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뽑아쓸 인재가 없다”… 절박한 LG, 최초로 ‘기업 대학원’ 만들어 석·박사 준다
절박한 기업이 대안 마련
LG가 국내 1호 대기업 대학원을 만든다. LG가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같은 일반 대학과 동일하게 정식 석·박사 학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LG AI(인공지능) 대학원’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작년 12월 국회에서 대기업이 사내에 정식 대학원을 설립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LG는 법이 시행되는 내년 1월 대학원 설립 신청을 한다는 방침이다.
세계 10대 AI 석학으로 꼽히는 이홍락 부사장(미시간대 교수 겸임)을 비롯해 20명의 AI 전문 교수진을 확보한 LG는 직원 가운데 매년 30명을 선발해 AI 석·박사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정식 대학원 설립에 맞춰 외부 교수 채용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2026년부터 정식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석·박사 과정생을 뽑아 교육할 수 있다.
이미 국내 대기업은 사내대학을 만들거나 대학 계약학과를 통해 기업 맞춤형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LG는 글로벌 기술 전쟁이 급박하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석·박사급의 전문 인력을 직접 키워 대응한다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LG의 대학원 설립을 두고 학교와 기업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첨단산업의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절박한 기업, 법안 마련 위해 뛰다
AI 혁명이 화두가 되면서 국내 대학에선 AI 전공학과 개설 붐이 일었다. 하지만 재계에선 국내 대학의 AI 교육에만 기댈 수 없다는 반응이다. AI를 비롯한 첨단 기술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 기업이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을 채용하면 이미 ‘옛날이야기’를 배운 게 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AI 석·박사 학위자라고 뽑아 보면 도대체 대학원에서 뭘 배웠는지 알 수 없는 수준인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첨단기술 분야에서 대학 교육이 기업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반응이 많다. 대학 졸업자를 뽑으면 사실상 대학에서 보낸 시간만큼 재교육을 해야 하는 등 기업 입장에서 시간과 비용 낭비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LG AI연구원 관계자는 “AI를 전공한 석·박사 학위자를 뽑기도 어렵지만, 막상 뽑아도 현업을 이해하는 데 3~4년은 족히 걸린다”고 말했다.
AI 인재를 직접 키우겠다는 목적으로 LG는 지난 2022년 사내에 ‘AI대학원’을 만들었다. 하지만 사내 대학원은 현행법상 정식 대학원이 아니어서 졸업해도 학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회사 내에서만 알아줬다. 일부 기업은 대학과 산학협력을 맺고 공동 교육을 통해 학위를 주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는데, LG는 정식 대학원 설립이라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직원을 대상으로 현장에 맞는 커리큘럼을 운영하면서 일반 대학과 동일하게 학위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 제정을 위해 뛰었다. LG AI연구원의 직원이 교육부 홈페이지에 ‘정책 제안’을 올린 게 시작이었다. 이후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 담당 공무원과 국회의원실을 접촉했다. 결국 작년 12월 국회에서 기업 내부에 정식 대학원을 만들 수 있는 첨단산업인재혁신특별법이 통과됐다.
◇뽑아서 쓸 AI 인재가 없다
LG가 대학원을 만들기로 한 AI 분야는 글로벌 기업이 인재 유치를 놓고 열띤 경쟁을 펼치고 있다. 제도권 대학원 석·박사 학위자들의 실력이 기업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측면도 있지만, 정작 뽑을 사람도 없다는 게 재계의 목소리다. 질적·양적으로 AI 인재 미스매치가 심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AI 인재 불모지’로 평가받고 있다. 작년 11월 한국경제인협회 의뢰로 박동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연구한 내용을 보면 2020년 주요 30국의 AI 분야 전문 인재는 47만7956명인데, 이 중 한국에 있는 인재는 2551명에 불과했다. 전 세계 AI 인재의 0.5%로, 국가별로 순위를 매기면 한국은 22위에 불과했다. 한국의 AI 분야 전문 인재는 미국(39.4%), 인도(15.9%), 영국(7.4%)은 물론 중국(4.6%·2만2191명)에도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LG는 지난 2022년 AI 분야 연구개발(R&D)에 5년 동안 총 3조60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은 규모일 수 있다. 하지만 LG는 AI를 ‘게임체인저’로 지목하고 우수 인재를 통해 최고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LG 안팎에선 LG가 선도적으로 AI 대학원 설립에 나서는 것도 결국 발 빠르게 우수 인재를 양성해 현장에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원자료 활용해 현업 바로 적용하는 연구한다”
LG는 AI대학원 설립을 통해 이른바 ‘21세기판 주경야독’으로 AI 전사를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석사 과정의 경우 1년 동안 업무에서 빠진 채 월급을 받으며 풀타임으로 연구를 하게 된다. 박사 과정은 18개월 이상 현업과 병행하며 SCI급 논문 발표 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재 LG 사내 AI대학원에는 신입생 3명을 포함해 11명이 연구하고 있다. LG는 정식 대학원이 설립되면 매년 직원 가운데 30명의 석·박사 과정생을 뽑아서 양성한다는 방침이다. 계열사뿐 아니라 협력사 직원들에게도 문을 열겠다는 계획이다. LG 관계자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기업 내부의 로데이터(raw data·원자료)를 활용하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일반 대학원과 다르게 현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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