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들만 모른다, 총선 격전지 당락 뒤집는 기후유권자의 힘

박기용 기자 2024. 3. 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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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 겪은 동네, 빈그물 뱉는 바다…기후위기는 내 삶의 위기
서울 동작구 주민들이 지난 15일 오후 동작구 동작신용협동조합 성대시장점 회의실에서 열린 ‘2024 총선 예비후보 기후위기 간담회\'를 마친 뒤 건물 옥상에 설치한 태양광발전기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4·10 국회의원 총선거가 21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는 공천 갈등의 격랑 속에서 대진표를 마무리 짓고 대오 정비에 들어갔다. 한달도 채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한국 사회의 해묵은 난제를 풀 해법과 비전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외면할 순 없다. 한겨레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공동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위기로 △기후변화 △지역 불균형 발전 민생경제 △저출생 등 네가지를 설정하고, 각 정당들이 내세운 관련 공약을 살폈다. 현장을 찾아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미래지향성·구체적·통합성 세가지 평가 지표에 따른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공약 분석을 싣는다.

인천 옹진군 소이작도의 어부 심치만(58)씨는 지난 13일 바다의 조류가 느려지는 ‘조금’ 때인 오후 4시에야 배를 띄웠다. 물살이 빠르면 그물이 말린다. 5월 이후 본격적인 꽃게 철이라면 모를까, 요즘엔 가까운 바다에서 간자미(가오리) 같은 잡고기를 잡아 말려 판다. 시간이 갈수록 어업 소득이 줄어 낮엔 다른 일을 한다.

“어획량이 줄어 그렇죠. 꽃게가 산란을 제대로 못 하니…. 수온에 문제가 있어요.”

구명조끼를 입고 초록색 그물 사이사이 걸린 간자미를 걷어내며 심씨가 말했다. 심씨는 한 8년 전쯤부터 바다가 이상해진 걸 몸으로 느낀다. 대를 이어, 아주 어려서부터 어부 일을 해온 심씨의 어획량은 그즈음부터 해마다 줄었다. 이전에 두세번 그물질로 충분했을 양을, 이제 쉰번, 예순번 던져야 겨우 맞춘다. 꽃게 상태도 전 같지 않다. 들쭉날쭉한 수온 탓에 꽃게들이 아무 때나 산란하면서 껍질이 물렁해지기 일쑤다. 실제로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바다의 표층 수온은 오르지만, 꽃게가 사는 깊은 바다는 더욱 차가워진다는 연구가 있다. 수온이 변하면 꽃게가 성장하는 시기도 달라진다. 심씨는 “지난해엔 90%가 값어치 없는 물렁게였다”며 “십여년 뒤면 서해안에서 꽃게 보기 힘들지 모른다”고 했다.

심씨는 반갑지 않은 바다의 변화가 인근에 있는 ‘영흥화력발전소’(1~6호기) 탓이라고 여긴다.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이 발전소가 바다로 뜨거운 배출수까지 뿜어내 수온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마을 어촌계장인 심씨와 소이작도 어부들은 영흥화력발전소를 서둘러 폐쇄하길 바라고 있다. 심씨는 몇달 전 지역 환경운동단체에도 가입했다. 심씨는 이번 총선에서 “화력발전소 폐쇄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후보가 있으면 그를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천 옹진군 소이작도 어부 심치만씨가 지난 13일 출항한 배 위에서 초록색 그물 사이사이 걸린 간자미를 걷어내고 있다. 심씨는 수온 변화로 해마다 어획량이 줄어 몇 달 전 환경운동단체에도 가입했다. 심치만씨 제공

심씨는 ‘기후유권자’다. 기후의제를 잘 알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후의제를 중심으로 투표를 고려하는 사람이다. 로컬에너지랩과 더가능연구소, 녹색전환연구소 등이 참여한 ‘기후정치바람’이 지난해 12월 전국 17개 광역시·도 1만7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후위기 인식조사를 보면, 응답자 3명 중 1명(33.5%)은 심씨와 같은 기후유권자였다. 이 가운데 14.9%는 이번 총선 ‘1순위 관심 공약’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꼽는다.

