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나선정벌의 교훈
멱살을 잡혀 볼모로 갇혀 지냈다. 그것도 오랑캐의 나라에서 형과 함께 눈칫밥을 먹으면서 말이다. 귀국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은 세상을 떴다. 그리고 형 대신 왕위에 올랐다.
즉위한 뒤 두 소매를 걷어붙이고 착수한 정책은 북벌이었다. 명나라의 원수를 갚는다는 게 겉으로 내세웠던 대외적인 대의명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부왕(父王)의 삼전도 굴욕에 대한 앙갚음이었다. 봉림대군인 조선 제17대 임금 효종과 그의 형 소현세자의 서사다.
효종이 즉위한 후 북벌을 위해 제일 먼저 착수한 건 국방력 강화였다. 오늘날 개인화기인 소총에 해당하는 조총으로 무장한 군대를 육성했다. 당시 이 군사조직은 동북아 최정예였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청나라의 통치자 강희제가 병력 지원을 요청해 왔다. 러시아의 남하정책으로 전쟁을 벌여서다. 당시 러시아는 알렉세이 미하일 보비치가 차르였다.
조선은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조총군 100여명을 파병했다. 소수의 군사였지만 큰 성과를 거뒀다. 청나라를 치기 위해 육성한 군대가 러시아를 격퇴한 셈이었다. 아이러니하다. 1654년 오늘의 일이다.
교과서에선 이 사건을 ‘나선정벌(羅禪征伐)’로 기록하고 있다. 나선은 러시아 사람들, 즉 러시안(Russian)을 한자음으로 옮긴 표현이다. 그렇게 출발한 조선 군대는 2개월여 만에 연해주에 도착했고 청나라 군사와 합류해 흑룡강에서 러시아군을 무찔렀다.
공교롭게도 370년 전 조선 군대가 상대했던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장기 집권에 성공했다. 중국도 시진핑 주석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다. 또 다시 우연의 일치일까. 역사에도 근육이 있다면 꼭 기억해야 할 교훈이다.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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