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전환·다중위기 시대의 리더십 [한국의 창(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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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최근 연달아 불거지고 있는 첨예한 갈등 양상을 관통하는 것은 전환과 복합위기다.
입법 기간 마감에 임박해서 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벨기에였다.
또한 이에 맞게 제도가 운영되는 것이 더 중요한 만큼 사회적 파트너들과 관할 노동당국에 지침을 숙지시키고 관련 교육을 의무화한다는 실질적 내용도 포함됐다.
노동 연구자로서 이번 결과물의 내용 자체에도 관심이 크지만 사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합의가 이뤄진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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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인 것 같아도 연결된 개혁 이슈들
플랫폼 노동 입법 성공한 EU 리더십
개별이해 집단, 책임 있는 리더십 절실
한국 사회에서 최근 연달아 불거지고 있는 첨예한 갈등 양상을 관통하는 것은 전환과 복합위기다. 간호사법 개정, 이공계 연구 예산삭감, 의사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 등은 따로 떨어진 듯 보이는 문제들이지만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가보지 않은 항로에서 익숙지 않은 배를 몬다면 누구에게나 좌초 위험은 커진다. 안전한 곳에 배를 도착시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전환의 맥락에서 문제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단계적 해법을 모색하며 미래상을 토론하는 책임 있는 리더십이 아쉽다.
지난 3월 11일 유럽연합에서는 플랫폼 노동 입법 지침(EU Directive)에 대한 극적 합의가 있었다. 2년여 전 초안이 제출될 즈음 낙관적이었던 분위기와 달리 프랑스의 반대와 독일의 기권으로 거의 무산될 위기까지 갔다. 입법 기간 마감에 임박해서 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벨기에였다. 브뤼셀에서 열린 이 회의의 의장국이기도 한 벨기에가 적극적으로 타협안을 만들고 막후 타협을 주도해 합의를 이뤄내자, 현지에서도 놀라는 분위기다.
플랫폼 노동자는 2025년 유럽연합 내에서만 4,3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도를 기존의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 탓에 이 범주의 노동자들을 어떻게 제도 안으로 품어야 할지 모든 나라들이 고민 중이다. 이번 EU 지침은 이 난제에 하나의 접근법을 제공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 핵심 내용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 플랫폼 노동자를 어떤 고용 상태로 간주할 것인지에 대해 각 회원국 정부가 EU 법리, 국내법, 단체협약에 따라 채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플랫폼의 '통제와 지시로 판단되는 사실'이 있을 때 고용 상태로 추정한다는 원칙을 적용한다. 이번 막판 타협의 접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런 유연성은 역설적으로 급변하는 기술 및 비즈니스 환경을 감안할 때 경직적 법적 기준을 두면 실효성이 떨어지고 사문화되는 경향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이에 맞게 제도가 운영되는 것이 더 중요한 만큼 사회적 파트너들과 관할 노동당국에 지침을 숙지시키고 관련 교육을 의무화한다는 실질적 내용도 포함됐다.
두 번째 핵심 내용은 알고리즘 관리에 대한 것이다. EU 지침은 플랫폼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이 플랫폼 기업에서 자신들을 고용, 모니터링, 징계하는 데 사용되는 알고리즘에 대해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담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에는 자동화된 모니터링 및 의사결정 방법의 사용 여부, 모니터링 유형과 목적, 정보 수신자 등을 공개할 의무가 부여된다. 기존 EU의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이나 최근 확정된 인공지능법에 비해 투명성이 한층 높아지고 구체화되었다는 평가다.
노동 연구자로서 이번 결과물의 내용 자체에도 관심이 크지만 사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합의가 이뤄진 과정이었다. 산업 경쟁력 확보, 사회적 불안정성과 양극화에 대한 우려, 유럽연합 회원국들 간의 상황과 입장 차이 등 하나하나가 다 무시할 수 없는 쟁점이었다. 그래서 합의가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기술혁신에서 한발 처진 유럽이 제도 혁신에 주력해 지속 성장의 모멘텀을 확보하자는 대전제에 합의한 것이 아닐까. 이들이 합의에 이를 수 있었던 구체적 힘과 방법론은 어디에 있었는지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빠른 환경 변화와 복잡한 이해관계의 얽힘 속에 여러 이해 관계자들은 각자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자신이 가진 기억과 노하우를 솔직하게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도착지의 미래상을 공유하며 양보와 타협의 여지를 이끌어내는 각 리더의 역량과 역할도 필수다. 물론 이런 일이 갑자기 되지는 않는다. 작은 일에서부터 연습이 되어야 큰 위기 때 역량이 발휘될 것인데,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 경험을 쌓고 있는 것일까?
권현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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