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NOW]크래프톤 장병규 "AI·메타버스는 반 보만 빨리…우리 바이블은 `시장·고객·글로벌`"
"전 게이머도 얼리어답터도 아닙니다. 오히려 대중에 가까울 정도로 늦은 사람이죠. AI(인공지능)도 메타버스도 준비 중이지만 시장보다 반 발만 앞서 가겠습니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중심에 위치한 센터필드 이스트동. 꼭대기 층인 35층에서 내려 출입 게이트를 통과하자 리듬감 있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두컴컴한 터널 같은 출입구는 모험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입구를 지나자 음악 소리가 더 커지면서 환한 카페 공간이 나왔다. 한창 업무에 집중해야 할 오후 시간에 직원들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있었다. 옆으로는 구내 식당이 펼쳐져 있었다. 사방으로 난 창을 통해 강남 곳곳이 아래로 보였다.
게임회사 크래프톤을 들어서며 떠오른 단어는 '스웩(Swag)'이었다. 너무 빠르지 않은 사내 카페의 음악처럼, 여유와 리듬, 자유스러움이 느껴졌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을 만나자 그 분위기가 어디서 왔는지 이해가 됐다. 바로 장 의장이었다. 국내 대표적인 성공한 창업가인 장 의장은 '크리에이티브'와 '시장'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며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고 치우치지도 않는 질서와 분위기를 크래프톤 안에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는 이미 성공해 봤고 성공의 법칙을 알고 있는 기업가다. 크리에이티브를 고집스럽게 지향하되 시장 안에 발을 딛고 있을 것, 열정적으로 변화하되 여유와 리듬감을 가질 것, 끊임없이 혁신하되 남들보다 반 보만 앞서갈 것. 장 의장은 그런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얘기하는 보수는 '실질'이나 '현실'과 동의어로 다가왔다.
인터뷰=안경애 ICT과학부장
◇'달러' 벌겠다는 목표로 창업…해외 매출비중 95%
1973년 생인 장 의장은 PC와 PC통신, 인터넷, 소셜미디어(SNS), 모바일, AI에 이르는 수십년간의 기술 흐름 현장에서 살아왔다. 대구과학고를 2년 만에 졸업하고 카이스트 전산학과에 입학해 석·박사과정까지 한 수재형 기업가다. 석사 시절인 1996년 인터넷 기업 네오위즈를 공동 창업해 PC메신저 '세이클럽'으로 히트를 쳤고, 약 10년 후인 2005년 검색엔진 회사 첫눈을 창업한 후 1년 만에 네이버에 350억원에 매각해 대박을 터트렸다. 이후 2007년 게임사 블루홀스튜디오(현 크래프톤)와 벤처투자 기업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를 세웠다. 창업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엔젤투자를 주로 한 본엔젤스는 배달의민족으로 잘 알려진 우아한형제들에 투자한 3억원이 2993억원으로 평가받아 1000배 가까운 수익을 거둔 바 있다. 2017년에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평소 수평적 리더십과 토론을 중시하는 그는 당시 특정 주제를 두고 끝장 토론을 벌이는 '해커톤'을 통해 정부 안에 혁신 DNA를 심는 노력을 기울였다.
장 의장은 "크래프톤과 장병규의 공통점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글로벌'이다. 사실 게임이나 게임 만드는 게 좋아서 블루홀을 창업한 게 아니었다. 그 전에 (네오위즈와 첫눈 창업으로) 돈을 벌었고, 원화보다 달러를 벌고 싶어서 블루홀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달러를 벌겠다는 목표를 이뤘다. 크래프톤은 서바이벌 슈팅게임 '배틀그라운드'라는 막강한 IP(지식재산권)로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1조9106억원, 영업이익 7680억원을 기록했다. 해외 매출 비중이 95%에 달하고 영업이익률은 40%가 넘는다. 작년 4분기 매출액은 5346억원, 영업이익은 1643억원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숫자가 좋아졌다.
성장 비결은 배틀그라운드 IP의 힘이다. 특히 진입장벽이 높은 인도 시장에서 누적 이용자 1억명, 누적 매출 1억달러를 돌파하며 '국민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12월 현지에서 게임 최대 동시접속자 수는 연중 저점보다 70% 늘었다.
