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칼럼] 황상무가 상기시킨 언론인 테러 흑역사

변상욱 언론인 2024. 3. 2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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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사건 언급을 배경과 맥락 위주로 따져보자.

대통령실에서 민심의 경청과 사회갈등의 조정을 맡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이 자율적 무력에서 쓰이는 칼침과 군에 의한 언론인 테러를 언급했다.

그래서 1987년 민주화 뒤인 1988년에 가서 벌어진 군인에 의한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은 80년대 말 신군부 시대에서 1960년대 초반의 군부 시대로 역사를 퇴행시킨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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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변상욱 언론인]

▲지난해 12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사진=대통령실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사건 언급을 배경과 맥락 위주로 따져보자.

무력을 자율적 무력과 타율적 무력으로 나눌 때 군과 검경의 권력은 타율적 무력에 속한다. 임의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자신의 무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율적 무력은 국가의 법과 제도에 의해 국민으로부터 위탁되었고 국민을 위해 합목적적으로 쓰여야 한다. 자율적 무력은 폭력조직에서 찾을 수 있다. 자신이 키우고 조직하고 힘에 의해 뒤집어엎고 빼앗을 수 있다.

대통령실에서 민심의 경청과 사회갈등의 조정을 맡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이 자율적 무력에서 쓰이는 칼침과 군에 의한 언론인 테러를 언급했다. 대통령실의 정체성이 이미 무력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국민을 바라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밟고 가는 변질된 무력임을 드러낸 것이다.

국가 권력의 언론탄압은 통상 '메시지 통제'와 '메신저 통제'로 나눈다. 이 가운데 회칼 테러 사건은 당연히 메신저 통제의 경우다. 메신저 통제는 회유, 강제, 겁박으로 나타난다.

1960년대 이후 언론인에 대한 국가 권력의 폭력을 살펴보면 박정희 정권 시대는 겁박의 시대다. 정보수사기관의 요원들이 편집국에 상주해 동향을 감시했고 기자들의 성향을 파악해 처단의 자료로 활용했다. 출퇴근길 습격, 가족에 대한 위협과 주거지 공격 등 직접적 테러도 횡행했다.

대표적인 사건은 1965년 7월 한국일보, 경향신문, 부산일보 기자 피습과 같은 해 9월 동아일보 편집국장 집 대문 폭파 사건 등이다. 그리고 기자 개인에게 불온 기자, 사이비 기자, 공갈 기자, 악덕 기자라는 딱지를 붙여 내쫓고 이후 재취업이나 저술, 칼럼 기고까지 막았다. 처벌이 아닌 처단이다. 행동대로 나서는 건 경찰과 군이었다.

▲ 1965년 9월7일 자정 무렵, 동아일보 편집국장 대리 집 대문 폭파 사건을 보도한 1965년 9월8일 자 동아일보 3면. 사진=네이버 라이브러리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박정희 정권은 군 출신의 정관계 안착, 강력한 우파정당의 설립으로 정변을 마무리하며 언론인에 대한 겁박을 습격과 테러 아닌 강제 연행, 혐의 조작, 기소의 방식으로 전환한다. 한국신문협회에 의하면 1970년부터 1979년까지 기자에 대한 폭행 및 방해 사건은 임의동행 12건, 연행 33건, 폭행 28건, 취재방해 38건, 구속 7건이다.

전두환 신군부는 이 경험들을 바탕으로 보다 촘촘히 언론을 탄압한다. 계엄령하에서 언론사, 언론인에 대한 사전 조사를 마치고 언론사 폐지·통합 그리고 언론인 강제해직을 단행했다. 그다음 회유한 언론인들을 통해 언론사를 장악하고, 악법 조항들을 동원해 언론인들을 연행 조사했다.

1982년 3월 한국일보 편집국장, 같은 해 7월 조선일보 사회부장 등이 정보기관에 강제 연행된 걸 시작으로 연행 조사는 이어지지만 언론인 개인에 대한 습격 테러는 없었다. 언론인 개인을 겁박해 통제하는 방식에서 언론인을 체제 속으로 흡수해 통제하는 방식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래서 1987년 민주화 뒤인 1988년에 가서 벌어진 군인에 의한 언론인 회칼 테러 사건은 80년대 말 신군부 시대에서 1960년대 초반의 군부 시대로 역사를 퇴행시킨 사건이다. 그런 무리한 역사적 반동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군부가 문민화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벼랑 끝에 내몰렸기 때문이었다.

▲ 3월14일 MBC 뉴스데스크 “황상무 수석,

그렇다면 오늘 2024년에 대통령실 수석이 특정 방송사를 지목하며 회칼 테러를 언급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것 역시 신망과 지지를 잃고 총선을 치러야 하는 조기 레임덕 정권의 절박함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또 언론사를 상대로 한 겁박이 더 이상 효과를 거두지 못할 거라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유관기관들을 동원해 메시지를 통제하고, 메신저인 언론사를 압박하는 것에서 더 나가 언론인 개인에 대한 겁박을 강화·병행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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