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 112신고가 장난? 허위신고가 불러온 무거운 책임
작년 5월경 대전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에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A게임장에 감금돼 있으니 살려달라", "손님이 휘발유를 뿌리고, 난동부리며 불을 지르려고 한다" 등의 긴박하고도 위급한 내용이었다. 4일간 총 16회에 걸친 신고를 받고 대전경찰청 풍속수사팀을 비롯해 형사, 인접 지구대·파출소 등 총 59명의 경찰관들이 신속하게 출동했으나, 해당 신고는 게임장 업무를 방해할 목적을 가지고 저지른 명백한 허위신고로 밝혀졌다. 허위신고를 한 3명의 일당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혐의로 검거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형사처벌 뿐 아니라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은 허위신고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지난달 13일 대전지방법원은 출동 경찰관들이 느꼈던 극심한 긴장감과 허위신고임을 알고 느꼈던 허탈감 등의 정신적 피해를 상당 부분 인정하여 1000여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허위신고자에 대한 형사처벌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허위신고로 인한 경찰력 낭비에 대해 경종을 울렸으며, 출동 경찰관들은 지급받은 위자료를 불우이웃 등에 기부할 예정이기에 더욱 뜻깊은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만우절(4월 1일)이 되면 112·119로 장난전화나 허위신고가 종종 들어왔다. 신고자들은 가벼운 장난으로 여겼지만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관들과 소방관들은 일일이 출동해 상황을 확인해야 하기에 진땀을 빼야만 했고, 허위신고임을 알게 된 뒤에는 허무함과 허탈감을 느끼곤 했다. 이제는 지속적인 홍보활동으로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져 만우절 허위신고는 거의 없어졌지만, 비교적 최근인 2021년 4월 우리 지역에서 B대학교 도서관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허위글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경찰과 군부대가 출동해 교직원과 학생 200여 명을 대피시키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허위글 작성자는 '만우절 장난으로 관심을 받고 싶어 거짓으로 꾸며 냈다'는 취지로 뒤늦게 자백했지만, 경찰력과 행정력을 낭비시킨 책임으로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112 허위신고는 매년 전국적으로 4000여 건, 하루 평균 10여 건에 이르고 있고, 대전지역에서도 지난해 96건의 허위신고가 있었다. 지구대와 파출소 등 최일선 치안 현장에서는 한정된 경찰력으로 폭증하는 112신고를 처리하기 위해 경찰관들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접수된 허위신고로 인해 실제 위급한 일을 당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경찰관이 출동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허위신고로 인해 경찰력이 낭비되는 심각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이웃과 가족들에게 되돌아가게 된다.
112신고는 국민과 경찰을 잇는 비상벨이자 경찰활동의 출발점이다. 연간 약 2000만 건의 신고처리 시 수반되는 법 집행 활동과 그에 따른 파급력에도 불구하고 행정규칙(경찰청 예규)을 통해 운영돼 왔는데, 오는 7월 3일부터 112경찰 활동의 역할과 권한 등을 규정한 '112신고의 운영 및 처리에 관한 법률(112기본법)'이 시행된다.
112기본법에는 급박한 112신고처리 현장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위한 '긴급조치권'과 재해·재난 등 국민안전과 직결되는 긴급한 112신고 현장에서의 '피난명령권'이 명시돼 있으며, 경찰·소방 간 공동대응 등 상호 협업 강화 규정 등이 담겨있어 현장 경찰관들이 실효적인 경찰활동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간 4000여 건에 달하는 거짓·장난신고 근절을 위해 관련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500만 원 이하 과태료)이 마련돼, 현재 형법상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와 경범죄처벌법상 '거짓신고' 사이의 처벌 형량 차이를 보완하는 등 허위신고 근절을 위한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허위신고 근절은 경찰의 노력과 강력한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허위신고는 국민의 생명 또는 안전과 직결되는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할 것이다. 올해 112기본법 시행을 계기로 대전시민 모두의 적극적인 관심과 도움이 더해져 112 허위신고 근절의 원년(元年)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윤승영 대전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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