◇"글로벌 게이머가 바라는 것에 집중…올해는 다각화의 해"
"모든 산업과 기업이 가진 문제의 결론은 시장과 고객에 있다"는 장 의장은 글로벌 게이머가 바라는 것에 집중한다. 서구권은 돈을 써서 게임에서 이기는 페이투윈(Pay to Win) 모델에 부정적이다. 이 모델이 통했던 국내에서도 분위기가 바뀌면서 최근 국내 게임산업은 '변화통(痛)'을 겪고 있다. MMORPG(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와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하는 구조가 바뀌고 있다. 게임사들은 장르와 플랫폼 다각화에 힘쓰고 있다.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는 일찍이 그런 구조와 거리를 뒀다.
장 의장은 "어느 게 좋다 안 좋다가 아니라 고객과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느냐가 문제"라면서 "배그에서도 코스튬을 파는데 끝까지 다 갖추려면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글로벌 고객들이 이를 수용해준다. 명품 백을 사서 자기과시를 하면서 200만~300만원을 쓸 거냐, 아니면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내는 배그에 써서 과시할 거냐의 차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다양화와 다각화의 해"라고 말하는 장 의장은 배틀그라운드를 잇는 5개 주요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게임 바깥에서도 게임과 연관되거나 아예 관련 없는 분야로까지 다각화를 꾀한다. M&A(인수합병)도 계속 들여다본다. IPO(기업공개)를 통해 3조 넘게 확보한 현금성 자산을 규모 있게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장 의장은 "크래프톤이 바뀌었다고 많이 느끼실 수 있다. 주주들이 놀라실 수도 있다"면서 "작년까지만 해도 팔고자 하는 곳과 가격대가 안 맞았는데 요즘은 해볼 만한 수준이 된 것 같다. 코어 비즈니스와 여러 가지가 정돈됐으니 본격적으로 다각화를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M&A는 '글로벌'과 '소프트 산업'에 초점을 둔다.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소프트웨어, AI 관련 기업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주요 신작은 다크앤다커 모바일, 인조이(inZOI), 딩컴 모바일, 블랙 버짓, 서브노티카2다. 가장 먼저 내놓는 게임은 다크앤다커 모바일로, 하반기 나올 전망이다. 인조이와 블랙버짓은 연내 사전출시(얼리 액세스)를 추진한다. 지분투자와 퍼블리싱 계약을 결합한 '세컨드 파티 퍼블리싱' 전략도 펼친다. 이미 10개 넘는 외부 개발사에 투자했다.
장 의장은 "다양한 것을 하는 것은 괴롭다. 페이투윈 게임과 배틀그라운드, 육성 게임을 잘 하는 역량과 경험세트, 고객군은 다 다르다. 그런데 게임사의 경영진은 한 사람이나 한 팀이니 똑같은 뷰를 가지기 쉽다. 다양한 것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힘들다"면서 "결국 고객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글로벌 전체를 보며 균형감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아트와 실적 간의 견제와 균형'…끝나지 않는 고민
크래프톤은 지난해 '스케일업 더 크리에이티브' 방향을 세우고 1년간 조직을 정비해왔다. 시장보다 반 발 앞서 가면서 전세계에서 다양한 크리에이티브를 발굴해 성장시키는 글로벌 퍼블리셔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이다. 크리에이티브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시장과의 접점을 찾아 최대한 성공시키기 위해 다양한 조직구조를 실험했다.
장 의장은 "CEO(최고경영자)가 모든 것을 최종 결정하는 구조는 한계가 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한 사람이 다 이해하기 힘들다"며 "작년에 '퍼블리싱 실명제'를 도입하고 5개 퍼블리싱 조직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고 그 수장들에게 역할과 책임, 권한을 많이 내려줬다. 또 퍼블리싱 수장과 제작 수장 사이에서 조정하는 챔피언이란 직책을 신설했다. 퍼블리싱 수장, 제작 수장, 챔피언과 CEO가 균형을 이루면서 견제하는 구조다. 전통 퍼블리싱보다는 제작 조직에 힘을 실어주는 구조"라고 밝혔다. 예술과 실적 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퍼블리싱 리더와 경영진의 책임이다.
