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병맛’은 없었다… ‘닭강정’은 졸작인가 수작인가
닭강정으로 변해버린 딸 위해
고군분투하는 코미디 시리즈
엉뚱한 설정에 B급 정서 중무장
익숙한 캐릭터와 낯익은 배우들
감독 속내 읽혀 ‘반전’ 묘미 부족
“이제 (패턴이) 읽혔구나…, 지금 엄청 고민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신작 ‘닭강정’을 내놓은 이병헌 감독은 18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문화일보와 만나 이같이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극한직업’을 필두로 ‘멜로가 체질’ ‘스물’ ‘드림’ 등에서 선보인 이 감독 특유의 코미디 문법과 차진 대사가 이제 ‘아는 맛’이 되어버린 탓이다. 하지만 돌려 생각하면, 이 감독의 팬들 입장에서 ‘닭강정’은 “이병헌답다”는 반응을 보일 만한 작품이란 평가다.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이 감독은 “호불호 정도가 아니라, 호불호불이 엄청 갈린다”고 말했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다는 방증이다. ‘닭강정’은 왜 문제작이 됐을까.
동명 웹툰을 바탕으로 한 ‘닭강정’의 줄거리는 한 줄로 요약된다. 미지의 기계에 들어갔다가 닭강정으로 변한 딸 최민아(김유정 분)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 최선만(류승룡 분)과 최민아를 짝사랑하는 고백중(안재홍 분)의 좌충우돌 소동극이다.
‘닭강정’은 재기발랄하고 엉뚱한 설정과 B급 정서가 초지일관 이어지는 시쳇말로 ‘병맛’ 드라마다. 인간이 닭강정이 된다는 상상력을 시작으로, “닭강정이 춥겠다”며 휴지로 덮어주거나, 다른 닭강정과 섞인 무더기 속에서 딸을 찾기 위해 닭강정 장인을 찾아가는 식이다. 여기에 부담스러운 형광색 옷을 입고 못 부르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고백중, “나는 꿈이 아주 작아. 그래서 다 이루었지”라며 낙천적 성격으로 연극배우 같은 말투를 쓰는 최선만 등도 이 감독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코믹한 캐릭터 구축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주고받는 대사와 등장인물 면면을 보면 ‘닭강정’ 곳곳에 이 감독의 인장이 찍힌다. 고백중의 헤어진 연인은 “넌 평양냉면 같은 남자였어. 맑고 투명하지만 육향 가득한. 그렇게 포장해놓고 민트초코에 탕수육 ‘찍먹’에 익힌 과일까지 피자에 토핑하면서 날 기만했어”라고 고백중을 타박하고, 변신 기계에 들어갔다가 애벌레가 된 박사는 “드라마가 유일한 친구였고 ‘멜로가 체질’을 반복 시청하는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고 자신을 설명하며 이 감독의 히트작인 ‘멜로가 체질’을 거론한다.
아울러 이 감독의 대표작 속 주인공이었던 류승룡과 안재홍을 비롯해 양현민·정승길·고창석 등 ‘이병헌 사단’이라 불리는 이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는 이 감독의 팬들 입장에서는 반가운 설정이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들키는 약점으로 작용했다. 각 배우가 익숙한 캐릭터를 맡고 있기 때문에 ‘반전’이 묘미인 코미디 장르에서 이 감독의 속내가 읽히고 있는 셈이다.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매번 ‘이 장면은 필요한가?’를 되물으며 찍었는데, 이 재미있는 작품을 연출하며 ‘내 이름이 걸림돌이 되는구나’ 싶었다”면서도 “코미디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장르인데 이제는 해외 시청자까지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이들에게 가장 어필하기 힘든 장르인데 ‘닭강정’을 통해 해외 관객들의 반응도 살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30분물 10부작이라는 것은 ‘닭강정’의 강점이다. 유튜브 ‘쇼츠(shorts)’가 대세인 분위기 속, 이 감독의 새로운 시도다. 총 300분으로 기존 드라마 5편 정도 분량이다. 소소한 에피소드와 귀를 간지럽히는 말장난이 오가는 사이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 변신 기계에 들어간 고백중이 “차은우!”라고 외치는 3회 마지막 장면을 본 후, 4회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감독은 “이 이야기를 길게 할 자신이 없었다. 가볍게 보고 늘어지지 않게 하자고 결론 내리고 쇼트폼으로 만들었다”면서 “요즘 콘텐츠는 길면 안 된다. 제가 생각하는 리듬을 지키려 했다”고 설명했다.
변화를 고민해야 할 타이밍에 이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 불리는 김은숙 작가와 만났다. 배우 김우빈·수지가 주연을 맡은 ‘다 이루어질지니’를 촬영 중이다. 직접 대본을 쓰던 이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에 몰두하는 작품이다. 맛깔나는 대사로 유명한 두 크리에이터의 만남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이 감독은 “김 작가님의 대본은 너무 재미있다”며 “이제 막 촬영을 시작한 초반이라 말하기 어렵다”고 구체적 설명은 자제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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