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삼성’ 아닌 공무원 조직으로 전락”… ‘467만 동학개미’ 삼성전자 주총장서 쏟아진 주주들의 우려는
올해 처음 경영진 13명 앞에 나와 질의응답
전대미문의 적자 반도체 사업 우려 질문 쏟아져
경계현 사장 “근원적인 경쟁력 반드시 확보할 것”
“경영진은 이렇게 실적을 망가뜨리고도 사퇴할 생각이 없습니까?”
“SK하이닉스 주가는 계속 오르는 반면 삼성전자 주가는 7만원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대책이 뭡니까.”
“HBM(고대역폭메모리)도 경쟁사에 밀리고, 보이지 않는 사업 손실이 많은 데도 뚜렷한 타개 방안이 안 보입니다.”
20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들은 경영진을 향해 날 선 질문과 지적을 쏟아냈다. 약 3시간 동안 진행된 주총에서는 지난해 전대미문의 적자를 낸 반도체 사업 경쟁력과 박스권에 갇혀있는 주가 관리 대책을 묻는 목소리가 높았다. 삼성전자는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실적을 개선시키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 남녀노소 주주들 “회사 미래 걱정돼 왔다”
이날 주총에는 467만명의 동학개미 가운데 600여명이 직접 현장에 참석했다. 지난해 경기 불황과 회사의 실적 부진이 겹쳐 삼성전자 소액주주는 1년 새 110만명 넘게 줄었으나, 주총장에 모인 주주 규모는 전년과 비슷했다. 백발노인부터 부모와 함께 온 초등학생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주주들이 삼성전자의 미래 경쟁력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24년차 삼성전자 주주인 이모(65)씨는 “예전 같은 ‘혁신의 삼성’이 아니라, 해가 갈수록 공무원 조직으로 전락하는 모습이 우려돼 난생처음 주총장에 와봤다”며 “SK하이닉스에 HBM도 밀리고, 메모리와 시너지를 내겠다고 시작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 회사의 대책을 제대로 들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20대 이재혁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삼성전자 주식을 사모아 매년 주총장에 오고 있다”며 “지난해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 출하량이 13년 만에 애플 아이폰에 밀렸는데, 반도체부터 모바일까지 총체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우려돼 직접 질문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전날 경북 경주에서 아버지와 상경한 조승우(13)군은 “작년에도 왔었는데 올해는 어떤 게 달라졌을지 궁금하다”며 “삼성전자가 사업을 더 잘해서 배당을 더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23년 기준으로 전년인 2022년과 같은 연간 9조8000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 경영진 13명 앞에 나와 질답… 반도체 사업에 질문 쏠려
삼성전자는 의장을 맡은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을 비롯한 경영진 13명이 앞에 나와 주주들의 질문에 답하는 ‘주주와의 대화’를 올해 처음 신설했다.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은 건 삼성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경계현 DS부문장(사장)이었다. 한 주주는 “작년 반도체 사업에서 14조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 올해는 정말 개선이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경 사장은 “근원적인 경쟁력이 있었다면 업황과 무관하게 사업을 잘했을 텐데, 회사가 준비를 못한 부분이 있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경 사장은 “올해는 근원적인 경쟁력을 회복해서 시황을 덜 타는 사업을 만들어 갈 것”이라며 “사업적으로 보면 올해 1월부터는 적자에서 벗어나 흑자 기조로 돌아섰고, 이 자리에서 액수를 말하긴 어렵지만 올해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감산 타이밍이 늦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경 사장은 “앞으로 전략적으로 영리하게 생산과 투자를 관리하겠다”며 “경쟁력 우위를 필히 달성해서 올해 말이나 내년부터는 사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며 고객사와 잘 협력해 나가면서 과거처럼 경쟁력 있는 삼성전자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답했다.
“근원적인 경쟁력”을 수차례 강조한 경 사장은 오는 2030년까지 기흥 R&D 단지에 20조원을 투입하는 등 선단 공정기술과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해 반도체 세계 1위 자리를 되찾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경 사장은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얻은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투자와 체질 개선 활동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확보된 재원을 연구개발에 재투자해 성장 기반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미래 사업 전략과 관련해서는 “D1c D램, 9세대 V낸드, HBM4 등과 같은 신공정을 최고의 경쟁력으로 개발해 다시 업계를 선도하고 첨단공정 비중 확대와 제조 능력 극대화를 통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방침”이라며 “어드밴스드(첨단) 패키지 사업은 올해 2.5D 제품으로 1억달러 이상 매출을 올리고 실리콘카바이드(SiC)와 질화갈륨(GaN) 등 차세대 전력 반도체와 증강현실(AR) 글래스를 위한 마이크로 LED 기술 등을 적극 개발해 2027년부터 시장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사의 추격으로 삼성전자의 사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주주들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한 주주는 “최근 파운드리 후발주자인 미국 인텔이 1.4나노 공정 계획을 발표했는데, 경영진은 이것이 위협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에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은 “1.4나노 개발은 TSMC, 인텔, 삼성전자 모두 로드맵에 포함된 내용”이라며 “인텔과 비교하면 삼성은 중앙처리장치(CPU)뿐 아니라 모바일 AP, 시스템온칩(SoC), 그래픽처리장치(GPU), 오토모티브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공급한 파운드리 필드 레코드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 “횡보하는 주가 대책 마련 시급” 지적 잇따라
이날 주총에서는 부진한 실적 탓에 횡보하고 있는 주가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한 주주는 “실적 위주의 경영을 한 이병철 창업주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오늘 주총장에 나온 임원들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싶다”며 “실적을 이렇게 망가뜨리고도 사퇴할 생각이 없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한 부회장은 “말씀하신 부분 잘 새겨듣겠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가 발전할 수 있도록 임직원 전체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인수합병(M&A)을 비롯한 주가 부양 대책을 묻는 말에 한 부회장은 “올해는 반도체 시장과 IT 수요 회복이 기대되는 만큼 AI용 반도체에 적극 대응하고 AI 스마트폰 판매 확대 등으로 견조한 실적을 달성해 주주가치 제고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M&A와 관련해서는 많은 사항이 진척돼 있고 조만간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파업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삼성전자 노조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나왔다. 한 부회장은 “회사는 언제나 대화의 창을 열어두고 성실하게 소통에 임해 노조가 파업에 이르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다만 회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파업할 경우 관계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영 생산 차질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안건으로 상정된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과 조혜경 한성대 AI응용학과 교수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비롯해 재무제표 승인, 이사 보수한도 승인,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은 모두 원안 가결됐다.
올해 주주와의 소통을 강조하고 나선 삼성전자는 주총장 곳곳에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업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2년 전 삼성 호암상을 받은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인 ‘하트하트 오케스트라’가 로비에서 클래식 연주를 이어갔고, 로비 곳곳엔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사회 공헌 프로그램 부스가 세워졌다. 삼성전자의 스마트공장 지원 사업으로 제조 기술 노하우를 전수받은 중소기업 12곳과 삼성전자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C랩’ 출신 스타트업 7곳은 직접 부스에 나와 삼성전자 주주들에게 사업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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