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 진단, 17년만의 금리인상 의미는?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2024. 3. 2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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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철구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강철구 교수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는 국가였다. 그런 일본이 3월 17~18일 이틀간 일본은행(BOJ)의 금융정책결정회의를 통해 2016년 이후 지속되어 왔던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일본은행의 판단에 대해 적절한 조치였다고 평가하면서 향후 일본은행과 기동적으로 협력하며 정책운영을 펼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본은행이 취한 것은 마이너스 금리 해제뿐만이 아니다. 수익률곡선제어정책(YCC, Yield Curve Control)도 폐지하는 한편, 상장투자신탁(ETF)의 신규 구입도 정지하겠다고 결정했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이 해제된 것은 7년만이지만, 2007년 2월 이후 약 17년 만의 금리인상이 이뤄지면서 이제는 '금리가 없던 세계'에서 '금리 있는 세계'로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지금까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했던 걸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1990년대 이후부터 지속되고 있는 디플레이션이 2000년대 들어와서도 탈피하지 못하자 일본 정부는 2001년 3월 월례경제보고에서 디플레이션을 인정했는데, 이때 당시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물가안정 목표 2%였고 이것이 달성될 때까지는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국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현재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 잔고 총액은 1000조엔이 넘는데 그중 일본은행이 떠안고 있는 장기 국채는 전체의 50%가 넘는 약 580조엔에 이른다. 만일 금리가 1% 인상될 경우 약 29조엔, 2% 인상시에는 약 53조엔의 추가 부담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금리를 인상해서 발생할 부작용과 손실보다는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유지해서 발생할 부작용과 손실이 더 적을 것이라고 판단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해도 될 만큼의 조건이 다 충족되었는가?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해제의 전제로 내건 조건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2%대 물가상승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는 안정적인 임금 인상을 하고 있는가인데, 이 두 가지 목표치가 만족할 만큼 달성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 물가 상승이 기업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고, 임금 상승이 다시 물가에 반영되는 선순환이 시작되고 있다는 평가다.

(도쿄 AFP=뉴스1) 정지윤 기자 = 19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에서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이날 17년 만에 금리를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2024.03.19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도쿄 AFP=뉴스1) 정지윤 기자

그렇다면 이 두 가지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첫째, 물가상승률 2%는 목표치를 넘어 이미 3%를 넘어섰다. 지난 2023년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3.1%로, 1982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올해 물가상승률도 일본은행 목표치인 2%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임금인상률이다. 2023년 4월, 기시다 정부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경단련(경제단체연합회)를 압박해서 3.58% 인상을 끌어냈다. 그런데 올해는 5.28%나 올렸다. 춘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대기업들이 정부가 잠정적으로 제시했던 4% 이상의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5%대 임금인상률은 1991년(5.66%) 이후 33년 만으로, 이것이 마이너스 금리 해제의 판단에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정부나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조건은 갖추었다고 일본은행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토요타는 4% 인상을, 혼다는 5.6%, 역시 자동차 메이커인 마즈다도 6.8%나 인상했다. 통신사인 KDDI는 2024년 정사원과 계약사원 모두 평균 6%의 임금상승을 제시했고, 대기업으로선 드물게 신일본제철은 14.2%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오사카가 본사인 에너지를 취급하는 '에어 워터'란 기업은 2024년 4월 입사 신졸사원의 초임금을 13% 올렸다. 그래봤자 26만엔이지만 2년 연속 올리면서 좋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원 273명의 IT 기업인 '드림 아트'는 대졸자 임금을 작년에 비해 44% 인상했다. 물론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임금인상도, 신입사원 뽑는 것도 어려워 임금인상에서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분위기는 인플레이션 사회로 이미 전환된 듯하다.

그렇다면 일본의 금리 인상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까? 사실상 금리인상이라고 해봐야 겨우 0.1%포인트 인상이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금리인상이 환율에 영향을 주어 엔저현상이 멈추게 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과 경합하고 있는 재화와 서비스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감 역시 섣부를 뿐이다.

다만, 지금의 금리인상 과정에서 일본의 행정절차와 판단력 등을 살펴볼 필요는 있다. 즉 일본은 과거 버블경제로 오랜 기간 디플레이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서 자신감도 결여되고 IT 및 디지털사회로의 전환이 늦어진 쓰라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뭐든 신중하게, 그러나 장기적으로 진행하려는 성향이 더 강해졌다. 확실한 시그널이 있기 전까지는 다른 나라 경기가 좋아졌다고 덩달아 흥분해서 정책을 변경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관민 협력관계이다. 기시다 정부가 작년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임금인상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는데, 기업들이 정부의 요구를 잘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하나를 요구하면 둘을 들어주는 모습도 보인다. 올해도 막상 뚜껑을 열기도 전에 기업들의 임금인상은 예상치를 뛰어 넘었다. 그러다 보니 노동운동도 춘투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메이지유신 이후부터 일본은 정부와 기업 양자가 상호 의존적이고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는, 소위 '일본주식회사'(Japan.Inc)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하나 보다. 이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경기침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또 일본 부흥을 꿈꾸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정부와 기업의 협력적인 관계는 우리가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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