지난 12일 서울 동작구 성대시장에서 만난 청과물 상인 윤혁(60)씨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엄마 따라 과일장사 시작한 큰아들 집’이란 가게 이름이 보여주듯, ‘과일’은 윤씨의 삶 그 자체다. 그는 “요즘 핫해진 ‘비싼 사과’도 기후위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지난해 요맘때 갑자기 추위가 오면서 꽃망울 폈던 게 다 얼어버렸거든요. 그래서 추운 지역 맛있는 사과 과수량이 확 줄었어요.”

날짜도 잊지 못하는 2022년 8월8일, 윤씨는 ‘기후 재난’을 처절히 경험했다. 서울의 하루 최대 강수량을 102년 만에 다시 쓴 그날, 동작구에선 성대시장과 남성시장 등 전통시장들이 삽시간에 물에 잠겼다. 새벽까지 물을 퍼냈지만, 물난리 통에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성대시장 상인회 쪽은 당시 물난리로 70억원가량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 12일 서울 동작구 성대전통시장 모습.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윤씨는 “점포 100여개가 다 물에 잠겼다. 배수구 제때 열고 필요한 조치를 다 했는데도 감당이 안 된 거다. ‘(기후위기가) 진짜 심각하구나’ 느꼈다”고 말했다. 이후 시청·구청이 차수막을 지원하고 안전 맨홀을 설치하고 배수관 용량을 늘리고 있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그날 이후 비어 있는 점포를 볼 때마다 윤씨는 찾아올 여름을 걱정한다.

윤씨가 기후위기와 시장 물난리의 인과관계를 이해하게 된 건, 성대시장이 자리한 성대골 마을 덕이기도 하다. 성대골은 ‘에너지 자립 마을’로 알려져 있다. 김소영 성대골사람들 대표가 2010년 어린이도서관을 만들며 시작한 마을공동체 운동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에너지 전환 운동으로 흘러가 지금처럼 자리잡았다. 마을엔 전봇대만큼이나 태양광 패널이 즐비하고, 주민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재생에너지 이익 공유 사업을 한다. 동네 아이들에게 기후 환경을 가르치고, 시장 상인들은 비닐봉지나 일회용기 사용을 자제한다. 성대시장 소불고기집 사장 백영자(67)씨는 “일회용기를 쓰지 않으려 코로나19 때도 배달을 하지 않았고 손님에게 남은 음식을 포장해줄 때도 그릇을 가져오면 더 많이 준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은 최근 성대시장을 아예 ‘차 없는 거리’로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성대골은 마을 전체가 기후유권자인 셈이다. 2016년 총선 때 이 지역 녹색당 후보(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의 득표율은 3.05%로, 녹색당의 전국 득표율(비례 0.76%)을 훨씬 웃돌았다. 동작구는 2020년 총선의 비례 투표에서 1·2위 정당의 표차가 1.73%포인트(갑·을 총합)에 그쳤는데, 이번 총선에서 기후유권자들이 맘만 먹는다면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다는 얘기다.

동네 주민들이 2020년 총선 이후 선거 때마다 개최하는 기후선거 간담회에 각 당 예비후보자들이 총출동하는 것도 이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성대골의 생태환경 책방 ‘대륙서점’에서 만난 김 대표는 “성대골은 2022년 수해가 있었고 반지하 문제나 주택 에너지 효율화 같은 게 급선무다. 주민들의 관심사인데 정작 그런 공약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동작구 예비후보들(왼쪽부터 류삼영, 나경원, 전병헌, 장진영)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동작구 동작신용협동조합 성대시장점 회의실에서 열린 ‘2024 총선 예비후보 기후위기 간담회’를 마친 뒤 지역 주민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기후유권자들은 기후변화를 위기만이 아닌, 기회로 보기도 한다. 전국에서 재생에너지 보급량이 가장 많은 전남 지역 유권자들도 그중 일부다. 기후정치바람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전남 강진·고흥·보성·장흥군에선 ‘탄소중립 정책이 지역산업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43.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평균(22.8%)의 2배에 가깝다. 일조량이 좋아 이 지역에서 일찌감치 태양광 발전 사업이 시작된 영향이다.

