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54] 겁 없이 비판할 자유
관리는 토마스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토마스는 거기에 적힌 글을 읽고 너무 놀란 나머지 꼼짝도 하지 못했다. 2년 전 외과 과장이 그에게 요구한 것보다 훨씬 더 심했다. 글 속엔 소련 연방에 대한 사랑, 공산당에 대한 충성 서약이 들어 있었다. 토마스는 절대로 무엇을 쓰거나 서명하지 않겠다고 강력히 말하려 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는 어조를 바꾸었다. “나는 문맹자가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쓰지도 않은 글에 서명해야 하나요?”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도태우 변호사의 공천이 취소됐다. 5·18에 대한 과거 언행이 도마에 오르자 후보는 두 번이나 사과했고 국민의힘은 진정성을 인정했으나 이틀 뒤 번복했다. 광주를 찾은 비대위원장은 ‘5·18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 결정이라고 말했다. 인천시의회 의장을 탈당하도록 만든 건 지난 1월, 5·18을 폄훼했다고 자기 사람을 내친 게 최근 들어 두 번째다.
당의 상징색인 붉은 바탕 위에 쓴 ‘함께 가면 길이 됩니다’라는 총선용 문구는 문재인 전 정권 수장이 존경한다던 신영복이 수없이 한 말이다. 지난해 평산책방은 ‘같이 가면 길이 된다’는 노동 관련 도서의 북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정당이란 사상과 이념을 같이하는 정치 단체다. 보수를 자처하는 여당이 좌파나 야당, 친북 인사의 언어를 차용하는 게 최선일까?
전도유망했던 외과 의사 토마스는 공산당을 비판한 칼럼을 잡지에 게재했다는 이유로 반성문을 쓰고 주장을 철회하라는 상부의 권유를 받는다. 자신에게 떳떳해지고 싶었던 그는 자아비판을 거부한다. 그 후 토마스는 지방의 작은 병원으로 좌천되지만 당의 억압이 계속되자 사표를 내고 청소부가 된다.
‘김일성 만세, 북한 전쟁관 수용, 박정희·이승만은 독재자’라고 외쳐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에서 ‘5·18은 이상해’라고 말하면 불이익을 받는다. 불온한 사상의 소유자로 몰려 색출되고 매도되고 퇴출된다.
많은 이가 5·18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성역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그런 것처럼, 멋대로 생각하고 마음껏 떠들고 겁 없이 비판할 자유는 없다. 비대위원장의 약속과 국민의힘 광주시당의 총선 공약대로 ‘오월 정신’이 헌법 전문에 오르면 얼마만큼 자유가 또 사라질까,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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