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12]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백 년의 고독’을 읽은 건 군대 시절이다. 군대만큼 책 읽기 좋은 곳은 없다. 방해 요소가 없어 독서에 집중할 수 있다.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책 읽을 때마다 등을 후려치며 축구를 하자던 주 병장이 방해 요소였다. 그놈은 책이란 걸 읽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군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인간을 탐구하기에도 좋은 장소다.
‘백 년의 고독’은 굉장했다. 캐릭터 이름이 굉장했다. 몇 세대로 이어지는 비슷한 이름들은 내 대뇌피질을 어지럽혔다. 나는 국방 수첩에 가계도를 그렸다. 훨씬 쉽게 읽혔다. 요즘 번역본은 가계도가 첨부돼 있다고 한다. 문명은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진화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다작을 하지 않았다. 그의 장편은 현실과 비현실이 마구 섞인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서사다. 그런 걸 자주 쓰는 건 “크리스마스와 생일만 빼고 글을 쓴다”던 스티븐 킹도 불가능했을 일이다. 마르케스는 림프암으로 2014년 작고했다. 암을 정복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위대한 문학가들이 더 오래 살아 더 많은 책을 쓰게 만들기 위함이다.
신간이 출간됐다. 유작인 ‘8월에 만나요’다. 마르케스가 죽기 전 “찢어버리라” 당부한 소설이다. 저작권을 가진 아들들은 아버지를 배신했다. 산 아비 말 안 듣는 자식이 죽은 아비 말 들을 리 없다. 평가는 나쁘다. ‘뉴욕타임스’에는 “마르케스 팬들에게 건강에 해로울 정도의 좌절을 준다”는 리뷰가 실렸다. 팬들 사이에서는 읽지 않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인생 최대의 기로에 놓였다.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대작가의 유언을 존중할 것인가. 아니면 궁금한 연예인 스캔들은 세밀한 환승이별 타임라인까지 작성하며 캐내고야 마는 인간의 오랜 지적 본능에 충실할 것인가. 나는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구매하지 않았지만 구매의 영역에 존재하는, 마술적 리얼리즘같은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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