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만든 공수처, 이종섭 늑장수사로 총선 보은하나[핫이슈]
각자 입장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시끄러워질수록 여당에 악재가 될 것은 분명하다. 반면 지지부진한 수사로 이 대사 소환 조사에 키를 쥔 공수처가 민주당에 총선 보은(報恩)을 하는 것으로 비친다. 공수처는 태생부터 문재인 정권에서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 지지를 받아 2021년 1월 출발했다. 검찰 개혁 차원에서 기존 검찰 견제와 고위 공직자 권력형 비리를 색출한다는 명분이었다. 당시 민주당 소속 금태섭 의원 같은 사람은 공수처 설립에 반대했지만 여하튼 공수처 산파는 민주당이 분명하다. 당시 국민의힘은 검찰 장악 시도라며 반대했고, 이후 공수처 활동에 대해서도 무시했다. 그런 와중에 이 대사의 해병대원 순직 외압사건 수사를 맡은 공수처의 늑장 대응이 민주당을 돕고 있는 것이다. 얼떨결에 자신을 낳아준 민주당에게 총선을 앞두고 큰 보은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이 공수처에 즉각 수사를 외치고 있지만 공수처는 지금 수사할 역량이 안된다. 지난 1월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과 여운국 차장이 퇴임한 이후 후임자를 뽑지 못하고 있고, 처장직을 대행하던 김선규 수사 1부장마저 지난 4일 사직했다. 과거 수사 기록 유출 혐의로 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수사 2부장이 처장을 잠시 대행했다가 1부장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20일 복귀하며 그가 다시 맡았다. 이래서야 온전한 정신을 갖고 효율적인 수사를 기하기 어렵다.
더욱이 고위 공직자를 상대로 한 직권남용 수사는 확실한 증거 채집이 힘들고 따져볼 법리도 많아 난해한 수사 중 하나로 꼽힌다. 한 법조계 인사는 “그동안 기소 결과를 놓고서 역량 부족을 지적받는 공수처 검사들이 이 대사 건을 신속히 해결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공수처는 지난 9월 사건을 접수받은 뒤 올 1월 들어서야 압수수색 자료들에 대한 포렌식을 시작했다. 이 대사에 대한 본격 수사도 하지 않는 가운데 지난해 12월부터 출국금지를 한 달 단위로 연장해왔다. 이 대사가 호주 부임을 위해 출금을 풀어달라고 요청하자 그제서야 지난 7일 첫 조사가 진행됐다. 그리고는 정치권 분란이 한창인데도 소환 일정에 대해서는 함구중이다. 결과적으로 공수처 수사는 빨리 이뤄지기 힘들고, 총선 때까지 정치권 공방이 계속되면서 민주당은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수처 폐지를 공약했고, 현재 공석인 처장직 후보가 있음에도 지명하지 않고 있다. 공수처를 무시해서인지 이 대사가 수사 대상임에도 피의자를 외국에 파견한 것을 국민이 납득하기 힘들다. 그러나 지금은 나가있는 재외공관장을 수사 진행도 없는데 다시 불러들이거나 사퇴를 종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의 사퇴는 국내 문제지만 이 대사 건은 호주와의 외교 문제다. 그가 만일 그만둔다면 호주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으로부터 비웃음을 살 것이다. 피의자를 대사로 내보낸 것도 이례적인데 현지에 부임하자마자 옷을 벗거나 검찰 조사받으러 귀국한다는 소식을 전 세계가 어떻게 볼지 뻔하다. 만일 아그레망까지 받고 한국에 부임한 대사가 며칠 뒤 범죄 혐의로 사표를 내거나 임명이 철회됐다고 한다면 우리도 갸우뚱할 것이다. 일부 국민은 우리를 무시한 처사라며 분개할 것이다. 어쩌면 세계 외교사에서 황당하고 치욕적인 장면 중 하나로 남을지도 모른다.
정치권은 총선을 앞두고 표 계산도 중요하지만 국격도 고려했으면 좋겠다. 애초 검찰 수사를 받으러 한국과 호주를 들락날락해야 할 피의자를 대사로 보낸 것부터 성급했다. 총선이 끝나고 나갔다면 지금 같은 큰 파장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대사로 부임한 마당에 사퇴나 임명 철회로 가는 것은 더 우습다. 대통령실과 정치권이 공수처에 신속한 수사를 촉구해서 이 대사 소환 일자를 잡고 조속히 기소 여부를 확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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