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강정도 상대했는데 뭔들 못해", 류승룡의 용감한 도전 [인터뷰]

유수경 2024. 3. 2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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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류승룡, '닭강정'에 대한 애정 고백
"안재홍, 모든 세포가 열려있는 배우" 극찬
"독특한 작품에 과감한 투자 이뤄지면 한국의 창작자들 행복할 것"
'닭강정'으로 돌아온 류승룡. 넷플릭스 제공

류승룡은 도전을 멈추지 않는 배우다. 늘 대중이 사랑하는 이미지만 좇기보다는 연기자로서 작품의 다양성 확장에 힘을 싣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넷플릭스 '닭강정'은 제법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진지하게 연기에 임해 작품에 몰입도를 높였다.

그 역시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류승룡은 개인적으로 '극호'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병헌 감독과 함께 작업한 전작 '극한직업'의 배우들도 '닭강정'에 뜨거운 반응을 보여줬단다.

향신료 고수처럼, 처음엔 낯설지만 먹다 보면 중독되는 매력을 '닭강정'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류승룡을 지난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인생에 딱 한 번 만나는 작품"

'닭강정'은 의문의 기계에 들어갔다가 닭강정으로 변한 딸 민아(김유정)를 되돌리기 위한 아빠 선만(류승룡)과 그를 짝사랑하는 백중(안재홍)의 '신계(鷄)념 코믹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박지독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아내와 일찍 사별한 뒤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선만은 20년 넘게 애지중지 키운 딸이 하루아침에 닭강정으로 변해 절망한다. 그는 회사 직원 백중과 함께 자신의 전부인 딸을 찾아 나선다.

"고생이라기보다는 되게 재밌게 찍었어요. 배우 인생에 있어서 이런 작품은 딱 한 번 만나게 되는 거거든요. 원한다고 해서 이런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죠. 모든 배우들이 '이거 정말 재밌게 잘 찍자' 했어요. 우리에게도 설렘 이런 게 있거든요. 취향을 많이 타는 작품이 분명하겠다고 생각했지만, 혹시라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준다면 또 다른 도전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박지독 작가의 웹툰 중 '감자마을'이라고 있어요. 배우들이랑 그것도 하자고 얘기했죠. 하하. 살색 타이즈, 빨간 타이즈 입고 나오는 건데 '닭강정'을 뛰어넘는 건 그거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시청자들의 다양한 반응에 대해서도 류승룡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작품이 품고 있는 진정한 매력을 들여다봤다.

"아직 초반이라 모르겠는데 많이들 놀란 분도 계시고 그랬을 거 같아요. 저도 시나리오 처음 보고 '엥?' 그랬으니까요. 이병헌 감독이 농담하는 줄 알았죠. 요즘 무슨 작품하냐고 하니까 딸이 닭강정으로 변하는 이야기라길래 '코로나라서 많이 힘들구나' 했어요. 하하. 그런데 몇 개월 뒤에 진짜 (대본을) 주더라고요. 그땐 웹툰은 몰랐고 시나리오 보고 충격받았죠. 읽다 보니까 기대감도 있었고 모든 보는 분들이 쇼킹한 지점이 있을 거라 생각됐어요. 특이한 소재는 전면에 배치가 돼있고 그 다음 풀어가는 방식들이 흥미로웠습니다. 결국에는 시공간을 떠나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가족 이야기, 사랑 이야기, 인류애 이런 것들인데 문턱이 있지만 그것만 넘으면 쭉 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딸이 닭강정으로 변한 거 말고는 굉장히 리얼한 부분이 있죠. 연기 양식이나 톤은 닭강정만의 언어나 기호로 인지하고, 마음을 열고 보면 재밌게 볼 수 있어요."

류승룡은 이병헌 감독의 능력을 믿었다. 만화처럼 독특한 소재를 다루지만 2D를 4D처럼 만들 수 있는 감독이라 생각해 출연을 결정했다. 연기할 때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임했다.

"저는 정말 '테이큰'의 리암니슨처럼 내 딸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연기했습니다. 그런 걸 제일 염두에 뒀어요. 닭강정을 보면서 '이건 민아다'라고 계속 생각했고요. BTS, 라바, 사슴들 보고 너무 놀랐고 유승목 선배가 애벌레 연기를 하는데 진짜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죠. 배우들은 다 자기 각자의 진실됨을 가지고 진지하게 연기를 했어요."

