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넬까지 얻은 샌프란시스코, 이정후 데뷔시즌 가을야구 가능성 생겼다[줌 인 MLB]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최대어’ 블레이크 스넬의 최종 행선지는 결국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결정났다. MLB네트워크의 존 헤이먼은 19일 “스넬이 샌프란시스코로 간다. 계약 기간은 2년 6200만 달러이며 옵트아웃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MLB닷컴 역시 스넬이 샌프란시스코와 계약에 합의했다며 상세한 내용을 전했다.
지난해 샌디에이고에서 180이닝을 던져 14승9패 평균자책점 2.25 234탈삼진의 기록을 낸 스넬은 시즌 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2018년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던 스넬은 게일로드 페리,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스, 로저 클레멘스, 로이 할러데이, 맥스 슈어저에 이어 양대리그 사이영상을 모두 수상한 역대 7번째 투수가 됐다.
2018 스넬(TB) : 180.2이닝 21승5패 ERA 1.89 ERA+ 217 221K-64BB WHIP 0.97 bWAR 7.1 fWAR 4.7
2023 스넬(SD) : 180이닝 14승9패 ERA 2.25 ERA+ 182 234K-99BB WHIP 1.19 bWAR 6.0 fWAR 4.1
하지만 스넬은 사이영상을 수상한 시즌과 그렇지 않은 시즌의 편차가 너무 컸다. 누구나 실력은 인정하지만, 그 실력의 기복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 결국 버티기 전략이 실패로 돌아간 스캇 보라스가 항복을 선언하면서 스넬은 앞서 계약한 보라스의 고객들인 코디 벨린저(3년 8000만 달러)와 맷 채프먼(3년 5400만 달러)처럼 기간은 짧게 하고 연평균 연봉을 높이는 대신 옵트아웃 조항을 삽입해 FA 재수에 도전할 장치를 마련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스넬은 지난해 첫 9경기에서 1승6패 평균자책점 5.40으로 크게 부진했다. 그런데 5월26일 워싱턴 내셔널스전(5이닝 4피안타 4볼넷 6탈삼진 1실점 승리)을 시작으로 마지막 23경기에서 13승3패 평균자책점 1.20의 대반전을 만들어내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스넬은 현역 투수들 가운데 패스트볼-브레이킹볼 조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투수다. 패스트볼-브레이킹볼로 무장한 투수들은 브레이킹볼보다는 패스트볼의 위력이 떨어지면 고전하는 경우가 많다. 스넬도 지난해 초반 패스트볼의 위력 저하로 어려움을 겪었다. 구속보다는, ‘영점’이 잡히지 않아서였다. 패스트볼의 제구가 안되다보니 한가운데로 몰리는 일이 많아졌고, 타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스넬의 패스트볼을 받아쳤다.
4월 한 달간 스넬의 패스트볼 피안타율은 무려 0.404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5월 패스트볼 피안타율은 0.206로 크게 좋아졌다. 6월에 0.231로 살짝 올라간 수치를 보이긴 했지만 7월 이후 0.224로 다시 좋아진 모습을 보이고 시즌을 끝냈다.
패스트볼이 다시 위력을 찾은 것과 함께, 스넬에게는 또 다른 ‘주목할 사건’이 있었다. 바로 체인지업의 비중을 다시 끌어올린 것이다.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 2018년만 하더라도 스넬의 서드 피치는 슬라이더가 아니라 체인지업이었다. 하지만 이후 2년간 스넬의 체인지업은 이상하게 말을 듣지 않았고, 샌디에이고 이적 첫 해인 2021년 체인지업 피안타율이 0.429까지 치솟자 결국 이듬해 스스로 봉인했다. 안 던진 것은 아니지만, 비중을 5.0%까지 낮추며 정말 특별한 순간이 아니면 던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스넬의 체인지업 비중은 18.4%로 커브(19.8%) 다음으로 높아졌다. 눈여겨볼 것은 월별 구종 비율이었는데, 6월과 7월에는 커브와 슬라이더를 제치고 ‘세컨드 피치’의 위용을 자랑하기도 했다.
결국 스넬은 패스트볼(48.6%), 커브, 체인지업, 슬라이더(13.1%)의 비율을 절묘할 정도로 맞추는데 성공, 2018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성공했다. 배분만 놓고 따지면, 2018년보다 조금 더 좋다.
