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틀막’ 방송심의, 아무 말 대잔치 [저널리즘책무실]

이종규 기자 2024. 3. 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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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이 4일 서울 한국방송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선거방송심의위원회를 규탄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종규│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요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의 ‘활약’이 눈부시다. ‘언론 정화’ 완장을 찬 ‘군기반장’ 같다. 이 두 기관이 이렇게까지 언중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릴 때가 또 있었나 싶다. 가히 심의 권력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그런데 두 기관의 활약상을 전하는 기사들을 보노라면 내 눈을 의심하게 될 때가 더러 있다. 심의위원이 했다고는 믿기 힘든 말들이 자주 눈에 띄어서다. 심의위원이 누구인가. 방송의 공정성 여부에 대해 ‘판관’ 노릇을 하는 이들 아닌가.

지난달 16일 미디어오늘에는 문화방송(MBC) 시사 프로그램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 대해 선방위가 법정제재를 의결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를 읽다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보도와 관련해 한 선방위원이 “여성에 대한 테러”라고 말했다는 대목에서 시선이 멈췄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그날치 선방위 회의록을 찾아봤다.

“대통령 부인이 비난받을 요소가 있다 칩시다. 그런데 그래놓고 나서 그 목사가 방송에 나와서 내가 300만원짜리 명품백 줬다, 대한민국 국민들한테 다 터트리는 거예요. (중략) 그것은 사실은 그 여성에 대한 테러고, 모든 성직자에 대한 또 다른 테러 행위예요. 어느 성경 말씀에 그런 거 하라고 가르쳐줍니까.”

명품 가방 사건을 다루면서 왜 ‘함정 취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냐고 문화방송 제작진을 추궁하면서 한 말이다. 아무리 보도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이게 할 소린가. 더욱이 ‘서울의 소리’가 명품 가방 수수 영상을 공개한 것은 지난해 11월 말이었고, 그날 선방위 심의 대상은 올해 1월 초 방송분이었다. 한달 넘는 시간이 흘렀는데, 김 여사 명품 가방을 언급할 때마다 함정 취재 비판을 ‘복붙’하듯이 되풀이하라는 것인가.

이 선방위원이 그날 내뱉은 또 다른 발언은 좀 더 직설적이다.

“(엠비시에서 의견 진술자로 나온) 두 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냐 하면, 다 본인 생각이에요. 내가 생각할 때 중요도는 대통령 부인이 백을 받은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국민들이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할 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하필이면 그리 해석하는 게 전부 다 뭐냐 하면 민주당에는 유리하고 국민의힘에는 불리한 내용만 가지고 그리 판단하는 겁니다.”

‘민주당에는 유리, 국민의힘에는 불리’, 혹시 이 말에 그의 ‘진심’이 담겨 있는 건 아닐까. 두 발언의 주인공은 그동안 주로 정부 비판 방송들에 대해 법정제재 의견을 쏟아내온 최철호 위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발언 보도에 대한 방심위 심의는 또 어떤가. 회의록에서 류희림 위원장의 발언 몇개를 발췌했다.

“대통령도 인간인 이상 비속어도, 쌍말도 할 수 있다.” “엠비시가 발언을 보도해 오히려 외교 참사를 조장했다는 비판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나?” “엠비시의 선제보도로 피해를 당한 대통령실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대통령실이 정확하게 해명을 안 한 것이 문제라는 문화방송 주장에 대한 반박)

마치 대통령의 대리인이라도 된 듯하다. ‘민간 독립기구’, 맞긴 맞나. 류 위원장은 “정상외교 현장에서 보도는 국익을 우선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이건 또 무슨 개똥철학인가. 국익이 중요하니 대통령 비판을 하지 말라는 건가. 뭐가 국익인지는 누가 판단하나.

방심위와 선방위 회의록에는 이 밖에도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발언이 셀 수 없이 많다. 이렇게 편향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심의 권력을 쥐여줘도 되나 싶을 정도다. 최근 들어선 선방위가 물을 만난 것 같다. 윤 대통령의 ‘재건축 규제 완화’ 발언에 대해 ‘실현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보도하는 건 “비판의 수준을 넘은 것”(손형기 선방위원)이다. “차라리 귀추가 주목된다 이 정도만 해도 어떨까 싶다”는 깨알 같은 조언도 뒤따른다. 대통령의 부동산 보유세 발언에 대한 비판은 선거와 관련이 없다는 방송사 쪽의 항변에는 “야당에서 내세우는 것 중에 주요한 이슈가 정권심판론이다. 그러면 정부에서 하는 정책들에 관련해서 이게 선거에 영향을 주는 거다”(최철호 선방위원)라고 반박한다. 참으로 해괴한 논리다. 선거 기간에는 정부 정책에 어떤 비판도 하지 말라는 건가.

선방위는 최근 일기예보에 ‘파란색 1’ 그래픽을 썼다는 이유로 문화방송에 대한 법정제재를 예고했다. 어련하겠는가. 여권에 불리한 보도에는 거의 알레르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다수이니. 이러다 혹시 대통령 부부 닮은 패널 출연시켰다고 법정제재?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경험하는 시절이니,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한들 이상할 게 뭐가 있겠나.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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