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여인 사랑한 백인 남자 우월감·욕망·편견을 무대로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4. 3. 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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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이 욕망하는 대로 사물을 바라보게 마련이지만 그 대상이 사람일 때 관계는 손쉽게 폭력으로 전락한다.

그에게 송은 아름답지만 연약하고, 신비롭지만 정복하고 싶은 아시아 여성, 동양의 전통 의상을 입은 채 소매를 펄럭이는 나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갈리마르는 깨진 환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송은 그를 속인 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갈리마르가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을 부정하는 것에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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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상 연극 '엠. 버터플라이'
5월 1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엠. 버터플라이'의 한 장면. 연극열전

인간은 자신이 욕망하는 대로 사물을 바라보게 마련이지만 그 대상이 사람일 때 관계는 손쉽게 폭력으로 전락한다.

"난 환상을 선택할 거야."

16일부터 공연 중인 연극 '엠. 버터플라이'는 동양 여성에 대한 백인 남성의 편견와 욕망을 다룬다.

1964년 중국 베이징 주재 프랑스 외교관 르네 갈리마르는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에서 여주인공 초초상의 자결 장면을 연기하는 중국인 배우 송 릴링에게 매료된다. 송 역시 유부남인 갈리마르를 적극적으로 유혹하고 두 사람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격정적 사랑을 한다. "무슈 갈리마르. 진짜 버터플라이가 궁금하면 경극을 보러 오세요. 견문을 넓히셔야죠."

'엠. 버터플라이'는 1904년 초연한 푸치니의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를 변주한 작품이다. 갈리마르는 '마담 버터플라이'의 미군 중위 핑커튼이 일본 여성 초초상에게 했던 것처럼 송을 '버터플라이'라고 부른다. 그에게 송은 아름답지만 연약하고, 신비롭지만 정복하고 싶은 아시아 여성, 동양의 전통 의상을 입은 채 소매를 펄럭이는 나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핑커튼이 초초상에게 그랬던 것처럼 갈리마르는 송과 시간을 보내며 인종적, 젠더적 우월감을 만끽한다. "버터플라이, 버터플라이…." "난 당신의 버터플라이예요."

'엠. 버터플라이'의 인물들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아시아 여성에 대한 백인 남성의 편견을 부각한다. 아시아인들은 늘 강한 힘에 굴복하길 원한다는 대사, 동양인 현지처를 갖는 것을 부러워하는 백인 남성들의 태도 등 동양 여성을 대상화하는 장면들이 반복해 등장한다.

연인을 대상화하는 사랑이 진실될 수 있을까?

일편단심 송을 향했던 갈리마르의 사랑은 송이 그의 환상을 충족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가볍게 무너진다. 갈리마르는 깨진 환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송은 그를 속인 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갈리마르가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을 부정하는 것에 절규한다. "오랫동안 좌절감을 느꼈어. 오랫동안 소리치고 싶었어. 날 봐, 이 바보야."

미국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이 쓴 '엠. 버터플라이'는 1988년 미국 워싱턴에서의 초연 뒤 토니상 최고 작품상 및 연출상, 드라마데스크상 최고 신작상과 연출상을 받고 퓰리처상 최고 작품상 후보에 오른 수작이다. 국내에서는 2012년 초연한 뒤 올해 다섯 번째로 관객을 맞는다. 이번 시즌은 2017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된 개작 버전의 첫 국내 공연이다. 르네 갈리마르 역은 배수빈·이동하·이재균이, 송 릴링 역은 김바다·정재환·최정우가 맡는다.

갈리마르 역을 맡은 배우가 선보이는 마지막 장면은 커튼 등 무대 장치를 활용해 선명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마담 버터플라이'의 초초상을 연상시키며 풍성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공연은 5월 12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진행된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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