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대의 귀농직설] 은퇴 1년 만에 제주농부 되기

관리자 2024. 3. 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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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 주민 김현대입니다."

내가 사는 마을과 조금 떨어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서 감귤밭 3000평(9917㎡)을 빌렸다.

농부가 되겠다고 했지만 내가 정말 농사지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1년 만에 가시리 사람이 되고, 부지런히 농부의 길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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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대 내려놓는 날, 농부 되리라
퇴임 10년전부터 차곡차곡 준비
이름도 예쁜 가시리에 둥지 틀고
주변 농가 거들며 일꾼으로 성장
귀농 2년차 3000평 농사 도전
이웃사촌 생겨 신기하게 겁안나

“가시리 주민 김현대입니다.”

내가 사는 마을과 조금 떨어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서 감귤밭 3000평(9917㎡)을 빌렸다. 말이 3000평이지 2년차 초보 농부에겐 태평양처럼 넓어 보인다. 첫 농사로 무리하다고 다들 말린다. 평생 펜대만 굴리다가 지난 1년 남의 밭에서 일해본 게 농사 경험의 전부다. 버거운 줄 잘 알면서도 일을 저질렀다. 그런데 겁이 나지 않는다.

지난해 2월 이름도 예쁜 표선면 가시리 마을에 정착했다. 인구 1300명의 가시리는 무와 더덕, 감귤농사를 많이 짓는 한라산 중산간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3월말이면 230만평(760만3306㎡)의 공동목장으로 이어지는 10㎞ 도로가 노란 유채꽃과 하얀 벚꽃으로 뒤덮인다. 10년 전 가시리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은퇴한 뒤 같이 살자고 2014년 주택협동조합을 결성했다. 16가구 조합원을 모으는 데 1년, 마을 한가운데 무밭 자리에 공동주택단지를 짓는 데 또 1년이 걸렸다. 소박한 터전을 미리 마련해두었기에 1년 전 퇴임하던 바로 다음 날 고민 없이 귀농 보따리를 쌀 수 있었다. 농부가 되겠다고 했지만 내가 정말 농사지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농사짓겠다는 마음만 진심이었다. 아내는 ‘기껏해야 취미농이나 하겠지’ 생각했던 것 같다.

1년 만에 가시리 사람이 되고, 부지런히 농부의 길을 달렸다. 하루는 마을에서 처음 만난 토박이가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서울”이라고 했더니 “에이, 서울 사람 아니야” 하면서 되레 우기질 않는가. 천생 가시리 농부로 보인다는 거였다. 600평(1983㎡) 감귤 밭을 빌려 농사를 지어보라고 그 자리에서 밭주인과 연결해주기도 했다. 이제 어떤 자리에서도 “직업이 농부”라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아내는 3000평 농사짓는 남편을 내심 응원하는 눈치다.

“가시리에서 10년도 더 산 사람 같다”는 말을 예사로 듣는다. 내 입에서 말끝마다 “우리 가시리” “우리 마을”이 예사로 튀어나온다. 마을 동아리에 가입하고 마을 체육대회나 경조사에 함께 가서 어울린다. 농부가 되겠다니까 먼저 농업노동자로 일하면서 농사 물정을 배우라고들 했다. 마을에는 사시사철 일거리가 널려 있다. 몸만 건강하고 부질없는 체면만 내려놓으면 된다. 친한 이웃의 밭에서 농약 치는 일부터 시작했다. 거들면서 배우다가 일이 조금씩 익숙해지자 그 뒤로는 일하러 오라는 요청이 수시로 왔다. 수확철엔 20㎏ 감귤상자를 날랐다. 감귤을 따면 일당이 9만∼10만원이지만, 상자를 나르면 일당이 15만원으로 올라간다. 서울에서 사는 지인을 만날 때면 “내가 일당 15만원짜리”라고 큰소리를 친다. 이웃 인심을 얻으니 농부로 가는 길이 절로 열렸다.

이웃의 무농약 감귤밭을 제공받아 택배 판매 경험도 했다. 약간의 값을 치르고 필요한 만큼 감귤을 땄다. 처음 100여개를 선물로 보낸 것이 후속 주문으로 이어졌고, 나중에 계산해보니 택배 보낸 물량이 500개 가까이나 됐다. 3000평 농사에 달려들면서 겁이 나지 않는 자신이 지금도 신기하다. 솔직히 그 큰 농사를 혼자 감당할 자신은 없다. 힘들 때 언제라도 달려와줄 이웃이 있다는 믿음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유기농 감귤농사를 잘 짓는 선배 농부와도 인연을 맺었다. 걸음마 농부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한달 이상 징글징글하게 비가 내리더니 주초부터 하늘이 열렸다. 감귤농사에 가장 중요한 가지치기(전정) 작업을 시작한다.

김현대는

기자 시절 ‘한국농업기자포럼’을 이끄는 등 농업전문기자로 활약했으며, 2023년 한겨레신문사 사장 퇴직과 함께 제주로 귀농해 감귤농사를 짓고 있다.
김현대 농사저널리스트 전 한겨레신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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