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따로 노는 통신비 인하 정책

성유진 기자 2024. 3.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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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 시내 한 통신사 매장에 광고문이 붙어있다. /뉴시스

정부가 통신비 인하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 10년간 통신사 보조금 경쟁을 제한해온 ‘단말기 유통법(단통법)’ 폐지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최근엔 법 폐지 전이라도 지원금을 늘릴 수 있도록 시행령을 먼저 개정했다. 지난 2010년부터 추진했지만 실패를 거듭해온 제4이동통신사 선정도 지난 1월 마쳤다. 새 통신사인 스테이지엑스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 서비스를 시작한다.

언뜻 보면 규제 완화와 시장 경쟁 활성화를 통해 통신 요금 인하를 유도하는 정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통신 업계에선 “큰 목표만 같을 뿐 내놓는 내용마다 다른 정책들과 충돌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장 정부가 최근 단통법 시행령을 개정해 번호이동(기존 번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통신사만 변경) 가입자에게 휴대전화 구매 보조금을 더 줄 수 있도록 하자 알뜰폰 업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그동안 국민 통신비 부담을 줄여온 알뜰폰 사업이 고사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호소다.

이동통신 3사 망을 빌려 서비스를 하는 알뜰폰은 지난 2010년 통신 시장 경쟁을 촉진한다는 명목으로 도입됐다. 처음엔 가입자가 많지 않았다가 2014년 단통법 제정을 계기로 통신사 보조금 경쟁이 멈추자 이용자가 크게 늘었다. 요즘엔 쿠팡 같은 온라인몰에서 직접 스마트폰을 산 후 1만~2만원대의 저렴한 알뜰폰 요금제를 쓰는 게 통신비를 아끼는 최선책으로 통한다.

하지만 정부 바람처럼 통신 3사 간 보조금 경쟁이 불붙으면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알뜰폰 업체들은 “가격에 민감한 알뜰폰 소비자 특성상 이탈할 확률이 높고, 번호이동 보조금을 받기 위해 알뜰폰에 잠깐 가입했다가 바로 떠나는 일도 빈번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알뜰폰이 경쟁력을 잃고 시장 크기도 그만큼 줄어들면 결국 요금제 경쟁도 줄어 최종 피해는 소비자가 볼 확률이 높다. 단말기 보조금 대부분이 고가 요금제를 쓸수록 많이 받는 구조라 실질적인 요금 부담도 올라갈 수 있다.

정부가 통신 시장 경쟁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제4이동통신사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제4이통사를 통해 기존 통신 3사 과점 구조를 해소하겠다고 했다. 제4이통사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도 약속했다. 하지만 통신사 간 보조금 경쟁으로 시장 흐름이 바뀌면 자금력이 부족한 신생 통신사가 기존 통신 3사 사이에서 살아남긴 어렵다.

정부가 가계 통신비 부담을 줄이겠다며 내놓은 정책의 취지 자체는 문제가 없다. 우리나라 월평균 가계 통신비는 2020년 12만원에서 작년 12만8000원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통신 3사가 정부 압박이 없으면 새로운 요금제를 내놓지 않고, 어떤 통신사를 선택해도 금액이 다르지 않다는 소비자 불만도 크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 정말 실효성이 있는지, 정책 간 상충하는 지점은 없는지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면 ‘보여주기식 대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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