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나라한 의료계 민낯과 도약의 기회[포럼]

2024. 3. 2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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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2000명 확충에 대한 반발이 수련전공의의 사직을 시작으로 의대생과 교수들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수련생에 불과한 전공의가 자리를 비우자 이들 최고의 병원 대다수가 경영 위기에 빠지고, 전공의 없이 환자를 지키던 교수들마저 지쳐 간다.

정원 발표로 큰 산 하나를 겨우 넘은 정부의 다음 과제는, 전공의의 이탈로 '강제적'으로 이뤄진 대형 수련병원의 '정상적' 체계가 지속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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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연 인천의료원장,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

의대 정원 2000명 확충에 대한 반발이 수련전공의의 사직을 시작으로 의대생과 교수들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정원 규모의 결정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며, 원칙에 따라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연일 강공을 펴고 있다. 확정된 대학별 정원 발표로 중요한 위기가 올 것이 걱정되지만 그 속에 기회도 있다.

최근 미국 뉴스위크가 세계 10대 병원에 우리나라 병원 3곳을 포함했다.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 전문 진료 분야 또한 여러 개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수련생에 불과한 전공의가 자리를 비우자 이들 최고의 병원 대다수가 경영 위기에 빠지고, 전공의 없이 환자를 지키던 교수들마저 지쳐 간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해외 대다수의 대형·상급·대학 병원은 중증·전문 병원 형태다. 분야별로 많은 전문의가 합심해서 최중증 희귀·난치 질환을 진료하고, 의학 연구에 매진하며, 후진 의사 양성에 노력한다. 외래진료는 최소한만 유지하며, 교수가 병동에서 직접 환자를 보살피고, 지역 2차 병원에 기술과 의료 인력을 지원한다. 일반적인 응급·외상은 물론 입원·수술·정밀검사가 필요한 대개의 질환은 지역의 2차 병원이 맡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과 가벼운 질환은 1차 의료기관인 동네 의원에서 포괄 1차 전문의(가정의학과)가 진료한다.

우리나라의 대형·상급·대학 병원은 입구부터가 다르다. 화려한 로비에 멋진 안내 직원, 복잡한 대기실을 가득 메운 환자들을 뚫고 오래 기다린 끝에 겨우 만난 진료 교수의 피곤한 모습은 불과 3분 설명조차 송구하다. 교수인 전문의는 외래환자 진료에 매달려 막상 중요한 입원환자는 전공의 없이 돌보기 어렵다. 각종 수술·시술은 전공의의 보조 없인 불가능하다. 주당 80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 수련·전공의의 낮은 임금과 땀방울 없이 우리의 대형 수련병원은 유지될 수 없다. 이것이 전공의 사직 사태가 보여준 우리 의료의 민낯이다.

대학별 정원 배정은 정부로선 교육 행정상 한 단계의 종결을 의미한다. 정원 발표로 큰 산 하나를 겨우 넘은 정부의 다음 과제는, 전공의의 이탈로 ‘강제적’으로 이뤄진 대형 수련병원의 ‘정상적’ 체계가 지속되게 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대형 수련병원은 예정된 수술을 연기하고 입원환자를 줄였다. 하지만 결국은 의료 대란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불신과 의구심이 가득하다. 외래 비중을 줄이고, 중증 입원환자에 집중하며, 교수 정원을 늘려 연구와 교육에 몰두하고, 지역 병원의 인력과 기술 지원에 앞장서는 진정한 ‘권역 책임 의료기관’으로서 면모를 갖추도록 정부의 통 큰 지원이 절실하다.

떠났던 전공의가 다시 돌아올 명분은 2000명을 줄이는 숫자의 양보에 있지 않다. 전공의를 노동력으로 대하지 않는 정상적인 환경에서, 수익보다 국민의 건강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참다운 교육 수련병원이 전공의들의 진정한 바람임을 믿는다. 팬데믹 당시 공공병원에 대한 지원 약속이 결국 허언(虛言)이 된 전철을 밟지 말고, 수련병원들이 체질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계기가 되도록 정부가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환자의 불안과 국민의 마음 졸임이 과연 대한민국 의료의 도약으로 승화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순간이 다가온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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