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 아닌 투자로 성장하는 시대… ‘밸류업’ 성공땐 증시 2배 가능”[현안 인터뷰]

신보영 기자 2024. 3. 2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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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안 인터뷰 -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韓 주주환원율 주요국 최하위권
K - 디스카운트의 주범으로 작용
이사회 독립성키워 ‘거수기’ 탈피
상속·법인세 등 개편도 검토해야
日은 2012년부터 ‘밸류업’ 시작
임금 - 물가 등 선순환 구조 구축
국내 배터리·車 기업 잠재력 커
개인 - 기관 - 상장사 ‘윈윈’ 이뤄야
서유석 금융투자협회 회장이 지난 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협회 본사 23층에 위치한 대회의실에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를 위해 문을 열고 나오고 있다. 윤성호 기자

인터뷰 = 신보영 경제부장, 정리 = 신병남 기자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든든한 자본력이 필요하다. 몇몇 ‘큰손’이 아니라 다수의 경제인구가 자본시장에 참여해 ‘성숙한 자본주의’를 이루고,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여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윈윈’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증권사·자산운용사 등 정회원만 404개사가 가입해 있는 금융투자협회의 서유석(62) 회장은 18일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한국 경제가 은행의 대출로 성장했다면, 이제는 자본시장의 투자를 바탕으로 발전해야 하는 시대”라고 확신했다. 서 회장은 “우리 정부가 지난 2월 말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적극 환영한다”면서 “국내 증시의 ‘K-디스카운트’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실마리를 정확히 찾아 실타래를 풀기 시작한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삼성물산(1조 원)과 SK이노베이션(7936억 원)·기아(5000억 원)·메리츠금융지주(4000억 원)·KB금융(3200억 원) 등이 연이어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하면서 금융 당국의 주주환원 정책 강화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서 회장은 과거 정부에서도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밸류업’을 위해선 강력한 정책 의지와 함께 사회적 컨센서스(공감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배당성향 제고와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뿐 아니라 기업 거버넌스의 핵심인 이사회 개편, 세제 개편 등 ‘종합선물세트’를 ‘빅 픽처(큰 그림)’하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서 회장은 “밸류업이 성공한다면 현재 2600대 후반에 갇혀 있는 한국 증시가 2배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며 “밸류업의 수혜는 1400만 주식투자자뿐 아니라 국민연금·퇴직연금 등 사적연금 가입자 등 사실상 우리 모든 국민과 국가 경제 전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 회장과의 인터뷰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협회 23층 회장실에서 진행됐다.

―‘2·26 밸류업 프로그램’에 점수를 매긴다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만 정부가 다각도의 방안을 고민하고 있고, K-디스카운트가 지금 어느 때보다 공론화됐고,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때와는 다른 좋은 티핑포인트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K-디스카운트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업·산업의 장기 경쟁력 및 자기자본이익률(ROE) 저하, 낮은 배당 성향과 주주환원율, 기업 거버넌스와 이사회의 독립성 등이 주로 거론된다. 일례로 한국의 주주환원율은 최근 10년간 29% 수준으로, 주요 45개국 중 최하위권이다. K-디스카운트 요인은 서로 연결되어 얽혀 있어, 금번 밸류업 발표는 이들 고리를 푸는 핵심 트리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이해당사자가 너무 많아 단기간에 디스카운트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물론 장기간에 걸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가 벤치마킹하는 일본도 10년 넘게 자본시장 체질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다. 상장사·개인·기관·외국인·국민연금까지 모두가 윈윈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 이런 퍼즐을 맞추다 보면 자본시장 레벨업과 함께 국가 및 개인의 전체 효용도 증가하게 된다. 증시만 살리겠다고 접근하기보다는 국민과 기업, 나아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금번에는 기필코’라는 각오로 정부·국회·기업·자본시장 관계자 등 모두가 인내와 끈기를 갖고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일본 사례를 참고했는데, 일본의 조치는 무엇이었나.

