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읍참마속'… "이러다 100석" 위기감에 결단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읍참마속(泣斬馬謖,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엄정히 법을 지켜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의 결단을 내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요구대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사의를 수용했고 이종섭 주호주대사도 조기 귀국토록 했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사실상 운명 공동체인 윤 대통령이 4·10 총선을 20여일 앞두고 급격히 식어버린 서울 등 수도권 민심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총선이 3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황 수석과 이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여권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출국한 이종섭 주호주대사와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거취 문제는 특히 서울 수도권에서 여권 지지율 반락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 12∼14일(3월2주차) 이뤄진 정당지지도 조사결과 서울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30%로 전주(45%)보다 15%p(포인트) 급락했다. 같은 기간 민주당 지지율이 24%에서 32%로 상승한 것과 상반된다. 중도층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24%로 전주(32%)보다 8%p 하락했다. 인천·경기에서의 국민의힘 지지도도 여전히 30% 초반에서 횡보했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유사하다. 리얼미터가 18일 공개한 3월 2주 차 정당 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37.9%, 민주당은 40.8%로 나타났다. 이를 지역별로 보면 직전 조사 대비 서울에선 7.6%p, 인천·경기에선 5.4%p 하락했다. 보수층 역시 10%에 가까운 9.7%p 떨어졌다. 이들 여론조사가 이뤄진 12~14일은 이 대사와 황 수석의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시기다.
이 시기에 여권 핵심층엔 여당의 최소 가능 지역구 의석수가 100석을 밑돈다는 여론조사 보고서가 공유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수도권 후보들 사이에선 비례대표 의석을 포함해도 100석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도 돌았다.
그러자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17일 '해병대원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수사를 받는 이종섭 주호주대사의 출국 논란과 관련해 "공수처가 즉각 소환하고, 이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이 문제가 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에 대해서는 "본인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셔야 한다"며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이튿날인 18일에도 "입장의 변화가 없다"면서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선거를 앞두고 민심에 민감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소속 서울 등 수도권 출마자들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한 위원장과 뜻을 같이 했다. 인천 동·미추홀구을에 출마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중앙선대위 발대식 이후 기자들과 만나 "최근 수도권 민심이 아주 심각해졌다"며 "살을 내주더라도 뼈를 취하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사 문제와 관련 "국민 눈높이라는 거와 법·행정의 눈높이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다. 지금은 국민 눈높이를 따를 때가 아닌가 생각하는데"라며 "당의 총의가 존중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황 수석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이 어떤 때인가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선거가 20여일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고 정말 우리가 건곤일척의 승부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 대사는 빨리 귀국해 수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본다. 황상무 수석에 대해서는 인사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분명히 말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친윤(친 윤석열 대통령) 인사들마저도 비판적 입장을 나타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이라 여겨지는 홍보수석을 지낸 김은혜 전 수석도 이달 18일 자신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종섭 즉시 귀국, 황상무 자진 사퇴가 국민 눈높이"라며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친윤계 핵심 인사로 꼽혔던 이용 의원 역시 같은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총선 국면에 있어서 수도권 같은 경우는 조금이라도 하나 잘못하면 지지율이 바로 보이지 않나"라면서 이 대사의 귀국과 황 수석의 거취 정리를 요구했다.
한 수도권 출마자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이러다 공멸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너무 컸다"며 "대통령실의 결단이 없었다면 서울 수도권은 물론 전국의 경합지역구에서 제대로된 승부도 펼치지 못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라도 대통령과 여당은 어쩔 수 없이 공동운명체라는 점을 명심하고 남은 20여일간 일치단결해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한 위원장은 이날 경기 안양시에서 진행한 선거대책위원회에서 "국민의힘과 윤석열정부는 운명공동체"라며 "저희는 총선을 20여일 앞에 두고 절실하게 민심에 반응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기사에 인용한 여론조사는 한국갤럽이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이동통신 3사 제공 무선전화 가상번호 무작위 추출을 통한 전화 조사원 인터뷰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4.7%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리얼미터 조사는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4~15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생성된 표집틀을 통한 무선(97%)·유선(3%) 자동응답 방식의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됐다. 응답률은 4.2%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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