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김건희? 국민 개·돼지로 보나” “대통령실 있는 곳인데 국정 지원해야”
대통령실 있는 곳, ‘지원론’ 대 ‘심판론’ 대결
총선을 목전에 둔 20일 수도권 민심이 심상찮다. 미세한 여론 변화가 후보의 당락을 결정 지을 판이다. 그 중에서도 눈여겨 볼 곳은 서울 용산이다. 21대 총선에서 서울 49개 선거구 중 가장 적은 표 차이로 승부가 결정됐다. 당시 권영세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는 890표 차이(0.66%)로 강태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이겼다. 대통령실 이전 후 ‘신정치 1번지’로 부상했지만, 이태원 참사의 아픔이 채 아물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용산에선 언덕 위 실핏줄처럼 퍼진 골목마다 복작복작 여론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권 후보와 강 후보가 다시 맞붙는다. 권 후보는 검사 출신으로 서울 영등포을·용산에서 4선 의원을 지냈고,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윤석열 대통령과는 서울대 법대 재학 당시 형사법학회 활동을 같이한 45년 지기다. 강 후보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서울특별시 행정1부시장을 지냈다. 2020년 1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영입 제안을 받아 입당했다. 용산구민들은 두 후보를 어떻게 평가할까. 지난 19일 들어봤다.
용산은 미군기지가 있던 곳이 장벽이 돼 생활권이 동서남북으로 나뉜다. 그중 북쪽에 해당하는 청파동은 상대적으로 진보세가 강하지만 매번 투표율은 하위권이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청파동 주민들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관련한 논란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통령실이 용산에 있다는 상징성 때문이라도 투표에 나서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파동 골목, 반지하 봉제공장에서 원단을 송곳에 꿰고 있던 김재영(65)씨는 이번 총선이 정권에 대한 심판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 탄압이 치가 떨릴 정도로 심각하다”며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의) 회칼(테러 발언) 사건을 보라. 완전 독재”라고 말했다. ‘명품백 수수’ 논란이 불거진 윤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도 “잘못한 것에 대한 사과를 안 하지 않나”라며 “얼버무리고 넘어가는데 어느 국민이 그걸 용납을 하겠나”라고 지적했다.
용산에서 평생을 살아온 프리랜서 김다현씨(34)는 “대통령실이 여기로 왔으니 용산에선 파란 당(민주당)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진짜 민심이 어떤 건지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꼭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근 (이종섭) 호주대사와 관련한 대통령실의 대응을 보고 국민을 대체 뭘로 알고 대응하는 걸까 생각했다”며 “김건희 여사 같은 경우도 대응을 안하면 잊힐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국민을 개돼지라고 생각하는 건가 싶다”고 말했다.
용산 서부권인 원효로1동은 스윙보터 지역이다. 대통령실로 향하는 육교에 서면 허름한 주택들 사이로 높다란 아파트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이질적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에선 지난 총선 민주당 강 후보가,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 대통령의 득표가 더 많이 나왔다. 바로 앞에 대통령실이 옮겨오면서 여론 변화가 궁금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원효로1동 아파트에 거주하는 박동숙씨(68)는 이번에도 국민의힘 후보를 뽑을 생각이다. 박씨는 “대통령실이 여기 있지 않느냐”라며 “용산이 서울의 중심인데 국정을 도와줄 수 있는 여당 후보가 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주장하는 ‘종북세력 척결’ 주장에도 공감을 표했다. 그는 “지금 총선은 반대한민국 대 친대한민국”이라며 “윤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이 왜 저렇게 하느냐면 살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임모씨(82)는 이전까지는 보수 정당에 투표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뽑을까 고민 중이다. 대통령실 이전은 50년 동안 이곳에서 장사해온 임씨가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는 데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에게 달라진 점이 있냐고 묻자 “주말에 시위를 하니까 동네가 너무 복잡해졌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이태원1동은 지난 총선·대선에서 보수정당 후보가 각각 14.94%포인트, 22.48%포인트 앞설 정도로 보수세가 강한 곳이다. 그러나 지금 이태원1동 주민들의 마음은 굳게 닫혀있다.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후 상권이 침체됐는데 정부의 대응은 미흡하다는 평가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무투표’로 분노를 대신할 생각이다.
건물 외벽의 전기 계량기를 확인 중이던 50대 자영업자 신모씨는 총선 투표 의사를 묻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신씨는 투표마다 보수 정당 후보를 뽑았지만 이번엔 아예 투표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공무원들이 이태원 사건이 터지고 나서 밀집 지역을 단속한다고 하는데 자영업자들이나 가게하는 사람들한테는 피해가 크다. 도움이 되는 대책은 전혀 없다”며 “그래서 다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지난해 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지만 여전히 구청장직을 유지 중인 박희영 용산구청장에 대해서는 “다 싫어한다”며 “그때 사건 이후로 무슨 날만 되면 인구 밀집 지역이다 해가지고 조끼 입고 다니고 그런다. 상권 활성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태원1동에 세를 놓고 사는 이모씨(73)는 “이태원 사고(참사)로 이곳에 사람이 많이 없다. 장사가 안 돼서 사람들이 엄청 힘들어 한다”며 “사람 많이 오게 해주는 쪽을 뽑을 것”이라고 했다.
두 후보는 어떤 각오로 이번 총선에 임하고 있을까. 권 후보 캠프 관계자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글로벌 랜드마크화, 조속한 철도 지하화를 공약하며 “용산 초선이라는 초심을 끝까지 간직하며 용산의 숙원사업들을 끝까지 확실히 해결하는 데 모든 경험과 역량을 쏟아 내일이 기대되는 용산을 만들겠다”고 했다. 강 후보 캠프 관계자는 “대통령실 이전으로 신정치 1번지가 된 용산은 윤석열 정권 심판 1번지가 될 것”이라며 “반드시 승리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한 이태원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지난 총선 용산에서 3.18%를 득표했던 녹색정의당은 이번 총선에는 후보를 내지 않았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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