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원전 대 재생’, 민주 ‘기승전 RE100’…산업에 갇힌 기후공약

신소윤 기자 2024. 3. 2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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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기후위기 대응 공약 평가
2023년 9월 2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런던자연사박물관 기후변화체험전\\\'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4·10 국회의원 총선거가 21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는 공천 갈등의 격랑 속에서 대진표를 마무리 짓고 대오 정비에 들어갔다. 한달도 채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한국 사회의 해묵은 난제를 풀 해법과 비전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외면할 순 없다. 한겨레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공동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위기로 △기후변화 △지역 불균형 발전 △민생경제 △저출생 등 네가지를 설정하고, 각 정당들이 내세운 관련 공약을 살폈다. 현장을 찾아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미래지향성·구체적·통합성 세가지 평가 지표에 따른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공약 분석을 싣는다.

4·10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각 정당이 경쟁적으로 기후위기 대응 관련 공약을 내놓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이 진보정당의 어젠다로 여겨졌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 총선에선 보수정당까지 기후위기 대응 공약을 적극적으로 내고 유권자들에게 한표를 호소하고 있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기후위기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여야 주요 정당들이 내놓은 기후 공약들은 대체로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세계적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지만, 2022년 대선부터 시작된 ‘탈원전’ 대 ‘탈-탈원전’ 정책 대결 흐름을 타고 다소 결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힘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기후 미래 택배’ 공약은 ‘원전과 재생에너지 균형적 확충’ 기조 아래 ‘기후대응기금’ 규모를 2조4천억원에서 2027년까지 5조원으로 늘려,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을 비롯한 기후산업 육성에 중점적으로 투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시 “미래를 준비해야 하지만 그 미명하에 현재를 포기할 수도 없다”고 발언한 것에서도 드러나듯, 앞으로의 탄소중립 달성보다 현재의 산업 경쟁력 강화를 뒷받침하는 데 조금 더 초점이 맞춰진 모양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녹색정의당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치중하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제1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 수립 시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용량을 현재의 3배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 아래, 기업의 알이100(RE100) 이행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인 탄소중립산업법을 제정해 탄소중립형 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과 녹색당이 출범한 선거연합 정당인 녹색정의당은 ‘2050년 재생에너지 100%’를 목표로 “기후위기 대응을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이를 위해 탄소세와 기후배당을 도입하고 기후경제부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세 정당이 내놓은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대체로 ‘사회통합’을 지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불평등하게 더 많은 피해를 입게 될 이들을 보호하는가 여부 등을 담은 ‘정의로운 전환’ 관점에서 볼 때, 녹색정의당 공약이 가장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의로운 전환 실현을 명시적으로 내걸고 탈석탄지역지원 특별법과 농어업 재해보상법 등을 약속하고 있다는 점을 꼽은 것이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변호사)은 “국민의힘의 석탄화력발전 특별법 제정, 민주당의 농촌 재생에너지 산업 거점 육성 등에 (정의로운 전환 개념이) 일부 들어가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산업 부문 지원 외에 공공 인프라 마련 등이 부족해 균형점이 떨어져 아쉽다”고 밝혔다.

전문가 5명의 평가가 가장 극단적으로 엇갈린 부분은 국민의힘이 내놓은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균형적 확충’ 공약이었다. 지 부소장은 “미래에서 온 택배인 줄 알고 풀어봤더니 과거에서 온 택배, 녹색 성장 및 원전 프레임을 고집하고 있다”고 혹평했고, 장 위원도 “‘원전 대 재생’이라는 정쟁적 프레임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지 부소장은 그 이유로 “원자력 등 대규모 중앙집중형 발전에 최적화된 송배전 시스템은 소규모 분산형 전원인 재생에너지의 도입을 저해하고 시간과 비용을 증가시키는데, 균형적 확충을 한다면서 전력망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부재”해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고, 장 위원은 “전력 발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석연료를 무엇으로, 어떻게, 얼마나 빠르게 전환할 것인가가 핵심인데 이에 대한 답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에너지정책학과)는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기술 발전이 기대보다 더디고, (시설을 짓기 위한) 원자재 값도 올라, 온실가스 감축을 쉽게 할 수 있는 (원전 확대 등) 부분은 합리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기후 공약에 대해 장 위원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 주 에너지원이 될 수밖에 없는 재생에너지의 빠른 확대에 집중하는 것은 주요 선진 산업국과 글로벌 시장 흐름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다만 “재생에너지 (확대)보다 더 중요한 에너지 수요 관리와 효율 향상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기후 공약에 대해선 “기승전 알이100”(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 위원은 “민간 부분의 투자 확대 유도 방안 등의 구체적 계획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전반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산업전략으로 좁게 바라보고 있다”(지 부소장)는 평가가 나왔다. 지 부소장은 “(전반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산업전략으로 좁게 바라보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대전환은 기업의 전력 부문 전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기타 산업, 수송, 폐기물, 건축 등 모든 부문의 탈탄소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허창회 이화여대 교수(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는 이와 관련해 “단기적 관점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가 기술 개발 투자 비용을 상회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구체적 제도 지원과 경제적 보조 방안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탄소중립산업법’ 제정 및 신규 전력망 인프라 확충 공약과 관련해선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에 대한 규제와 정의로운 전환 정책이 없으면 탈탄소 사회경제체제로의 전환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평가(장 위원)도 있었다.

전문가 평가에서 비교적 ‘미래지향적’으로 평가받은 건 녹색정의당의 공약이다. 지 부소장은 “기후위기대응을 산업, 지역 활성화, 정의로운 전환, 기후 적응 등 폭넓게 포섭하려는 노력이 보인다”고 밝혔다. 장 위원은 “미래에 기후위기가 보건·식량·경제 위기 및 국가 실패, 무력 분쟁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기후위기 대응을 최우선 순위로 설정한 것은 적절한 접근”이라며 미래 지향성 면에서 비교적 앞서 있다고 평가를 했다. 그런 한편 “추진 방법, 이해관계자 설득 방안, 재원 확보 등에 대한 세부 전략 및 단계적 로드맵이 제시돼야 시민들에게 설득력을 갖게 될 것”(지 부소장)이라고 지적했다. 녹색정의당의 재생에너지 100% 추진 공약에 대해 “한국은 섬처럼 떨어져 있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부족할 때 급하게 전기를 받아올 수 없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정 교수)는 평가도 있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기후위기 대응 공약 평가해주신 분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
-정연제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지현영 변호사·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
-허창회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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