<스넬의 연도별 구종 비율>
2016 :패스트볼(57.3)/체인지업(17.9)/커브(12.7)/슬라이더(12.1)
2017 : 패스트볼(55.0)/체인지업(21.1)/슬라이더(13.8)/커브(10.1)
2018 : 패스트볼(51.5)/커브(20.2)/체인지업(19.2)/슬라이더(9.1)
2019 : 패스트볼(48.4)/커브(24.6)/체인지업(20.4)/슬라이더(6.7)
2020 : 패스트볼(50.9)/체인지업(19.5)/슬라이더(15.1)/커브(14.4)
2021 : 패스트볼(52.5)/슬라이더(24.4)/커브(13.3)/체인지업(9.9)
2022 : 패스트볼(55.5)/슬라이더(24.3)/커브(15.1)/체인지업(5.0)
2023 : 패스트볼(48.6)/커브(19.8)/체인지업(18.4)/슬라이더(13.1)
봉인을 푼 체인지업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지난해 스넬의 체인지업은 피안타율이 0.185로, 체인지업을 500개 이상 던진 투수들 가운데에서는 데빈 윌리엄스, 닉 마르티네스, 트레버 리처즈, 메릴 켈리, 카일 헨드릭스, 패트릭 산도발 다음으로 좋았다. 특히 헛스윙률에서는 46.8%로 셰인 맥클래나한, 리처즈 다음이었다. 타자들은 패스트볼과 비슷한 릴리스포인트에서 뿌려지는 스넬의 체인지업에 패스트볼 타이밍에 방망이를 휘둘렀다가 당하는 장면을 수도 없이 연출했다. 체인지업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데 성공하면서, 스넬은 강력한 패스트볼에 플러스 피치를 3개나 가진 투수가 됐다.
체인지업의 위력을 되찾고 구종 배분도 환상적으로 가져가긴 했지만, 스넬을 향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스넬은 에이스치고는 이상하게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바로 불안한 제구력 때문이다. 스넬은 지난해 99개의 볼넷으로 리그 1위에 오르며 평균자책점과 볼넷에서 모두 리그 1위에 오른 최초의 투수가 됐다. 규정이닝을 채우기는 해도, 에이스의 상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200이닝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도 결국 많은 볼넷으로 인한 투구수 문제가 컸다.
이렇게 제구력이 흔들리는 가운데에서도 스넬이 실점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최상급의 피안타 억제력 덕분이었다. 지난해 스넬은 규정이닝 투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1할대 피안타율(0.181)을 기록했으며, 헛스윙률 또한 37.3%로 38.6%를 기록한 스펜서 스트라이더 다음으로 뛰어났다.
안타를 적게 주고 삼진을 많이 잡아 많은 볼넷이라는 단점을 상쇄하는 스넬의 피칭 스타일은 구위, 그 중에서도 패스트볼 구위가 하락하면 크게 위험해질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스넬의 패스트볼 구위에 큰 이상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2년과 지난해는 패스트볼 피안타율이 0.255로 다소 높았지만, 지난해의 경우 4월 한 달간 0.404로 난타를 당했기 때문으로 4월을 제외한 나머지 달의 패스트볼 피안타율은 0.220으로 괜찮았다. 구속 역시 평균 95마일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스넬의 연도별 패스트볼 구속&피안타율&헛스윙률>
2016 : 94.2마일/0.344/19.5%
2017 : 94.3마일/0.240/14.1%
2018 : 95.8마일/0.222/24.7%
2019 : 95.5마일/0.265/27.1%
2020 : 95.0마일/0.326/22.8%
2021 : 95.1마일/0.213/21.4%
2022 : 95.8마일/0.255/22.4%
2023 : 95.5마일/0.255/19.5%
스넬이 지난해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샌프란시스코는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원투펀치를 보유하게 됐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2위에 오른 로건 웹이 1선발, 스넬이 2선발로 나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오른손 투수이면서 지난해 이닝 1위(216이닝)이자 리그 최고의 땅볼 투수인 웹과, 왼손 투수이면서 지난해 평균자책점, 탈삼진 1위 투수인 스넬의 만남은 그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원투펀치의 위력만 놓고 보면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잭 휠러-애런 놀라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거나, 오히려 앞서는 부분도 있다. 여기에 지난해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제구력에 상당한 향상을 보이고 올해 선발 전환에 나서는 조던 힉스가 선발 로테이션의 중간을 맡아준다면 트레이드로 영입, 팔꿈치 수술에서 회복중인 로비 레이(후반기 복귀)와 엉덩이 수술을 받은 알렉스 콥(5월중 복귀)이 돌아올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는 로테이션을 꾸릴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예상 선발 로테이션>
