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다빈치와 AI
르네상스 미술여행을 다녀왔다. 많이 놀랐다. 우피치, 바티칸 등 세계적인 미술관마다 한국인 관람객 그룹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티칸의 어느 전시실은 한국인 그룹 네 팀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해설을 들으며 작품을 응시했다. 우피치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고무적이다. 명품백을 쇼핑하러 다니는 관광객들보다 인문학적 지식을 체득하려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진 것은.
그들을 보면서 한 가지 희망사항이 생겼다. 남들과 다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정신을 배우고 왔으면 하는 것이다. 당시 남들과 비슷하게 그린 사람들은 이제 잊혔다. 자신만의 고유성을 표현한 예술가들은 오늘도 세계의 관객을 작품 앞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교과서적 해설을 들으며 작품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거기서 그치기엔 조금 아쉽다. 비판적 감상을 추가하면 좋겠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작품을 감상해 보자는 것이다. 필자의 감상법을 예로 들어보겠다.
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좋아한다. 그 중 '수태고지'를 가장 좋아한다. 내 눈에 가장 다빈치다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독자께서는 인터넷에서 이 그림을 찾아본 후 글을 계속 읽으시면 좋겠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이 그림은 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의 집에 와서 그녀가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음을 알리는, 누가복음의 중요한 순간을 묘사한 다빈치의 초기작품이다. 소재론 특별할 게 없다. 그러나 다빈치는 대담하게도 이 그림에 놀라운 비밀을 숨겨놓았다.
첫째, 마리아를 보자. 대개 마리아는 '어머, 제가요?' 하는 표정을 지으며 당황스러워한다. 많은 화가가 그렇게 그렸다. 그러나 다빈치의 마리아는 '그래서요?' 하는 표정이다. 그녀의 아랫배는 이미 약간 불렀고 다리는 '쩍벌' 상태다. 임신부가 취하는 자연스러운 자세다. 배에는 황금빛 천을 둘러 중요한 아이를 가졌음을 암시한다.
둘째, 천사를 보자. 일반적으로 천사는 계시를 전하러 온 공손한 표정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다빈치의 가브리엘은 '임신하신 거 맞죠?' 하는 표정으로 마리아의 배를 '째려'본다. 천사의 날개를 보자. 다빈치는 누구보다 완벽하게 날개를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당연하다. 그는 비행기를 만들려던 사람이다. 저 날개로 사람이 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천사의 날개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게 무대의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날개를 팔뚝에 묶어 고정한 것이다.
셋째, 후광을 보자. 당시 성인의 머리에는 반드시 후광을 그렸다. 그러나 마리아의 머리에는 후광이 아니라 둥근 모양의 장신구가 있다. 다빈치는 과학자였다. 인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접시형 발광체를 도저히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수태고지 그림에 반드시 등장하는 비둘기가 없다. 대신 마리아의 방 안에 침대가 보인다. 잉태의 원인으로 성령을 상징하는 흰 비둘기 대신 붉은 침대를 그려넣은 것이다.
이 정도면 무신론자, 혹은 이신론자의 교묘한 자기고백이 아니었을까. 이상은 필자의 해석이고 이 작품에 관한 일반적인 해설에서는 다빈치답지 않게 원근법이 틀렸으며 오른팔 길이가 왼팔보다 길게 그려졌다는 것 등을 지적한다. 초기작품이라 미숙해서 그랬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림 위에 직접 선을 그려보았다. 모든 선이 하나의 소실점에 정확히 모인다. 원근법엔 문제가 없다. 팔 길이는? 마리아의 왼팔이 앞쪽으로 나와 있어 비교적 짧게 보일 뿐이다.
인공지능(AI)의 시대가 왔다. 스마트폰에 "다빈치의 수태고지에 관해 설명해줘"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같은 설명이 줄줄 나온다. 우리나라는 남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경쟁하는 사회로 유명하다.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 500년 전 르네상스 예술가들처럼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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