“일본의 밸류업은 이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당시인 2012년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으로 꼽은 3개의 화살(금융·재정·성장) 중 하나가 엔저를 통한 기업 경쟁력 제고였다. 이 덕분에 일본 기업들의 재무 상황이 굉장히 좋다. 기업이 이익을 얻으니 임금이 올라가고, 그러다 보니 물가도 올라가면서 생산자 역시 더 좋은 값에 물건을 팔 수 있게 됐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하다.”

―미국·일본 등에 비해 국내 증시는 저평가돼 있다.

“미국의 경우 상장사가 자사주 매입(소각)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매년 주식 수가 꾸준히 줄어들면서 주당 가치가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구조다. 반대로 국내 증시는 ‘쪼개기 상장’ 등 신규 상장이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도 나름 사정이 있다. 일례로 기업들은 상속세와 같은 요소를 주요 제약 요인으로 거론하는데, 이 부분은 사회적 합의와 묘책이 필요하다.”

―협회 입장에서 밸류업 프로그램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내용이 있다면.

“우선은 주주환원율 제고다. 그래야 기업에 투자하는 주주·펀드·연기금 이익이 올라간다. 최근 국민연금 개혁 논의도 진행되고 있는데, 연금 수익률이 상승하면 연금 고갈 시기를 수십 년까지 늦출 수 있다. 그렇다고 기업이 미래 성장을 위해 남겨둔 사내 유보금을 모두 사용할 정도로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에 나서라는 것은 아니다. 배당이 1% 오르는 것보다 주가가 상승하는 게 주주 수익률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기업 거버넌스 개편 방향에 대해 제언한다면.

“무엇보다도 이사회가 거수기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회의 책임이 회사에 대한 책임과 함께 주주에 대해서도 충실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 이게 관철되면 기업 거버넌스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돼 쪼개기 상장 등이 쉽지 않을 것이다.”

―업계에서는 배당과 이자 과세를 별도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던데.

“현행 과세 체계는 이자·배당세에 대해 동일한 세율을 부과하는 구조다. 하지만 이자와 배당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이자는 은행에 예금을 넣어두면 받을 수 있는 위험이 없는 소득이다. 반면에 배당은 적극적인 기업 활동에의 생산적 투자를 통해 얻는 일종의 자본이득 개념이다. 따라서 이자와 달리 배당은 리스크가 반드시 동반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주가 하락이 배당을 초과할 수 있음에도 손실은 감안되지 않고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과세된다. 양자를 무조건 같은 범주에 놓고 보기보다는 경제 효용 등을 감안해 달리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주가가 얼마까지 오르나.

“현재 기준(2600대 후반)의 2배도 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반도체·배터리·자동차·철강·방산·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글로벌 톱티어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이 기업들은 글로벌을 대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성장성이 높고 주가도 이에 수렴할 수 있다. 한국에 상장돼 있음으로 인한 K-디스카운트가 해소된다면 외국인 등 투자 수요는 훨씬 증가할 것이고, 한국 기업에 대한 잠재력 평가도 개선될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으로, 이에 대한 투자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국내 자본시장법하에서는 법 위반 소지가 있어 허용되지 않고 있다. 향후 정부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로 은행에서 관련 상품을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은행에서 원천적으로 팔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문제가 있다. 제대로 잘 팔 수 있는 사람이 팔면 된다. 예를 들면 은행예금·대출 창구가 아니라 비예금성 상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프라이빗뱅커(PB)센터에서 판다던가 하는 방식이다. 또는 손실가능 폭을 제한한 ELS 등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협회에서 밸류업 프로그램 지원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계획이 있나.

“지난 15일 자본시장 밸류업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먼저 이르면 오는 5월쯤 세미나를 준비해 한국이 벤치마킹한 일본 자본시장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사를 연사로 초청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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