로건 웹(우)
블레이크 스넬(좌)
조던 힉스(우)
카일 해리슨(좌)
키튼 윈(우)
<2023년 웹-스넬 vs 휠러-놀라>
웹 : 216이닝 11승13패 ERA 3.25 194K-31BB WHIP 1.07 bWAR 5.7 fWAR 4.9
스넬 : 180이닝 14승9패 ERA 2.25 234K-99BB WHIP 1.19 bWAR 6.0 fWAR 4.1
휠러 : 192이닝 13승6패 ERA 3.61 212K-39BB WHIP 1.08 bWAR 4.2 fWAR 5.9
놀라 : 193.2이닝 12승9패 ERA 4.46 202K-45BB WHIP 1.15 bWAR 2.3 fWAR 3.9
샌프란시스코는 지난해 12월 이정후에게 6년 1억1300만 달러 계약을 안긴 것을 시작으로 조던 힉스(4년 4400만 달러), 호르헤 솔레어(3년 4200만 달러) 등과 계약했다. 이후 잠잠하다가 시즌 개막을 앞두고 채프먼과 스넬, 보라스의 두 고객을 영입하며 알찬 보강에 성공했다. 특히 채프먼의 영입은 샌프란시스코의 내야 수비를 한층 더 강하게 해줄 것이 분명하며, 장타력을 갖춘 솔레어는 타선에 무게감을 실어줄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신인왕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이정후의 에너지는 샌프란시스코를 더욱 활발하게 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올해 목표는 명확하다. 107승을 거두고 라이벌 LA 다저스를 제친 2021년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다저스의 전력이 너무나도 강하다. 여기에 지난해 월드시리즈 준우승팀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여전히 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래도 포스트시즌에만 오를 수 있다면, 그 이후 승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특히 ‘바퀴벌레’라 불릴 정도로 포스트시즌에만 나가면 끈질긴 생존 본능을 발휘하는 샌프란시스코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스넬의 합류는 그 가능성을 더욱 키운다.
팬그래프닷컴의 2024년 지구별 포스트시즌 진출 예상에서, 샌프란시스코는 스넬 영입 전에는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이 34.0%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5개 팀 가운데 콜로라도 로키스 다음으로 낮았다. 하지만 스넬이 영입되고 나서는 44.4%로 수직 상승, 3위로 뛰어올랐을 뿐 아니라 2위 애리조나(46.8%)와의 격차도 크게 줄였다. 이 정도면 샌프란시스코 팬들도 충분히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
<스넬 영입 전 NL 서부지구 예상 성적 및 PS 진출&WS 우승 확률>
·스넬 영입 전
LA 다저스 : 94.0승 68.0패 0.580/PS 진출 94.0%/WS 우승 16.4%
애리조나 : 83.8승 78.2패 0.517/PS 진출 49.2%/WS 우승 2.5%
샌디에이고 : 82.7승 79.3패 0.511/PS 진출 41.9%/WS 우승 1.7%
샌프란시스코 : 81.5승 80.5패 0.503/PS 진출 34.4%/WS 우승 1.3%
콜로라도 : 62.8승 99.2패 0.388/PS 진출 0.1%/WS 우승 0%
·스넬 영입 후
LA 다저스 : 93.8승 68.2패 0.579/PS 진출 93.4%/WS 우승 15.6%
애리조나 : 83.6승 78.4패 0.516/PS 진출 46.8%/WS 우승 2.2%
샌프란시스코 : 83.2승 78.8패 0.514/PS 진출 44.4%/WS 우승 2.0%
샌디에이고 : 82.6승 79.4패 0.510/PS 진출 40.2%/WS 우승 1.7%
콜로라도 : 62.6승 99.4패 0.387/PS 진출 0.1%/WS 우승 0%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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