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병수당 ‘도덕적 해이’ 논란…‘아픔의 증명’으로도 부족한가 [왜냐면]
최홍조 |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준) 정책위원·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감기 때문에 쉬어 본 적 있나요? 동네의원 갈 시간 없어, 직장 근처 약국에서 약만 산 적 있나요? 아픔에 대한 기억과 경험은 서로 다르다. 나이에 따라 다르고, 직장 따라, 직위에 따라 다르며, 사는 동네의 영향도 받는다. 한국노동패널 연구를 보면, 아파도 참고 일한 사람들의 비율은 불안정노동자가 더 높았다.
재작년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체한 한 포럼에 참여한 노동자는 “쉬고 싶어도 잘릴까 봐 못 쉬었다. 제가 쉬면 동료가 힘들어지니…”라며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함께한 노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희가 제일 힘든 줄 알았어요. 근데, 여기 와 보니, 아파도 못 쉬는 형편은 우리만이 아니었어요.” 아프면 죄인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현재의 한국 사회를 잘 설명한다.
업무상 재해는 아니지만 다치거나 아파서 일하기 힘들 때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 일부를 지원하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10개 지역에서 진행 중이다. 오는 7월부터는 농어촌 4개 지역을 추가해 3단계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당초 계획을 보면, 정부는 내년부터 상병수당을 전국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책 시행을 위한 법 제도 개선과 절차 준비에 대한 소식은 잘 들리지 않는다.
상병수당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다. ‘아프면 쉴 권리’라는 화두가 코로나19와 함께 유행했지만, 구체적 제도는 이보다 복잡하다. 이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아픔의 증명’과 관련 있다.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전에 오용부터 걱정하며 발전했다. ‘신청주의’라는 오명은 가난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절차에 대한 비난이었다. 상병수당 제도의 설계과정도 다르지 않다. 이제 겨우 시범사업 2년차를 경과하고 있는데, 벌써부터 도덕적 해이에 대한 논란이 시작됐다. 그런데 아프면 쉴 권리 보장의 과정이 ‘도덕적 해이’라는 논란과 양립할 수 있는지, 이론적 논란이 있다. 상병수당을 도덕적 해이라는 단어와 함께 다루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일하는 사람은 ‘꾀병’을 부려야 하고, 소득이 줄어들 각오(현재는 최저임금의 60%)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꾀병을 의사가 알아채지 못해야 한다. 이 과정을 무사히(?) 통과한 일부 사람만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상병수당을 받을 수 있다. 도덕적 해이 논란을 이렇게 살피면, 딱히 합리적 걱정이 아니다.
아파서 학교를 결석하거나, 직장을 쉬었을 때, 동네의원에서 진료확인서를 발급한 적 있다. 더러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진단서를 받기도 한다. ‘의사’가 ‘아픔’을 판단하는 공식적 절차는 이미 모두에게 익숙하다. 그런데 상병수당을 위한 별도의 ‘아픔 증명’ 절차를 정부가 마련하고 있다. 뭔가 어색하다. 의사의 진단이 ‘아프다’임에도 노동할 수 있는지 따지겠다는 의도는 아니길 바란다.
2022년 12월 상병수당 1년차 시범사업의 결과 보고서가 발표됐다. 이 보고서는 ‘아픔 증명’ 절차에 대한 국외 사례도 잘 분석해 담았다. 유럽의 경험은 대체로 유사하다. 의사는 ‘아픈지’ 판단할 뿐, ‘노동 불능’을 판단하지 않는다. 모든 의사는 이미 ‘아픔’을 진단할 자격을 갖췄으므로 상병수당의 진단서 발급이 가능하다. ‘아픔 증명’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기 위해, 일정 기간(스웨덴, 프랑스는 최대 30일) 우선 쉬고, 연장 때 재인증받는 절차를 거친다. 무엇보다 유럽의 상병수당 제도는 쉬고 난 ‘이후’에 주목한다. 질병으로부터의 회복과 노동 현장으로의 복귀가 중요한 과제다. 회복과 노동 복귀를 위한 방향으로 의료 인증 제도가 발전해 왔다.
그런데, 한국의 논의는 뭔가 방향 설정이 다른 것 같다. 한국의 상병수당 제도가 자칫 아파서 쉬기 ‘이전’의 문제에 너무 집중하는 것은 아닌지, 논의가 ‘아픔의 증명’에 너무 매몰되지 않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파서 쉬는 것은 ‘권리’이지 ‘혜택’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픔은 죄가 아니다. 이것이 상병수당 제도 설계와 논의의 출발선이 돼야 한다. ‘아픔 증명’에 불필요한 절차가 남발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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