5개 신작 중 가장 기대되는 게임을 묻자 장 의장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면서도 딩컴모바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딩컴은 호주의 1인 개발자가 5년 넘게 걸려 만든 게임으로, 이를 모바일로 확장해 내놓을 예정이다. 계약 당시 개발자가 게임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커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장 의장이 힘을 실어서 성사됐다고 한다. 장 의장은 "이 게임이 타깃으로 하는 고객은 '동물의 숲' 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새로운 장르와 시장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이게 잘 되면 기존에 만족시키지 못했던 층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크앤다커, K-게임 드문 인기작…산업 전체 관점에서 봤으면"
신작 중 다크앤다커는 논란의 게임이다. 2021년 설립된 아이언메이스는 설립 다음해 게임 플랫폼 '스팀'에 다크앤다커를 공개해 동시접속자수 10만명을 넘기는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넥슨의 내부 프로젝트 'P3' 데이터를 외부로 무단 반출해 개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넥슨이 아이언메이스 측을 형사 고소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크래프톤은 작년 8월 아이언메이스와 '다크앤다커' IP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다크앤다커 모바일' 출시를 앞두고 있다. 크래프톤은 이름은 다크앤다커지만 기존 내부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게임으로, 크래프톤이 사실상 전체를 새로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장 의장은 "법리를 봐야 하고 준법을 당연히 해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글로벌 고객이 좋아해 주느냐다. 법적 분쟁을 제외하고 보면 한국 게임산업에서 글로벌 고객이 좋아해 주는 새로운 게임 IP가 탄생한 거다. 우리 산업에서 자주 안 나오는 희귀한 크리에이티브라는 게 0원칙"이라고 말했다.
"시장과 산업이 크지 못하면 기업도 성장하지 못한다. 크래프톤 정도 되는 기업은 산업을 고민해줘야 한다. 법대로, 자본의 논리대로만 할 게 아니라 더 잘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장 의장은 "다크앤다커는 가열차게 준비하고 있고 내부 기대도 크다"고 밝혔다. "게임은 100개를 시도하면 99개는 망하는 산업인데 글로벌 고객이 좋아하는 게임을 죽이는 게 맞나. 우리 업은 자체의 성격이 있다. 반도체와는 또 다르다. 반도체는 설계도와 지재권이 너무 중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장하지만 게임은 국가보안과 관련된 산업이 아니다. 크리에이터나 제작자, 사업하는 사람들이 좀더 활발하게 뛰어놀도록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중장기 투자자들에게 책무 있다"
장 의장은 주가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다. 크래프톤 주가는 2021년 8월 상장 후 공모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고가 58만원대까지 갔던 주가는 25만원 아래에 형성돼 있다. 장 의장은 "중장기 투자자들에게는 책무가 있다고 본다. 공모가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당연히 (공모가를 회복하는 게) 될 것으로 본다. 요즘 말로 '박제'해 놔도 된다"고 했다. "배틀그라운드라는 단일 IP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을 것을 우려했던 시장이 최근에는 하나로도 꽤 오래 돈을 벌 수 있다고 인정해 주는 것 같다"는 장 의장은 "1분기 매출 수치가 나오지 않았지만 매달 지표만 봐도 오래 갈 만한 기반이 생긴 것 같다"고 밝혔다.
◇"프랜차이즈 전략으로 스케일업"
배틀그라운드 수명을 길게 가져가기 위해 작년부터 프랜차이즈 전략을 펴고 있다. 장 의장은 "동일한 IP를 다양한 스튜디오에서 만든다는 관점"이라며 게임 제작사와 퍼블리셔로서 가장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로 '콜 오브 듀티'를 꼽았다. 콜 오브 듀티는 액티비전블리자드로 합쳐진 블리자드가 만든 FPS(1인칭 슈팅) 게임으로, 이 게임을 만든 스튜디오가 10개가 넘는다. 찐팬을 제외하곤 어떤 게임을 어느 스튜디오에서 만들었는지 잘 모르고 이용한다.
장 의장은 "프랜차이즈는 펍지(배그)를 중심으로 다양한 플랫폼과 게임 형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 차원에서는 특정 개인이나 팀에 의존하지 않고 좀더 오래 가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라며 "이게 잘 되면 '스케일업 더 크리에이티브'가 가능해진다. 주주 관점에서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부 스튜디오와 협력하고 내부에도 프랜차이즈에 맞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맥도날드는 전세계 어디를 가도 맥도날드이듯, 펍지는 누가 봐도 펍지로 보여야 한다"고 했다. 이와 연관해 펍지를 콘솔 플랫폼에 맞게 대혁신하는 내부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PC에 강하고 콘솔에서 약한 문제를 극복하는 게 목표다.
