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호주, 관계 개선으로 '실리외교'…'가치외교' 윤 정부와 다른 행보

이재호 기자 2024. 3. 2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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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외교부장 7년 만에 호주 방문한 중국 최고위급 인사…호주 "협력할 부분과 지켜야 할 부분 현명하게 관리할 것"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중국의 고위급 인사로는 7년 만에 호주에 방문해 외교장관회담을 가졌다. 양측 정부가 '가치외교'를 기치로 미국을 포함한 서방에만 공을 들이는 한국 정부와는 달리 '실리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20일 중국 외교부는 왕이 부장이 호주 수도 캔버라에서 페니 웡 호주 외교통상부 장관과 '제7차 중국-호주 외교·전략 대화'를 가졌다고 밝혔다. 왕 부장은 "시 주석이 2022년 11월 주요 20개국(G 20) 정상회의 참석 중 앤서니 노먼 앨버니지 총리와 만나 양국 관계 개선을 가속화하는 데 중요한 정치적 합의를 도출했다"며 "보다 적극적 자세로 성숙하고 안정적이며 성과 있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 부장은 이번이 호주 외교장관과 여섯 번째 만남이라며 "만날 때마다 양측의 신뢰가 1점씩 높아지고 관계가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것이 끊임없이 신뢰를 높이고 의혹을 해소하는 긍정적인 프로세스"라고 말했다.

이어 왕 부장은 "지난 10년 동안 중국-호주 관계의 급격한 변동은 우리에게 배워야 할 교훈을 줄 뿐만 아니라 소중한 경험을 축적했다"며 "가장 근본적인 것은 상호 존중을 견지하고 이익과 상생을 높이는 것이며, 독립과 자주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만과 홍콩, 티베트, 남중국해 등에 대한 중국의 원칙적 입장을 설명한 뒤, 호주와 중국 간에는 역사적 원한이 얽혀 있지 않고 근본적 이해 충돌이 없으며 공통의 이익이 차이보다 훨씬 크다고 밝혔다.

왕 부장은 "국가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하는 국제법의 기본 준칙을 실천하고 서로의 핵심 이익과 주요 관심사를 존중하며 양국 관계의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이며 건강한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호주가 시장경제 원칙과 공정한 경쟁 규칙을 유지하고 중국 기업의 호주 투자 및 운영을 위한 공정하고 투명하며 차별 없는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20일(현지시각) 왕이(왼쪽) 중국 외교부장과 페니 웡 호주 외교통상부 장관이 호주 수도 캔버라에서 회담을 가졌다. ⓒ중국 외교부

<AP> 통신은 웡 호주 외교통상부 장관이 "호주와 중국의 안정적 관계는 단지 지금만이 아니라 계속돼야 한다. 이는 그러한 과정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회의"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호주는 언제나 호주일 것이고 중국은 언제나 중국일 것"이라며 양측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부분에서 협력할 것이고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부분에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차이들을 현명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말해, 공동 이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웡 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지난 2월 중국의 비공개 재판에서 간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은 호주인 양헝쥔의 사건도 제기했다. 그는 많은 호주인들이 이번 판결에 충격을 받았으며 정부가 양헝쥔에 대한 지지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양국 관계가 최악이었던 2020년 와인, 대하 및 일부 육류에 대해 무역관세를 부과하며 호주에 약 200억 달러 손실을 입혔는데, 이날 회담에서 이를 철폐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웡 장관은 "우리의 와인과 해산물, 고기 등이 중국 시장에서 어떠한 장애물도 없이 접근이 가능하다면 중국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이건 두 나라 모두에 이익"이라고 말했다.

양국은 지난 2014년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 경제 분야에서의 우호적 관계를 가져갔다. 그러던 중 2018년 자유당 스콧 모리슨 총리가 집권하면서 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호주 정부가 자국의 5세대(5G) 통신망에 중국산인 화웨이를 배제하면서 갈등이 본격화됐는데, 이후 2019년 호주는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 비공식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에 합류하면서 대중국 노선의 변경을 명확히 했다.

또 2021년 9월에는 미국, 영국이 호주의 핵잠수함 보유를 돕는 것을 골자로 한 오커스(AUKUS) 동맹을 맺기도 했다. 이에 중국은 호주산 와인과 육류 등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2022년 5월 호주의 정권이 교체되면서 중국과 관계에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중국은 앨버니지 총리 취임 이후 호주에 부과했던 고율의 관세를 철폐하면서 관계 개선분위기를 마련했다.

이후 2022년 웡 장관이 베이징에 방문해 왕이 부장과 회담하고 지난해 11월 앨버니지 총리가 호주 현직 총리로는 2016년 7월 이후 7년 만에 중국에 방문하면서 양측 관계가 해빙기를 맞게 됐다.

왕이 부장의 이번 방문은 지난 2017년 리커창 당시 중국 총리가 말콤 턴불 호주 총리를 만난 이후 호주를 방문하는 최고위급 중국 인사다. 양국 외교장관은 리창 현 중국 총리의 호주 방문 계획이 "궤도에 올랐다"며 "2024년 중반으로 예상된다"고 밝혀 이후 고위급 인사 방문을 통한 관계 정상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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