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은 부모 몽골, 길러준 부모 한국이 멸종위기 독수리 같이 보살펴야”···한·몽 독수리지킴이들의 만남
“어린 독수리들이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수천㎞ 남쪽 한국까지 왔다가 다시 몽골에 돌아가는 모습이 경이롭습니다.”
오전 내내 안개가 자욱했던 지난 16일 경기 파주 민통선 내 독수리 월동지를 둘러보던 몽골 조류학자 알탕게렐 척츠막나이는 임진강변을 날아다니는 독수리떼를 보며 감격스러움을 표시했다. 몽골조류보호센터 소속 연구자인 알탕게렐은 “몽골에서 보던 독수리들이 먼 길을 날아 한국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이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알탕게렐과 독수리 보호 활동가인 사랑게렐 이친허를러 몽골 사라나자연보존재단 대표는 20여년 동안 독수리를 포함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어온 노영대 감독, 오창길 자연의벗 이사장 등과 함께 경기 파주 군내면 민통선 내의 독수리 월동지를 돌아봤다. 알탕게렐과 사랑게렐은 평소 몽골 초원에서 봄철부터 가을철 사이 관찰해왔던 독수리를 겨울철 머나먼 한국에서 보게된 것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독수리는 보통 3~11월을 몽골 초원에서 서식하다 11월쯤 한국으로 남하해 3월까지 월동하는 국제적 멸종위기 조류다. 천연기념물 243-1호로 지정돼 있으며 전 세계에 약 2만마리만 남아있다. 한국에서 월동하는 개체는 1500~2000마리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 몽골의 독수리 연구자, 활동가는 지난 15일 한국의 환경단체 자연의벗연구소가 주최한 ‘독수리를 지키는 사람들’ 주제의 한국·몽골국제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이들은 포럼에서 몽골에서 자신들이 하고 있는 독수리 관찰과 보호활동, 몽골 현지에서 독수리들이 겪고 있는 위협 등에 대해 설명했다. 알탕게렐은 포럼에서 독수리를 위협하는 요인들로 송전선로 충돌, 독극물 중독, 서식지 파괴 등을 꼽았다.
포럼이 열린 서울 동교동 청년문화공간 JU에서 알탕게렐, 사랑게렐과 만난 김덕성 독수리자연학교 교장은 “몽골이 (독수리들을) 낳은 부모라면, 한국은 길러준 부모나 다름없다”면서 “이는 두 나라 연구자, 활동가 등이 함께 독수리 보호를 위해 애써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 교장은 20여년째 경남 고성에서 독수리 먹이주기 활동을 벌이고 있다. 독수리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사냥을 전혀 하지 않으며 사체만을 먹는 탓에 ‘야생의 청소부’라 불리는 맹금류다. 영어로는 ‘이글’(eagle)이 아닌 ‘벌처’(vulture)로 분류된다. 한국 산하의 야생동물이 줄어들면서 동물 사체도 줄어든 탓에 한국을 찾는 독수리들도 먹이 부족으로 탈진해 구조되는 경우가 많다.
국제포럼에는 이들 몽골 연구자·활동가와 환경단체 활동가뿐 아니라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등 국내 야생동물 전문가·보호활동가와 시민 등 130여명이 참석했다.
몽골 연구자·활동가들이 파주 민통선 내를 찾은 지난 16일은 오전에는 안개로 인해 독수리 관찰이 어려웠다. 이후 점심쯤 따스한 햇빛이 비추면서 독수리들의 모습이 드러나자 민통선 지역에 찾아간 이들의 감동도 컸다. 이 지역에서 월동하던 수백마리의 독수리들 대부분은 몽골로 돌아가기 위해 북상한 상태로 이날 민통선 내에서 볼 수 있었던 독수리는 약 30여마리 정도였다.
파주 민통선 내에서 독수리 먹이주기 활동을 벌이고 있는 노 감독은 “독수리가 한국과 몽골을 오가는 이동 경로 등은 어느 정도 연구가 진행됐만, 독수리의 질병이나 농약 중독 등에 대해서는 조사·연구된 내용이 많지 않다”면서 앞으로 해당 분야에 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사랑게렐 대표는 “독수리들의 월동지 환경을 살펴보면서 몽골에서 먼 길을 날아온 독수리들이 잘 생존해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마음이 벅찼다”며 “앞으로도 한국과 몽골의 시민과학자들이 협력해 독수리 보호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https://m.khan.co.kr/environment/environment-general/article/202303051516001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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