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시름 포근히 감싸는 마음속 풍경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3. 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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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빛 하늘 아래 산일까 구름일까.

이런 경험이 모여 작가의 상상에서 탄생한 '구름산' 풍경은 이상향을 담은 무릉도원을 연상시킨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지난 10년간 여러 도시에 머무르며 접한 다양한 자연 풍경을 소재로 한 회화 신작 16점을 선보인다.

화폭에 담긴 장면은 실존하는 자연이 아니라 작가가 자연에서 느낀 위로의 감정을 토대로 장면을 재구성한 상상 속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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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 작가 개인전 '휘슬'
노르웨이 올비크·여수·강릉 등
자연서 받은 영감 그린 회화
성수동 아뜰리에 아키 전시
정유미 작가의 '구름산'(캔버스에 유채, 194×130㎝, 2024) 아뜰리에 아키

에메랄드빛 하늘 아래 산일까 구름일까. 가까이 다가가보니 누군가 몽글몽글 뭉쳐놓은 솜털 같다. 만지면 부드럽게 손을 감싸줄 것처럼. 작가가 자연을 바라볼 때도 그랬다. 어떤 날은 저 멀리 서 있던 산이 성큼 다가와 포근하게 안아주는 것 같은 위로를 받았다. 이리저리 부는 바람은 근심이 담긴 한숨을 멀리 흘려보내 줬고, 바다는 언제나 기대어 쉴 수 있는 어깨를 내줬다. 이런 경험이 모여 작가의 상상에서 탄생한 '구름산' 풍경은 이상향을 담은 무릉도원을 연상시킨다.

정유미 작가(41)의 개인전 '휘슬(WHISTLE·휘파람)'이 4월 27일까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아뜰리에 아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지난 10년간 여러 도시에 머무르며 접한 다양한 자연 풍경을 소재로 한 회화 신작 16점을 선보인다. 화폭에 담긴 장면은 실존하는 자연이 아니라 작가가 자연에서 느낀 위로의 감정을 토대로 장면을 재구성한 상상 속 풍경이다. 초자연적인 장면이지만 어딘가 익숙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앞서 정 작가는 영국 런던에서 유학을 마친 직후인 2015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를 시작으로 노르웨이 올비크(2016년), 전남 여수(2021~2022년), 강원 강릉(2022년) 등을 거치며 예술가 레지던시(입주 작업 공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대학에서 한국화와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초창기에 주로 인물화를 그렸지만, 연이어 바다와 가까운 도시의 레지던시에 참여하면서 점점 자연을 소재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정 작가 그림에 바다가 가진 한(寒)색 계열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때 겪은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정 작가가 전작들에서는 푸른 대자연의 생명력과 경이로움을 이야기했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자연이 주는 포근한 느낌을 집중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작가의 상상력을 한층 더 펼쳐냈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자연 풍경을 마주했을 때 받은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표현하려 했다"며 "사람들이 바다를 찾고 자연을 찾는 이유는 그런 위로를 받고 싶어서가 아닐까. 내 그림에서도 사람들이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붓 끝의 한 올 한 올을 살린 붓 터치다. 정 작가는 산과 골짜기, 바다와 파도, 바람, 섬 같은 자연 요소를 새하얀 솜털처럼 표현했다. 화폭 위 오브제는 하나의 거대한 구름처럼 보인다. 모든 형상은 작가가 사전 구상이나 드로잉 없이 캔버스 앞에 서서 일필휘지로 그려낸 것이다.

오로지 자연 풍경을 떠올렸을 때 감정과 느낌에 의존한 이미지로, 붓질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지지만 정작 화면은 고요한 분위기를 낸다. 화면 속 뚜렷한 색 대비는 끝을 알 수 없는 수평선이나 높은 하늘을 떠올리게 한다.

동양화처럼 물감층을 아주 얇게 쌓아 올린 점도 특징적이다. 아크릴물감은 불투명한 특성이 있어 한 번 덧칠하면 그 아래 그린 그림은 대체로 가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 작가 그림에서는 물감이 붓 끝을 통해 스쳐 지나가면서 솜털 같은 결을 만들어 그 사이사이 틈으로 밑그림이 비친다. 밝은 노란색과 흰색 계열의 붓칠 뒤로 에메랄드과 보라, 파랑 계열의 색이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 신비로운 입체감을 준다.

작가가 관객에게 힌트를 주듯 지은 제목을 작품과 매칭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일례로 바위인지 섬인지 알 수 없는 덩어리 두 개가 서로 기대어 서 있는 작품의 제목은 '기대어 쉬렴'이다. 작품이 마치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듯하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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