지난 12일 찾아간 전남 보성군 보성읍 봉산리 녹차밭에선 두가지 빛깔의 녹차나무를 볼 수 있었다. 20㎾ 규모 태양광 패널이 지붕처럼 덮여 있는 500㎡ 크기 밭에 있는 녹차나무 잎은 푸르렀지만, 지붕이 없는 곳에 있는 녹차나무 잎은 검붉은색이 강했다. 2020년부터 이곳에서 영농형 태양광 실증재배를 해온 안병태(64)씨는 “태양광 패널이 한겨울의 냉해를 막고, 3∼4월에는 서리 피해도 막아줘 잎 색깔이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벼나 오이 같은 작물은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하면 수확이 다소 준다고 하는데, 녹차는 오히려 상등품이 나와요. 그늘이 필요한 ‘말차’를 만들어주죠.” 안씨는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한 뒤 태양광 수익에 더해 녹차 소득이 2배로 늘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영농형 태양광에 적극적인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말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태양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에 관심이 많다. 김효승 순천환경운동연합 이사장은 “ 적정 수익을 내는 주변 상황을 오랜 기간 보고 들어온 터라 (재생에너지에 대한 주민) 인식이 증진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유권자들이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 공약에 관심이 크다 보니 정치인들도 민감하다. 현행 농지법상 농지를 다른 용도로 쓰는 ‘일시 사용허가’ 기간이 최장 8년인데, 이를 늘리는 법 개정안을 이곳 지역구 의원(더불어민주당 김승남)이 발의하기도 했다.

지난 12일 전남 보성군 보성읍 봉산리의 영농형 태양광 녹차밭 실증재배 모습. 안병태씨는 “영농형 태양광이 설치된 녹차밭 잎은 푸르색이 많지만, 설치되지 않은 곳의 찻잎은 냉해를 입어 검붉은색이 많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태양광의 계통 연결도 관심거리다. 한우 70마리를 키우는 축사에 태양광 설비를 신청해놓았다는 봉산리 주민 이상진(64)씨는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생산하는 (재생에너지) 전기가 너무 많아지면 전력이 남지 않겠느냐”며 “(이곳에서) 재생에너지를 쉽게 만들어내도 (계통 문제로) 팔 수 없게 된다. 출마하는 분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될 위기에 처한 이들도 기후유권자를 자처하고 있다. 김기수(45)씨는 소이작도 어부 심씨가 서둘러 폐지하길 바라는 영흥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이 발전소가 사라지면 김씨의 직장을 포함한 20여개 협력업체가 사라지고 1천명 이상이 생계를 잃게 된다. 영흥도 주민이기도 한 김씨는 지난 14일 “석탄화력발전소가 향후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는) 가스터빈으로 바뀌면 원청인 한국남동발전이 직접 운영하는 본설비만 남는다. 협력업체가 위탁받아 관리하는 외곽 설비나 부대설비는 없어지는데, 그럼 여기 직원들은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먼 훗날 얘기가 아니다. 충남 태안의 경우, 당장 내년부터 순차 폐쇄에 들어간다. 5만여명의 국내 화력발전 노동자들이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올해부터 시행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전환 ‘과정과 결과가 모두에게 정의로워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씨는 “(영흥화력 폐쇄는) 불과 7~8년 뒤의 이야기인데 인천시장이나 이 지역 국회의원이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 얘기하는 걸 제대로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정의로운 전환에 적극적인 후보가 있다면 평소 내 지지 정당과 달라도 투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부 심씨가 사는 소이작도와 화력발전 비정규직 김씨가 사는 영흥도를 포함한 인천의 중구·강화·옹진 지역은, 직전 총선에서 1·2위 후보 간 득표 차가 2.64%포인트인 ‘격전지’(이 지역 선거구 총합)였다. 기후위기 인식조사에서 ‘기후위기 대응 공약을 1순위로 보겠다’고 답한 이 지역 유권자는 무려 20.3%에 달했다. 인천 연수구(8.7%), 동구·미추홀구(9.7%)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기후유권자를 분석한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우리 사회는 아직 유럽 등에 비해 기후위기 대응 이슈의 정책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기후 이슈가 실질적 쟁점과 여론 형성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막상 조사를 해보니 득표 차 5%포인트 이내 격전지에선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유의미한 크기의 기후유권자가 있다는 게 확인됐다”며 “정치권에서 이 점을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보성/기민도 기자 key@hani.co.kr

기후유권자: 기후 관련 정보를 알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후의제를 중심으로 투표선택을 고려하는 유권자. 국내 유권자의 33.5%가 기후유권자로 조사됐다. 기후유권자는 (주관적 이념 성향 기준) 진보층에서 가장 많고(41.7%), 성별로는 남성, 연령별로는 60살 이상에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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