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세부담 덜겠다는 정부, 고가 주택 보유자에게만 혜택”
고가·저가 주택 시세반영률 차이 해소 방안도 ‘불투명’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폐기 선언을 두고 전문가들은 “공시가격을 둘러싼 혼란이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공시가격과 시세의 차이가 벌어질수록 고가주택 보유자의 세금 부담이 저가주택 보유자보다 줄어들게 된다는 점에서 ‘부자 감세’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공시가격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같은 부동산 보유세뿐 아니라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등 67개 행정제도의 기준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1주택자보다는 다주택자, 지방보다는 서울, 저가주택보다는 고가주택 보유자일수록 적용되는 공시가격과 시세의 차이가 큰 편이다. 이 경우 실제 가진 부동산 자산에 비해 세금을 덜 내고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공시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이어졌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2035년까지 공시가격을 시세의 90%까지 단계적으로 끌어올린다’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수립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 ‘국민의 보유세 부담’을 높인다는 입장이다. 2022년 집값 하락기가 시작된 후로는 공시가격은 올라가는 반면 실거래가는 내려가는 공시가격 ‘역전 현상’도 일부 고가주택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현실화 계획 수립 이전인 2020년 수준(69.0%)으로 되돌리고 올해엔 이를 동결하면서, 사실상 현실화 계획 폐지 수순을 밟아왔다.
문제는 폐지 이후다. 현실화 계획 수립 배경이었던 ‘고가주택과 저가주택의 시세 반영률 차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불투명하다. 부촌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단독주택의 시세 반영률은 40~50%인 반면, 지방 저가주택은 70~80%에 달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폐지 후에도 주택 유형이나 지역·가격대별 반영률의 ‘키 맞추기 작업’은 계속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당장 내년도 공시가격을 어떻게 산정할지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현실화 계획 폐지가 공시가격을 둘러싼 혼란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세는 물론 공시가격 현실화율조차 공개되지 않는다면 단지별 공시가격에 차이가 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는 “객관적인 지표가 되어야 할 공시가격을 정부가 알아서 정하겠다는 뜻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현실화 계획 폐지 근거로 내세운 ‘국민 세 부담’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실거래가가 공시가를 초과하는 단지는 전국적으로 2020년 171개(0.4%), 2023년 58개에 불과했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부동산 보유세의 누진적 세제구조상 현실화 계획 폐지는 자산 소유자를 위한 감세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실현 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은 ‘부동산 가격 공시에 관한 법’에 명시된 만큼 이를 폐기하기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내년도 공시가격 산정 방식을 발표하는 11월까지 법률 개정 작업을 마무리할 방침이지만, 다음달 총선 결과에 따라 법안 통과 여부는 달라질 수 있다.
심윤지·유희곤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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