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가해자, 분리는커녕 승진”···여수공항서 ‘2차 가해’ 의혹
가해자 승진 후 소통 상황 늘어···노동청 진정
회사 “외부 기관 조사 중이라 답변 어려워”
여수공항에서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피해자 분리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피해자들이 2차 가해를 당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피해자들은 괴롭힘 행위자인 선임을 타 공항으로 전보할 것을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해당 선임은 징계를 받고도 되레 승진해 피해자들과 한 곳에서 일하고 있다.
20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한국공항공사 자회사인 A사는 지난해 11월 직장 내 괴롭힘으로 ‘견책’ 처분을 받은 선임 직원을 피해자들과 적절히 분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4월 여수공항에서 일하던 피해자 B씨와 C씨는 팀 내 최고참인 D씨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회사에 신고했다. 피해자 C씨는 자신이 다른 팀에서 왔다는 이유로 D씨가 “C랑 말하지 마라”며 자신을 따돌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업무 관련 질문에 답해주지 않거나 인수인계를 하지 않는 등의 행동이 이어졌다. B씨는 D씨가 “C씨에겐 말하지 말라”며 따돌림에 동조하게 했다고 했다.D씨는 그해 11월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돼 ‘견책’ 징계를 받았다.
피해자들은 회사에 D씨의 전보요청서를 제출했다. 국내선만 있는 여수공항은 크기가 작아 서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수공항에서 일하는 A사 직원들은 55명 정도에 불과한데, 사무실 겸 대기실은 방 한 곳뿐이다. 피해자들은 A사가 여러 공항에 지사를 둔 만큼 D씨를 다른 공항으로 보낼 수 있다고 봤다. 과거 여수공항에서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가 다른 공항으로 전보된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의 조치는 여수공항 지사 내에서 D씨를 다른 팀으로 임시 배치하는 데 그쳤다. 좁은 공항에서 피해자들은 계속 D씨와 마주쳐야 했다. 결국 B씨는 사직서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가해자 전보 (분리)조치 미실시”라는 사유를 적고 퇴사했다.
지난해 12월 D씨가 관리자로 승진하면서 피해자 C씨는 가해자와 더 자주 마주치게 됐다. 업무 용품 인수인계나 민원 처리 등으로 C씨는 D씨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D씨가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C씨는 사무실도 가기 어려워졌다. A사 인사규정은 ‘견책 징계처분을 받은 자는 징계 집행이 종료된 날부터 6개월 내엔 승진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돼 있는데, D씨는 징계 1개월 만에 승진했다.
C씨와 노동조합은 여러 차례 가해자 전보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회사는 요지부동이었다. 피해자는 지난달 말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고, 노조도 이달 초 회사를 고발했다. 노조 간부는 “지난 14일에야 가해자와 피해자 간 가스분사기(업무용품) 인수인계를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분리조치가 아니라 알아서 피해 다니라는 의미”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A사 조치를 ‘실질적 분리조치’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3·5)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됐을 때 사용자는 괴롭힘 행위자에 대해 징계·근무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고, 이 조치를 하기 전에 피해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미소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취지가 실질적으로 피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의 자원이 허락하는 한 충실히 분리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며 “전보할 수 있는 다른 지사가 있다면 분리조치가 가능한 환경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가해자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점에서 피해자는 다음 괴롭힘에 노출돼 있는 것이고, 2차 가해 발생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가해자의 명령체계 하에 피해자를 두지 말고 물리적, 업무적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노무사는 “분리조치할 다른 사업장이 없는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휴가 등 대체 조치들이 필요하지만 (회사의) 경각심 자체가 없을 때가 많다”며 “법에 ‘실질적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할 필요가 있고, 고용노동부도 괴롭힘 대응 관련 매뉴얼에 실질적 보호 조치에 대한 예시들을 더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A사 측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분리조치를 했다”며 “현재 노동청 진정 등이 진행되는 상황이라 자세히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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