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그라피티와의 공존 [크리틱]

한겨레 2024. 3. 2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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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여를 지낸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도시 풍경을 꼽자면 단연 그라피티다.

1960년대 후반 미국 빈민가에서 처음 출현한 그라피티는 힙합과 함께 주류문화에 반기를 드는 하위문화로 확산됐지만, 도시 경관을 해치는 골칫거리로도 여겨졌다.

멜버른에서 그라피티는 거리예술이면서 또한 주요 관광자원이다.

거리의 그라피티는 소수만의 특권으로 예술을 사고파는 제도권의 상업성과 엘리트주의에 반기를 들고자 불법도 불사한 대항문화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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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의 옛 콜링우드기술대학 건물에 제작된 키스 해링의 1984년 작 뮤랄. 사진 강혜승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한달여를 지낸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도시 풍경을 꼽자면 단연 그라피티다. 거리를 나서는 순간부터 일상 곳곳에서 그라피티를 마주하게 된다. 건물 외벽은 물론 기차와 트램, 그리고 우체통 같은 다양한 구조물 곳곳을 그라피티가 뒤덮고 있다. 예술의 한 형식이지만 태생이 불법인 탓에 부정적인 이미지 또한 강한 그라피티가 멜버른에서는 공공의 환경과 공존하는 모습이다.

스프레이 페인트 같은 도구로 거리에 문자나 그림을 남기는 그라피티는 대중과 소통하는 예술인 동시에 공공기물을 낙서로 훼손하는 불법행위이기도 하다. 1960년대 후반 미국 빈민가에서 처음 출현한 그라피티는 힙합과 함께 주류문화에 반기를 드는 하위문화로 확산됐지만, 도시 경관을 해치는 골칫거리로도 여겨졌다. 그런 그라피티가 유독 멜버른에서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도시를 차별화하고 있다.

멜버른에서 그라피티는 거리예술이면서 또한 주요 관광자원이다. 시는 공공예술정책으로 그라피티를 관리하며 도심 10곳을 ‘스트리트 아트 걷기’ 장소로 지정해 홍보한다. 그중 ‘호시어레인’은 2004년 우리 안방극장에서 인기몰이를 했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거리에서 자란 주인공의 애달픈 사랑을 그린 드라마에서 연인이 처음 만난 장소였던 호시어레인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 관광객에게 ‘미사거리’로 통한다.

애초의 불법행위를 거리예술이라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관리하는 멜버른에서 그라피티는 무허가 낙서와 허가받은 장소에 그리는 벽화인 뮤랄로 구분된다. 센트럴 북동쪽 콜링우드 캠퍼스 주변은 대학가 특유의 개성 있는 그라피티로 발랄한데 그중 건물 외벽 하나를 차지한 뮤랄은 빅토리아주 문화재로까지 등록됐다. 거리가 낳은 미국 출신의 스타 키스 해링(1958~1990)의 작품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의 옛 콜링우드기술대학 건물에 제작된 키스 해링의 1984년 작 뮤랄. 사진 강혜승

뉴욕 지하철역 광고판에 남긴 불법 드로잉으로 이름을 알린 해링은 제도권에 편입돼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거리예술가였다. 단순하고 두껍지만 유연한 선, 후광 속 아기, 모난 주둥이로 짓는 개 등이 그의 시그니처로, 친근하고 대중적이다. 1984년 빅토리아국립미술관은 그런 해링을 초청해 콜링우드 벽화를 맡겼다. 생동감 있는 윤곽선의 인물 표현을 반복해 표면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특유의 스타일로 해링은 밑그림도 없이 하루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올해로 꼭 40년이 된 해링의 벽화가 갖는 상징성은 크다. 여기엔 합법적 제도 안에 묶인 그라피티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도 포함된다. 거리의 그라피티는 소수만의 특권으로 예술을 사고파는 제도권의 상업성과 엘리트주의에 반기를 들고자 불법도 불사한 대항문화의 산물이다. 엄밀히 따져 주류의 공공예술과는 다르다. 그래서 해링의 작품처럼 공인된 벽화를 거리예술가들은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생전의 해링은 “미술은 소수만 즐기는 엘리트 활동이 아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미술이 내 작업의 지향점”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라피티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했던 해링이다. 대중성과 상업성은 비주류를 자처하는 그라피티의 속성을 위반하는 것일까. 멜버른에서 만난 다양한 형태의 그라피티는 예술의 경계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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