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회칼 테러' 발언에서 황상무 사의까지...용산이 드러낸 문제들
대통령실 수석의 '언론 협박' 논란에도 서면 대응만, 공개질의 전무
'언론 자유' 존중한다면서 '언론기관의 책임'도 강조한 입장의 모순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기자 회칼 테러' 발언이 알려진 지 엿새 만에 사퇴했다.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20일 오전 6시49분께 “윤석열 대통령은 황상무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황 수석은 지난 14일 MBC를 포함한 방송사 기자들과의 점심 식사에서 “MBC는 잘 들어”라면서 “내가 (군)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고 말한 사실이 MBC 보도로 알려졌다. MBC는 당시 자리에서 황 수석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북한군 개입설을 등 폄훼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황 수석이 사퇴하기까지 대통령실의 대응은 되레 황 수석 사퇴 및 그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경질 요구에 불을 지펴왔다. 특히 앞서 대통령실이 황 수석 거취 문제를 일축하며 '언론 상대로 강압 행사한 적 없다'고 밝힌 입장은 그간의 행보와 어긋난다는 또 다른 비판을 자초하기도 했다.
황상무도 대변인실도 '서면 입장'…공개 질의 없어
황상무 수석의 '기자 회칼 테러' 발언이 알려진 건 지난 14일 저녁, 대통령실의 첫 반응은 이틀이 지난 16일 황 수석의 입장문으로 공개됐다. 통상 평일에 비해 언론 보도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 토요일 오전 시간대였다. 그마저도 5·18 민주화운동 폄훼 발언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대통령실은 그로부터도 이틀이 더 지난 18일, 역시 서면으로 대변인실 명의 입장문을 냈다.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 황 수석 발언 등 최근 대통령실이 거센 비판을 받는 두 현안에 각각의 입장문을 내는 데 그친 것이다. 황 전 수석 관련 입장에는 발언 당사자의 이름이나 그 내용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대통령 대변인실의 입장 전문은 아래와 같다.
“우리 정부는 과거 정권들과 같이 정보기관을 동원해 언론인을 사찰하거나 국세청을 동원해 언론사 세무사찰을 벌인 적도 없고, 그럴 의사나 시스템도 없습니다. 특히 대통령실은 특정 현안과 관련해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언론의 자유와 언론기관의 책임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국정철학입니다.”
이 짧은 입장문에 여러 모순이 담겼다.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본 적 없다'는 대목은 황 수석 발언이 더욱 큰 비판을 받는 이유와 정면으로 배치됐다. 황 수석이 “잘 들어”라고 특정한 MBC는 지난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뉴욕 순방 당시 비속어(바이든-날리면) 보도를 타사보다 빠르게 했다는 이유로 여권과 보수진영의 비판을 집중적으로 받았고, 외교부와 법적 다툼을 하고 있으며, 관련 방송심의 결과 최고수위 법정제재(과징금)를 받았다. 대통령실은 해외순방을 동행 취재하는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불허했고, 윤 대통령의 MBC 보도 비판에 반문했다 참모진과 언쟁을 벌인 MBC 기자는 온라인에서 살해 협박을 받아 경찰 신변 보호를 받은 바 있다.
'언론 자유'와 함께 '언론기관 책임' 거론한 대통령실
황 수석 발언에 대한 초기 보도 양상, 이후 대통령실의 대응도 위축된 언론 자유 현실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 '뉴스데스크'의 최초 보도 당일 황 수석 발언 문제는 본지와 미디어스 등 미디어 전문매체,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 일부 매체를 제외하면 인용되지 않았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작성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튿날인 15일부터는 정치권이나 언론단체 등의 비판을 중심으로 다수 매체의 기사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는 윤 대통령 비속어 발언이 '바이든-날리면' 사태로 번지며 언론에 대해 이뤄져온 압박을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대통령실이 대응을 하지 않는 것 자체로 일정 부분 보도가 제한되는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관련해 지난달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9개 방송사의 대통령 비속어 보도를 심의하기에 앞서 일부 매체가 윤 대통령 발언 자막 일부를 삭제하거나 수정하고, 방통심의위는 언론사 '사과 방송' 여부 등에 따라 차등적 법정제재를 한 사례도 상징적이다.
황 수석 발언에 대한 공개 질의가 가능한 자리는 전무했다.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14일 이후 윤 대통령의 공개 일정 등에 관해 서면으로 브리핑을 내고 있다. 대통령실 홍보수석과 대변인 등이 출입기자의 취재 요청에 선별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이 굳어진 가운데, 그나마 자유로운 질의응답이 가능한 브리핑도 열리지 않은 것이다. 황 수석 발언이 알려진 다음날이었던 15일엔 관례적으로 이뤄져온 비공개 오전 브리핑도 이뤄지지 않았다. '언론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대통령실이 정작 언론 자유의 근간인 자유로운 취재를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가능한 대목이다.
대통령실이 존중의 대상으로 “언론의 자유”와 더불어 “언론기관의 책임”을 언급한 점도 의미심장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선 MBC 취재진 전용기 탑승 배제에 대해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라며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언론의 책임이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외교부가 MBC의 윤 대통령 비속어 보도 관련 정정보도 청구소송 1심에서 승소했던 지난 1월엔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브리핑에서 “공영이라고 주장하는 방송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확인 절차도 없이 자막을 조작하면서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허위 보도를 낸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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