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전쟁의 안타까운 이면[편집실에서]
‘역사전쟁’이라고 하면 대개 국가 간의 일을 지칭합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주변국과 갈등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 논란 등이 쉽게 떠오릅니다.
그런데 한국 지방자치단체 간에도 역사전쟁이 진행 중입니다. 새만금 사업으로 바다를 메워 만든 땅, 정확히는 그 앞에 들어설 신항만을 둘러싸고 인근 지자체 간 분쟁이 생겼고, 급기야 역사전쟁으로 번졌습니다.
새만금 사업은 갯벌을 메워 땅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 전라북도 군산-군산 관할의 고군산군도-부안으로 이어지는 방조제를 만들었습니다. 이 방조제는 구간별로 주인이 따로 있는데 1방조제는 부안군, 2방조제는 김제시, 3~4방조제는 군산시 몫입니다.
문제는 2방조제 바깥쪽 바다에 건립되는 신항만입니다. 신항만은 최종 계획상으로는 고군산군도 중 하나인 두리도와도 연결되는데 김제는 2방조제에 붙어 있으니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군산은 군산에 포함되는 두리도에 연결될 것이니 자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갈등이 격화되다 보니 고군산군도가 원래 누구 땅이었냐 따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고구려·신라·백제가 세력을 다투던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고군산군도는 군산 남서쪽 바다에 63개 섬으로 구성됩니다. 고려시대에 수군 진영을 두고 ‘군산진’이라 불렀습니다. 조선 세종 때 진영이 인근 육지로 옮기면서 지명까지 가져가자 이 섬들은 옛 고(古) 자를 앞에 넣어 고군산군도가 됐습니다. 군산시는 고군산군도를 포함한 현재의 해상경계선이 새만금 관할권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해상경계선은 1918년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지형도에 처음 나타납니다. 이후 1976년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지형도에서도 고군산군도 근해는 해상경계선 기준으로 군산시 관할임이 확인됩니다.
김제시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 그어진 해상경계선은 청산해야 할 일제의 잔재라고 주장합니다. 김제시는 “고군산군도는 삼국시대부터 1697년 동안 김제시 관할이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등 고문서와 고지도를 제시합니다.
표면만 놓고 보면 이권을 둘러싼 지자체 간의 ‘진흙탕 싸움’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속내를 파보면 이 갈등 뒤에 쇠락해가는 지방도시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군산시나 김제시나 처한 현실은 비슷합니다. 그동안 도시를 이끌어온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성장은 정체됐는데 새로운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인구는 계속 줄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희망을 걸어볼 곳은 새만금 개발이 전부입니다.
주간경향 1570호 표지 이야기는 전북 군산시와 김제시의 ‘서글픈’ 역사전쟁을 계기로 지방도시의 현실을 전합니다. 현실적으로 새만금 사업의 전망도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진행됐지만, 만들어진 땅 대부분이 놀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새만금 잼버리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이미지도 추락했습니다. 그런데도 지방도시들은 새만금 사업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아직 삽도 제대로 뜨지 않은 신항만을 가져오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군산과 김제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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