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도 사형 선고하자”…중국 뒤흔든 ‘13세 동급생 살인사건’
최근 발생한 13세 중학생들의 동급생 살해 사건이 중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극심한 학교폭력과 농촌의 방치된 아동 문제에 관한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12세로 하향한 법 조항이 적용되는 첫 사례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0일 신경보, 중국중앙(CC)TV 등 중국 언론에 따르면 허베이성 한단시 페이샹구의 중학생 왕모군(13)은 지난 10일 오후 1시쯤 가족들에게 동급생들과 놀러 간다고 알리고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다. 왕군은 이튿날 마을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왕군의 동급생 3명을 용의자로 지목하고 13일 긴급 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0일 왕군을 불러내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으로 191위안(약 3만5000원)을 빼앗고 삽으로 여러 차례 구타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비닐하우스에 묻었다. 이들은 사건 하루 전날인 9일 비닐하우스에 56㎝ 깊이의 구덩이를 미리 파 놓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지난 18일 용의자들에게 계획 살인 혐의를 적용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왕군의 시신이 발견된 직후부터 사건은 관심을 모았다. 왕군이 용의 선상에 오른 동급생들에게 평소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중국 언론들이 보도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중국아동청소년연구센터가 2020~2022년 미성년자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53.5%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겪었다고 답한 바 있다.
잔혹한 범죄 내용이 공개되자 용의자들의 처벌 수위에 관심이 쏠렸다. 갈수록 흉포화된 청소년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당국도 형사 미성년자를 14세에서 12세로 낮춰 2021년 3월 1일부터 적용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해당 사건이 새 형사 미성년자 연령을 적용하는 첫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차이신은 법률 전문가들을 인용해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에서는 더 나아가 “미성년자에게도 사형을 선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2m 깊이의 구덩이가 발견됐다며 용의자의 부모도 범죄에 가담했을 것이라는 루머도 돌았다. 당국이 구덩이 깊이는 56㎝라고 재차 확인해야 할 정도였다. “학교폭력 사안에서는 가해자 부모와 학교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신경보는 “연좌제 금지라는 근대법의 원리상 부모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전하면서도 학교폭력에 학교 측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무게를 실어 전했다. 특히 피해자와 용의자의 학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을 두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인데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해 교육 당국의 학교폭력에 관한 왜곡된 인식을 드러냈다고 비판받았다.
당국은 수사 과정에서 ‘온라인 소문’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관영 영문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18일 기준 “웨이보에서만 사건과 관련된 2972건의 루머가 있었다”며 온라인 스트리머 등이 “15분의 명예”를 추구해 정상적인 논의 환경을 해치고 있다고 전했다.
유수(留守)아동 문제도 조명받고 있다. 유수아동은 부모는 다른 지역에서 일하느라 떨어져 살며 조부모나 다른 친척들이 돌보는 아이를 말한다. 적절한 가족의 돌봄 없이 장기간 방치되기 쉬워 건강도 부실하고 정서적 악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손쉽게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는 우려가 있었다. 사건 피해자 왕군과 용의자 3명이 모두 유수아동이다.
유수아동은 중국 호적 시스템인 ‘후커우 제도’ 때문에 발생한다. 다른 호적지로의 이동을 제한하는 후커우 제도로 인해 농촌 출신 취업자의 자녀는 도시에서 의무교육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농촌에 유수아동이 대거 발생해 문제가 돼 왔다. 중국 국가통계국과 유엔아동기금, 유엔인구기금이 공동발표한 ‘2020년 중국 아동 인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조부모와 함께 사는 미성년자는 약 6700만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농촌 유수아동이 4177만명이다.
웨이보 이용자 ‘새끼돼지를 거느린 산돼지’는 “우리의 많은 정책은 관리의 편의를 위한 것이며 사람을 우선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유수아동 문제를 낳는 후커우 제도를 비판했다. 해당 발언은 600건 넘게 공유됐다.
상하이 기반 관영매체 펑파이는 이날 사설에서 “법정 형사책임 연령을 다시 낮추거나 ‘미성년자에 대한 사형 제한 철폐’가 공개 토론의 유일한 차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이 사건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합리적인 추궁에는 학교폭력 관리, 유수아동의 건강한 성장에 관한 관심도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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