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불황 아니다' 벼랑 끝서 체질 바꾸는 석유화학

나원식 2024. 3. 20.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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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공급 과잉에 타격…석유화학 사업 효율화 지속
고부가·신사업 등 포트폴리오 다각화…일본 전철 밟는다

불황에 빠진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이 가속하고 있다. 중국발 공급 확대와 정유 업체들의 영역 확대 등으로 타격을 받은 영향이다. 국내 기업들은 국내외 법인이나 공장을 매각하는 등 기존 주력 사업의 몸집을 줄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대신 고부가 제품의 경쟁력을 강화하거나 이차전지·친환경 소재 등 신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의 불황이 단순히 일시적인 업황 악화라기보다는 산업 구조 개편에 따른 변화라는 점에서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래픽=비즈워치.

국내외 석유화학 법인·공장 '정리' 가속화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롯데케미칼이 공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중국 내 기초 석유화학 생산 공장인 롯데케미칼자싱과 롯데케미칼삼강 지분을 현지 협력사에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 중국 허페이 법인과 롯데케미칼폴란드(폴란드 판매법인), 롯데케미칼폴란드), 계열사 케이피켐텍 등을 매각하거나 청산했다. 롯데케미칼은 또 말레이시아의 대규모 생산기지인 자회사 롯데케미칼타이탄(LC타이탄)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 측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사항은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종속회사인 LC타이탄과 관련해 다양한 전략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 1위 LG화학도 기존 석유화학 사업 효율화와 구조 재편 등으로 분주한 모습이다. LG화학은 지난해 석유화학 원료인 스티렌모노머(SM)를 생산하는 대신 SM 공장 철거를 완료하고, IT 소재 사업부 내 편광판과 편광판 소재 사업 부문을 매각하는 등 저수익 사업을 정리한 바 있다.

올해 들어서도 여수 SM공장 가동을 이달 말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제조하는 전남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2공장의 지분을 매각한다는 말도 시장에서 지속해 나오고 있다. LG화학 측 역시 이와 관련해 정해진 사항은 없다면서도 석유화학 사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호석유화학의 경우 중국 기업과 합작해 지난 2009년부터 운영해 왔던 라텍스 공장 지분 50% 전량 매각하기도 했다.

중국 등에서 공급 과잉…"국내 석화 업체, 근본 변화 필요"

석유화학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는 이유는 업황이 지속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석유화학 제품 수출액은 456억달러로 전년보다 15.9% 감소했다.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의 지난해 실적도 눈에 띄게 나빠졌다.

국내 석유화학 4사 영업이익 변화. /그래픽=비즈워치.

통상 석유화학 시장은 경기 순환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특성이 있다. 이를 고려하면 최근의 불황 뒤 호황을 기대할 수 있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그 전과는 다르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 수년 간의 경기 불황으로 수요가 위축한 와중에 중국 기업들이 공격적인 증설을 통해 석유화학 제품을 싼값에 공급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전 세계적으로 정유 업체들이 기존 정유 사업뿐 아니라 석유화학 산업에 진출하고 있다는 점도 악재다. 결국 수요는 줄었는데 공급만 크게 늘어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공급이 크게 늘어난 범용 제품보다는 고부가 제품이나 신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LG화학의 경우 배터리와 친환경 소재, 신약을 3대 신성장동력으로 정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롯데케미칼 역시 이차전지 소재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적극 투자 중이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일본에서 먼저 나타났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당시에는 국내 기업들의 공급 확대로 일본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지면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한 바 있다.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 역시 이런 전철을 밟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은 1990년대부터 내수 침체와 함께 중동과 대만, 한국 등 아시아 신흥국들의 증설 부담을 느끼며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을 시작했다"며 "이러한 전환 이후 시황이 좋을 때의 이익은 다소 축소됐지만 최근과 같은 하강 국면에서는 높은 이익 방어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는 중국의 끊임없는 증설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들 역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분석했다.

국내 석유화학 업체 관계자는 "향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중동 지역 분쟁 등이 끝난 뒤 재건 사업 등이 이뤄지면서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하면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 있겠지만, 단기간에 분위기가 바뀔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지금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석유화학 영역에서는 고부가 제품 등으로 경쟁력을 키워가고, 신사업도 지속해 준비하는 등 투트랙으로 향후 성장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원식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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