'닭강정'에서 열연한 안재홍과 류승룡. 넷플릭스 제공

극 중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안재홍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놀랍고 신기한 경험인데 둘이 하는 건 리허설을 거의 안 했어요. 하면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들이 있는데 리허설을 자꾸 하면 웃음의 질량이 떨어지더라고요. 너무 신기한 경험이라 자웅동체라고 표현했는데, 내가 꼬집으면 걔가 아파하고 그랬어요. 홍보나 뭐를 할 때도 '네가 해' 이런 얘길 한 적이 없어요. 재홍이는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엄청 좋아요. 곰인척 하는 여우 같아요. 기분이 좋고 모든 센서나 세포가 다 열려있는 배우 같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모습을 보여줬는데 앞으로가 훨씬 더 기대가 되는 배우죠. 앞으로 결혼도 하고 애기도 낳고 그러면서 맡게 될 작품들이 너무 기대가 돼요. 모든 장르를 섭렵하는 그 스펙트럼이 놀라워요."

코미디 연기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류승룡인데, 현장에서 코믹 배틀이 벌어지진 않았을까.

"좀비가 되는 장면이 있는데, 서로 찍은 장면을 현장에서 보진 않잖아요. 그런데 재홍이 걸 보고 '야 내가 졌다' 했어요. 불쌍하게 너무 잘 표현을 했더라고요. 서로 보며 자극받는 것도 있고 같이 할 때는 그 친구가 확장되고 풀어주는 것도 있고 편안하게 했어요. 둘이 마비돼서 쓰러졌을 때의 무브먼트도 '동선을 이렇게 하자. 나는 이렇게 움직일게' 하고 짠 게 아니에요. 정말 놀라운 순간이죠."

'닭강정'으로 돌아온 류승룡. 넷플릭스 제공

류승룡은 글로벌 시장에 소개되는 작품인 만큼 닭강정이라는 한국적인 소재도 마음에 들었다고 털어놨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온 초창기 때 '킹덤'으로 K좀비를 (해외에) 소개를 했다면 이번에는 K푸드를 알려보자는 희망도 있었어요. 극을 보면 레시피가 자세히 나오잖아요. K콘텐츠 소재는 정말 여러가지가 있어요. 분단도 있고 학폭도 있고 '이런 소재까지도 형상화시켜서 콘텐츠로 만드는구나' 싶은 것들이 있죠. 한국에는 이야기꾼들이 정말 많아요. 이렇게 독특한 작품을 과감하게 투자해서 형상화시키고 그러면 참 한국에 있는 작가들이나 창작자들은 행복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난 2004년 매체 연기를 시작해 어느덧 20주년을 맞은 류승룡. 그는 지나온 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뭘 이룬다는 생각을 안 해본 거 같아요. 마지막 작품까지 최선을 다해서 후회없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지도 못한 장르에 참여하게 됐고, 앞으로도 굳이 바라는 게 있다면 더 다양한 작품들을 하고 싶어요. 어디에 국한되지 않고 스펙트럼을 더 넓히고 싶은 마음이 들죠.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내 아내의 모든 것' '최종병기 활' '무빙' 등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도 좋았어요."

류승룡의 변신은 '새로움'과 '도전'을 향한 갈망에서 나온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는 거 같아요. 예전엔 항상 따라다니는 게 '다작 배우'란 수식어였죠. 그러면서 내 나이에 이런 생김새로 할 수 있는 많은 캐릭터들을 했고요. '이거 말고 없을까?' 그런 마음들도 작용이 된 거 같아요. '이런 작품은 또 안 나올 거 같다, 신선하다, 내가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 거 같다' 이런 미션들이 저에겐 계속 있었어요. 진짜 이야기꾼이 많은 한국에서 배우로 살아가는 게 감사하고 행복한 일 같아요."

이병헌 감독과 1,600만 명의 관객을 웃고 울렸던 '극한직업' 2편에 대한 계획은 없는지도 궁금했다.

"이번에 같이 한 안재홍도 마치 '극한직업' 팀 같아요. 워낙 배우들도 다 친하고. '극한직업'의 독수리 오남매들도 '닭강정' 보면서 재밌고 뿜었다고 톡을 해줬어요. 우리는 정말 패밀리라고 생각해요. 시즌 2요? 사실 배우들은 언제든지 스탠바이죠. 5주년 때 만났을 때도 그런 얘길 나눴고요. 우리가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배우들과 감독님은 늘 준비돼 있습니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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