체는 적합하다"면서도 "증원에 따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대안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조 위원장은 의대 정원 106명으로 최근 리모델링을 마친 고려대의대를 예로 들었다. 고려대의 경우 기존 의대 교육시설을 리모델링하는 데만 4년이 걸렸고, 250억 원이 들었다는 것이다. 조 위원장은 "전국 의대가 2000명 증원을 위해 교육 시설을 늘리려면 건물을 짓는 데만 4~5년은 족히 걸리고 수백조 원의 비용 소요될 것"이라며 "시설은 커녕 가르칠 교수나 인력도 없는 상황에서 내년부터 의대생을 2배 가량 더 받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지역의대를 졸업하더라도 해당 지역에서 수련이 불가능한 현실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 40개 의대 학생들로 구성된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미래 대한민국 의료를 망치는 정부 정책 강행을 규탄한다”며 “정부의 일방적 발표를 절대 인정하지 않으며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해외의사 면허 취득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한 지원사업에 착수하는 한편, 휴학계 수리를 위해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대협은 “휴학계를 수리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반려될 경우 행정소송에 대한 법률 검토를 마쳤다”며 "부족한 카데바로 해부 실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형식적 실습을 돌면서 강제 진급으로 의사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역량이 부족한 의사가 되라는 교육부의 명령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의대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이날 오후 8시 온라인 회의를 통해 전의교협과 만남을 갖고 2000명 증원 확정에 따른 향후 대책을 모색한다. 4개 단체가 한꺼번에 모여 회의를 진행하는 것은 현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 이탈한 이후 처음이다. 특히 대다수 전공의들이 한달 넘게 병원으로 복귀하지 않은 가운데 기성 의사단체와 공식 만남을 갖는 자리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논의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이들은 법리 해석에 따라 의대 증원 배분이 취소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조 위원장은 "전의교협이 의대정원 증원 취소 행정소송을 냈고 결과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며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이 이뤄져 있는 국가 아닌가. (의대 정원 배분 취소 관련) 사법부 판단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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