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세계 유일 인공석굴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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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여러번 다녀왔지만 이상하게 석굴암에는 갈 일이 없다가 오랜만에 방문했다.
석굴암(1962년 12월20일 국보 지정)은 창건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했다.
창건 이후 여러번 중수된 석굴암은 일제강점기에도 3차에 걸쳐 보수됐다.
이뿐만 아니라 단위기준치를 설정해 1㎜의 오차도 없는 공간의 규모와 단면의 계획과 화강암으로 축조한 돔형의 건축구조 공법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과학과 공학, 지혜의 종합체로 축조된, 세계에서 유일한 인공 석굴이 석굴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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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여러번 다녀왔지만 이상하게 석굴암에는 갈 일이 없다가 오랜만에 방문했다. 석굴암(1962년 12월20일 국보 지정)은 창건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했다. ‘삼국유사’ 권5 대성효이세부모조(大城孝二世父母條)에는 이 땅에 두번 태어난 재상 김대성이 751년(경덕왕 10년)에 전세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짓기 시작했으나 774년 김대성이 죽자 신라 왕실에서 완성했다고 기록돼 있다. 공간은 본존불상이 있는 원형의 주실, 예배자가 예불을 드리는 전실, 주실과 전실을 연결하는 통로로 이뤄졌다.
창건 이후 여러번 중수된 석굴암은 일제강점기에도 3차에 걸쳐 보수됐다. 1913년 해체 복원 당시 가장 이해하지 못한 것이 바닥에 차가운 지하수가 흐르는 인공 수로였다. 이유를 알지 못한 일본인들이 물길을 밖으로 빼고 수로는 시멘트로 덮어 복원했다. 천년 동안 문제가 없던 석굴암 내부에 복원 후 이끼가 끼고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그래서 놀라 인공수로를 덮은 시멘트를 걷어내고 물길을 원래대로 내부 바닥으로 흐르게 했더니 이끼와 곰팡이가 사라졌다. 여기에는 신라인들의 놀라운 과학 원리가 담겨 있다. 차가운 지하수가 흐르는 바닥은 실내보다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아서 공기 중에 있는 수분이 바닥의 이슬로 떨어져 실내 습기를 제거해주는 자연 제습기인 것이다.
본존불상은 주실의 중앙보다 조금 뒤쪽에 놓여 있다. 어두운 석굴 안에 빛을 켜면 불상이 원래 위치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당시 성인 남자의 평균 신장(160㎝)을 기준 삼아 예배 공간인 전실에서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거리에 본존불상을 설치해 주실 안쪽에 위치한 본존불상이 시각적으로는 주실 중앙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광배는 좌우 224.2㎝, 상하 228.2㎝로 약간 타원형으로 제작됐고 광배의 연꽃잎 장식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올수록 작게 만들었다. 전실의 예배자가 보았을 때 생기는 시각적 왜곡을 해결해 완벽한 원형의 광배와 균일한 연꽃잎 장식을 연출하기 위함이다. 사람을 기준 삼아 사람 중심으로 설계되고 건축한 석굴암이다.
조형적으로 봐도 자연스럽다. 본존불상의 눈썹·이마·어깨·무릎은 좌우가 다르다. 자연에는 대칭이 없다는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면서 본연의 자연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단위기준치를 설정해 1㎜의 오차도 없는 공간의 규모와 단면의 계획과 화강암으로 축조한 돔형의 건축구조 공법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과학과 공학, 지혜의 종합체로 축조된, 세계에서 유일한 인공 석굴이 석굴암이다. 석굴을 갖고 싶었던 신라인의 염원과 열정이 시원한 바람에 실려 내 마음에 전해진다.
이규혁 건축가·한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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