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콩물로 만드는 칵테일

정연주 푸드 에디터·요리책 전문 번역가 2024. 3. 2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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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환경 보호에 대한 책을 읽으면 쌀뜨물을 버리지 말고 찌개에 넣거나 화분에 물을 주는 용도로 쓸 수 있다는 말이 꼭 나왔다. 지금 보면 쌀밥을 주식으로 먹는 나라에서 유용한 팁이다. 파스타를 주식으로 먹는 나라에서는 당연히 파스타를 삶고 남은 물을 쓰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소스에 삶은 파스타를 넣고 버무릴 때는 전분이 함유된 파스타 삶은 물을 적당히 넣는 것이 좋다. 마요네즈를 만들 때 물과 기름을 유화시키는 것처럼 파스타와 소스가 하나가 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피자 반죽을 만들 때 그냥 물 대신 사용하면 크러스트가 훨씬 바삭하고 노릇해지기도 한다.

물론 쌀이 주식인 나라에서도 사용하는 쌀의 종류에 따라 재활용 가능한 물의 형태가 달라진다. 일정량의 물로 밥을 짓는 것이 아니라 바스마티 등 찰기가 적은 장립종 쌀을 대량의 물에 삶아서 건지는 식으로 조리하는 인도 등에서는 쌀뜨물이 아니라 파스타처럼 ‘쌀 삶은 물’을 활용하는 법을 논한다. 면수처럼 마시는 사람도 있고 이유식을 하는 아이에게 주면 변비 해결에 좋다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새롭게 그 쓰임새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2015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구스 올트는 병아리콩 통조림의 국물을 휘저으면 달걀흰자처럼 거품이 단단하게 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병아리콩 삶은 물’은 물과 콩이라는 라틴어를 조합하여 아쿠아파바(aquafaba)라고 부른다. 전분과 더불어 사포닌과 알부민 등이 함유되어 있어서 참을성 있게 휘저으면 비건 베이킹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게 거품이 난다. 고열을 버티는 능력이 부족해서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지만 충분히 식물성 재료로 기능한다. 직접 만들 수도 있고 심지어 다른 콩을 써도 좋지만 맛과 색, 전분 농도 면에서 병아리콩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 새로운 발견 이후 벌써 콩물 마요네즈 시판 출시를 비롯해 다양한 레스토랑과 베이커리에서 아쿠아파바를 활용하고 있다. 심지어 진 피즈나 피스코 사워 같은 달걀흰자가 들어가는 칵테일에 아쿠아파바를 사용해서 비건으로 만드는 바텐더도 등장했다. 낯설지 않은 재료의 낯선 쓰임새를 모두가 반기는 모양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정보의 교류와 재발견으로 알게 될 새로운 것은 아직 무한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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