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선수에게 사태 해결 떠넘긴 축구협회, 어른다운 태도는 어디에?
카타르 아시안컵 기간 선수단 갈등의 중심에 섰던 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이 2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사과의 뜻을 밝혔다. 현장 취재진과 질의응답은 없었다.
이튿날 태국과의 월드컵 지역 예선 홈 경기를 앞두고 선수단에 대한 비난 여론을 누그러뜨리고 팀의 결속력을 다지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사전에 대한축구협회와 합의되지 않았다는 말이 흘러나오면서 협회가 이번에도 선수를 비난 여론의 방패막이로 세우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협회는 앞서 지난 18일 황선홍 임시 감독 체제 첫 소집 훈련일 당시 20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강인이 선수단 갈등 사태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현장 취재진은 이강인과 사전 협의가 된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후 사전 협의는 없었다는 말이 흘러나오면서 협회를 향한 비난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협회가 이강인의 자의에 의한 선택이 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협회 직원의 유니폼 뒷돈 거래 의혹까지 터진 상황에서 비난 여론 무마용으로 이강인 사과문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이강인이나 이날 공식회견에 나선 주장 손흥민(32·토트넘) 모두 선수단 갈등 사태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 뜻을 밝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선수단 비난 여론을 누그러뜨릴 수 있고, 태국과의 경기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회관계자는 이날 이강인에게 강제로 사과를 종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이강인이 원래 전날 공항에서 인터뷰를 하려던 것을 현장 통제가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협회가 반대했다”며 부인했다. 문제는 선수단 갈등을 비롯해 대회 기간 협회 직원의 카드놀이 참여, 유니폼 뒷돈 거래 의혹 등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정몽규 협회장 등 고위급 인사들이 오래도록 침묵을 지켰다는 데 있다. 앞으로도 협회를 향한 비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수단 갈등의 실타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수들이 풀었다. 이강인과 손흥민은 직접 대화를 통해 앙금을 풀었고, SNS 사과문까지 발표하며 선수단 갈등을 일단락지었다. 앞서 손흥민은 대표팀을 그만 둘까하는 생각까지 했다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기간 협회는 선수단 갈등 사태에 대한 진상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았고, 선수들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자제해달라는 등 선수단 보호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팬들은 손흥민을 지지하는 쪽과 이강인을 옹호하는 쪽으로 갈려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협회가 진상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으면서 선수단 갈등 당시 상황에 대한 갖가지 추측, 자극적인 묘사가 흘러나오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더 깊어졌다. 서로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왜곡된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팬들 간 논쟁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선수단 갈등의 책임을 온전히 선수들에게만 돌리면서 협회가 비난 여론을 회피하려 한다는 의혹의 시선 또한 커지고 있다. 온라인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선수단 갈등 논란의 꺼져가는 불씨를 협회가 다시 살렸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정몽규 협회장의 모습은 정작 보이지 않는다는 질타 글도 많이 보인다. 일부 누리꾼들은 태국전 당일 특정 경기 시간대에 “정몽규 협회장 OUT”구호를 외치자며 독려하고 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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