◇"누구도 안 가본 길…인도 이제 뿌리내리기 시작"
많은 성공 경험과 실패 경험을 함께 쌓은 장 의장은 성공에도 실패에도 어느 정도 인이 밴 것 같았다. 성공과 실패를 받아들이는 감수성을 애써 퇴화시킨 느낌이었다. 글로벌 게임산업에서 온갖 기네스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배틀그라운드에 대해 "운이 좋아서 얻어걸렸다"는 표현을 썼다.
그는 "17년간 보다 보니 시도해봄 직해, 안돼 정도는 보는 눈이 생긴 것 같다. 게임산업은 숙명적으로 100개의 크리에이티브를 보면 10개 정도를 내놓고, 그중 1~2개가 성공하면 우리 같은 회사가 된다. (준비하는 신작) 5개가 다 잘 되길 희망하지만 1~2개가 되면 주가가 계단식으로 올라갈 것으로 본다. 5개를 말하지만 사실 내부에서는 더 많이 만든다. 자체 제작과 크리에이티브 발굴, 스케일업 노력을 통해 계단식 성장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심스럽지만 낙관 내지는 기대할 수 있는 흐름이 조금씩 형성되는 것 같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유의미한 것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글로벌 게임산업에서 우리가 역사로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돈을 버는 문제는 아니다. 힘들 때 버티면서 도전할 수 있는 꿈 같은 것"이라고 했다. "배틀그라운드가 세운 스팀 플랫폼 동시접속자 최고 기록은 지난 7년 동안 바뀐 적이 없다. 그런 경험과 자산이 쌓여 선순환을 그리면 정말 큰 회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장 의장은 국내 게임사들이 성장 목표로 주로 얘기해 온 미국 게임사 EA 이상 가는 기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낙관했다.
◇"인도 시장에서 이제 막 시작, 다양한 일 시도할 것"
배틀그라운드는 인도에서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 장 의장은 "누구도 안 가본 길을 가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에 돈을 써본 적이 없는 이들이 많은 인도에 대해 많은 공을 들였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소액결제 모델을 만들어 이용자들이 게임에 돈을 쓰는 것을 체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장 의장은 "인도인들은 자국 문화에 대한 프라이드가 매우 강하다. 할리우드니까 보고 미드니까 본다는 게 없고 우리 것이 제일 좋다는 생각이 있다. 인도용 배그에는 인도 종족과 현지 신화 등을 넣어서 누가 봐도 인도산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또 저사양의 휴대전화가 많은 만큼 낮은 사양에서도 잘 보이도록 만들었다"고 밝혔다.
인도는 게임 제작사가 거의 없는 만큼 국내 게임사들이 노려봄 직한 시장이라는 장 의장은 "다만 그대로 들고 가서는 안된다. 꽤 노력해서 인도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인도라는 나라의 특성상 10년, 20년 하지 않으면 뿌리 내렸다고 보기 힘들다"는 장 의장은 "이제 막 시작한 단계이고, 시장이 크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미래다. 이 시장에 투자하고 노력은 당연한 것 같다. 인도인들의 국민소득이 늘어나면 뭐하겠느냐. 거기도 게임 하나에 수백만원 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크래프톤은 내부 스튜디오나 투자 관계로 맺어진 스튜디오의 게임을 주로 퍼블리싱하는데, 인도에서는 그런 관계가 없는 게임도 퍼블리싱한다는 전략이다. 데브시스터즈와 '쿠키런' 퍼블리싱 계약을 맺은 게 대표적이다. 장 의장은 "인도에서 많은 시도를 하려 한다. 다양한 일이 많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밝혔다.
◇"중국에 밀리는 K-게임, 경직된 노동제도 영향"
최근 국내 게임이 중국 게임에 밀리는 것에 대해 장 의장은 노동제도가 영향을 미친다고 짚었다. "산업별로 노동제도를 다르게 보는 게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했다. 크리에이티브가 북미·유럽에서 많이 나오는 게 높은 노동 유연성과 관련돼 있다는 생각이다. "북미 정도의 노동 유연성까진 필요 없지만 지금은 너무 딱딱하다. 지금의 제도가 도입된 게 7년 정도 됐다. 우리 같은 업은 기술변화가 빠르고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는데, 이 상태로 10~20년 가면 한국 게임산업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이 업은 크런치 모드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간은 짧지만 크런치 모드가 되면 미국 회사들이 더 열심히 한다. 한국은 10년 전에는 그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힘든 구조"라고 했다.
