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훈풍..행동주의펀드 목소리 커진다

강구귀 2024. 3. 20.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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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산업·KT&G·금호석화·삼성물산 등 타깃



[파이낸셜뉴스]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세우면서 행동주의펀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가치를 제고해 증시를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의 계획과 주주환원을 원하는 행동주의펀드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영향이다.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달라진 분위기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지난 12일 이사회에서 2대주주(지분율 5.97%)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주주제안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모두 수용했다. 2021년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태광산업을 상대로 주주행동에 나선 후 양측이 각을 세워온 것을 고려하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셈이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에 대한 감사 선임에 실패한 바 있다.

태광산업은 2023년 10월 ESG경영을 선포, 이사회 중심 경영을 목표로 설정하면서 달라졌다.

트러스톤자산운용도 "태광산업 이사회가 2대 주주의 주주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점을 매우 높이 평가하며 향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KT&G(케이티엔지)는 방경만 KT&G 수석부사장과 사외이사인 임민규 이사회 의장을 이사로 선임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기업은행(지분율 6.93%)은 6년 만에 사외이사 후보인 손동환씨를 제안했다. 방경만 대표이사 사장·임민규 사외이사 후보 선임에는 반대해 달라고 주주들에게 요청했다.

행동주의 펀드인 플래시라이트캐피탈매니지먼트(FCP)는 이상현 대표 본인을 KT&G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이 대표는 사외이사 후보를 사퇴하고, IBK기업은행이 제안한 손동환씨를 지지했다.

금호석유화학에 대해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개인 최대주주 박철완 전 상무와 손잡은 후 압박을 높이고 있다. 김경호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을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로 제안했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금호석유화학에 보유 자사주를 100% 소각할 것을 요구했지만, 금호석유화학은 자사주 50%를 3년간 분할 소각한다고 밝히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은 "박찬구 회장과 박철완 전 상무간 경영권 분쟁과 무관하게 이사회 10석 중 견제할 수 있는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1인을 주주제안한다"고 밝혔다.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시티오브런던 등 5개 행동주의 펀드 연합은 삼성물산에 5000억원 자사주 매입, 보통주 4500원, 우선주 4550원씩 배당을 요구하는 주주 제안을 한 바 있다. 지난 15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과반이 넘는 주주들의 지지를 얻지는 못해 부결됐다. 보통주 1주당 2550원을 배당하는 이사회 안이 77% 찬성을 얻어 채택됐다. 5개 행동주의 펀드들의 배당 확대안은 23%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쳤다.

삼성물산은 직접 기관투자자에 회사의 입장과 미래 성장 전략 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은 소액주주의 표가 행동주의 펀드에 몰릴 가능성을 대비해 주요 기관투자자들을 만나며 지원을 당부했다.

영국계 자산운용사 시티 오브 런던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CLIM), 미국계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는 "기관투자자, 연기금,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등 다양한 주주들의 압도적인 지지는 삼성물산이 더 이상 소수의 이익을 위해 운영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정책 입안자들이 한국 기업들이 시장에서 적절한 가치를 평가받아야 할 필요성과 투자자들이 이러한 성장에 따른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행동주의 펀드 활동 아직 초기.."자사주 인정 못해"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은 아직 초기 단계라는 시각이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 등의 주주제안이 실제 정기 주총에서 통과되는 비율은 2021년과 2022년 각각 5.5%, 5.6%에 불과했고 지난해에 20.2%로 크게 늘어나기는 했으나 미국의 50% 등 선진국과 비교해서는 아직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강조하는 기업의 자사주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기업이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분 경쟁을 촉진시켜야 하는 구조와 상황"이라며 "회사 돈으로 취득한 ‘덤’인 자사주를 추가로 인정해야 할 필요성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지난 25년 동안 한국 대기업은 대부분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지배주주들은 지주회사에 대해서 평균 40%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비지주회사를 포함한 그룹 전체에 대한 평균 내부 지분율은 이미 60%를 넘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60.2%, 2023년 61.6% 이상"이라며 "이런 현실에서 더 이상 우리 기업을 온실속 에 넣어 두어서는 안된다. 이 정도의 높은 지분율이라면 누구나 현실에 안주하고 독단에 빠지기 쉽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우리 정부와 법원은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지배주주에게 이러한 ‘덤’을 허용해 왔다. 법원은 자사주를 회사의 다른 자산과 똑같이 처분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려 왔고, 2010 년 대법원이 같은 법리를 전제로한 판결을 했다. 그러자 정부는 2011년 상법을 개정해 자사주 처분시 신주 발행시와 같은 일반주주 보호 절차를 생략했다"며 "2024년이 된 지금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2008 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이미 주식시장을 통한 눈에 띄는 외국 자본의 공격은 없었다. 지금 우리 경제와 자본시장의 규모는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대등한 당사자로서 경쟁과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일본은 잃어버린 30 년 동안 금융기관의 지배와 대기업 간의 상호주 보유로 정체된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데 10년 이상이 걸렸다. 정부는 반드시 일반주주 이익을 침해하며 회사 돈으로 만든 자사주의 온실을 걷어 내고, 기업의 가치를 더 높게 보는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일반주주의 지지를 얻어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시장에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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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gg@fnnews.com 강구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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