◇"AI, 빨리 받아들이는 게 남는 장사"
최근 전세계를 달구는 AI(인공지능)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이다. 다만 생산성 향상 도구로 주로 활용하고, 본격적으로 게임에 AI를 녹이는 시도는 타이밍을 본다는 구상이다. 올해는 AI를 전격적으로 적용한 게임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 의장은 "생산성 향상보다는 AI를 통해 게임에 전혀 새로운 재미를 주는 접근의 임팩트가 더 강할 것"이라며 "예를 들어 버추얼 프렌드 같은 거다. 기술이 없을 때는 불가능했던 것이 가능해지면서 전혀 다른 재미나 소셜 플레이가 가능해진다. 탄생이 어렵지만 되면 퀀텀점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I 찬반 논란에 대해서는 특유의 실용주의적 해석을 내놨다. 윤리문제 등이 대두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AI는 결국 도구라는 것. "칼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만 사실 매우 좋은 도구다. AI는 축복스러운 도구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정말 좋은 도구를 얻은 것"이라는 장 의장은 "다만 어떻게 잘 쓸 거냐에 대해 책임 있는 사람들이 많이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인류가 우려도 하고 낙관도 하면서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새로운 도구가 탄생하면 인류는 무조건 받아들여 왔고, AI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받아들인다면 한국이 좀더 빨리 받아들여서 남들보다 앞서나가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논쟁이 많지만 결국 좀더 빨리 적용하는 게 남는 장사라는 것.
메타버스에 대해서도 AI와 비슷한 접근을 한다. 남들보다 앞서가며 시장을 열기보다는 타이밍을 봐서 뛰어들겠다는 것. 애플 비전프로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시기와 가격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크래프톤 입장에선 지금 시작하면 너무 빠른 투자다. 우린 콘텐츠 회사이니 결국 적시에 잘 만드는 게 필요하다. 타이밍을 보려 한다"고 말했다.
블록체인과 웹3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그런 부분은 보수적인 입장이다. 그들이 얘기하는 미래가 올 건지 회의적"이라는 장 대표는 "가상자산으로서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말이 된다. NFT(대체불가토큰)도 용도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나머지 용도에 대해서는 아직 검증된 게 아니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바일앱 통행세 30% 너무 높아"
최근 빅테크 규제 흐름 속에 애플과 구글의 모바일앱 앱스토어 지배력 남용이 이슈다. 애플은 EU(유럽연합)의 기조에 눌려 현지에서 앱스토어 벽을 허물기로 했다.
장 의장은 "30%에 달하는 모바일앱 통행세는 과도하다. 게임사들은 유명 IP에 대한 대가를 주고 앱스토어에 30%를 내고 게임 제작에도 투자해야 한다"면서 "처음 시장을 형성했다고 영원히 30% 수수료를 받는게 맞는가, 그게 전사회적으로 이로운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제 변화가 시작됐다고 본다. 30%에서 낮추는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본다. 콘텐츠 개발사 입장에선 숨 쉴 여지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애플, 구글이 아닌 제3의 앱스토어가 탄생해서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여지가 생겼다는 점에서 많은 함의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SW인재 키우기에 진심인 기업가
장 의장은 SW인재 키우기에도 진심이다. SW 개발자를 꿈꾸는 이들을 육성하는 프로그램 '크래프톤 정글'을 만들어 작년 3월 1기 수료생을 배출했다. 장 의장이 2020년부터 참여하고 있는 카이스트의 비학위 과정 'SW사관학교 정글'이 모태다. '크래프톤 정글'은 5개월간 교육생 전원이 합숙을 하며 주 100시간 이상의 합숙과 팀 기반 협업,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통해 개발자로 성장하는 기회를 준다.
크래프톤은 이와 함께 게임 인재 양성을 위해 파일럿 프로그램 '크래프톤 정글 게임랩'을 지난해 신설했다. 참가자들은 게임 제작의 기초를 배운 후 직접 게임을 만들어 스팀 플랫폼에 공개까지 하는 경험을 한다.
정글에 참여한 후 많은 이들이 눈빛부터 달라지고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도록 바뀐다는 장 의장은 정글 프로그램에서 특히 강조하는 게 평생학습하는 자세와 협업 능력이라고 말했다. "업의 특성상 개발환경이 계속 바뀐다. 이전에 배운 걸 버리고 새로 배워야 하는 게 많다"면서 "평생학습을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좋은 점은 한국 시장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일하고 역량에 맞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펍지: 배틀그라운드'가 세운 기네스 세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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