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백낙청과 이재명의 위험한 결합
이재명 만나 때가 무르익었다고 본 듯
이재명 唯一체제 위한 非明 배제 찬양하며
윤석열 탄핵이 촛불혁명 정신이라 공언
백 씨는 분단모순론을 주장했었다. 분단이 한국 사회의 제반 문제를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계급모순과는 달리 분단모순은 족보도 없는 개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체제 대결을 벌일 때만 해도 양 체제를 넘어서려는 지향으로서의 호소력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체제 경쟁에 져 붕괴하면서 분단모순론은 길을 잃었다.
그러자 그는 냉전 후 유행하던 탈(脫)근대론을 끌여들여 근대 적응과 근대 극복의 ‘이중과제론’을 들고나왔다. 한반도의 남북 사회는 근대화를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하지만 그 최종 목적지는 근대가 아니라 근대를 극복한 체제라는 것이다. 근대 체제에서는 분단을 극복할 수 없고 근대를 넘어선 체제에서만 분단을 극복할 수 있다는 함의는 있지만 근대를 넘어선 체제가 어떤 모습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한반도 남쪽이 근대화를 위해 여전히 실천할 과제가 많은 사회라고 하더라도 한반도 북쪽의 3대 독재 세습체제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그는 이 차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남한이 근대 적응과 근대 극복의 이중 과제를 실천할 때 북한은 어떻게 조응할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틀은 웅장하지만 절반이 비어 있는 기만적인 이론이다.
과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 대결은 오늘날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 북한의 김정은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보면 ‘자유롭고 민주적인 체제’와 독재 체제의 대결이었을 뿐이다. 냉전 종식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었다. 단지 독재를 감싸고 있던 공산주의라는 포장지가 찢어져 실체가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백 씨의 이중과제론은 지금도 계속되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체제’와 독재 체제의 대립을 흐리는, 김지하의 표현을 빌리면 ‘쑥부쟁이(훼방꾼)’의 논리다.
백 씨는 이재명 민주당의 공천을 대거 민주당원이 된 촛불시민(개딸)들이 민주당 내의 반(反)촛불 세력을 걷어낸 혁신적 공천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어떤 정치인을 이재명에게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하위권으로 분류해 감점을 준 뒤 경선을 붙여 친이재명 정치인을 공천한 결과를 혁신이라고 하는 것은 공평무사함 따위는 필요 없고 오로지 촛불혁명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유일지도 체제만이 중요하다는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는 보수 언론만이 아니라 진보 언론조차도 ‘친명(親明) 횡재, 비명(非明) 횡사’라고 비판하자 자유 언론를 통째로 반동으로 매도했다. 그가 추구하는 체제의 일부 모습을 의도치 않게 내비친 것인지 모른다.
백 씨는 근대를 극복한 체제가 어떤 모습인지 말하지 않는 것처럼 촛불혁명이 박근혜 탄핵 후에도 왜 계속돼야 하며 무엇이 달성됐을 때 끝나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가 궁극적으로 목표로 하는 체제가 남로당의 계보에서 혁신계가 추구해온 체제인지, 아니면 베네수엘라 차베스-마두로 체제의 한반도판인지, 또 다른 체제인지 알 수 없다. 근래에 올수록 개벽사상이니 뭐니 하며 거대한 종교적 담론까지 펼치는 것을 보면 그 자신도 모르는 어떤 체제를 상정하고 한반도를 태울 불장난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백 씨가 민주당 후견 원로그룹인 원탁회의에서 활동한 지는 오래됐지만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에서처럼 전면에 나선 적은 없다. 이재명을 만나 때가 무르익었다고 본 듯하다.
그는 윤석열의 집권을 변칙적 사건이라고 보고 그것이 변칙이니만큼 임기가 끝나기 전에라도 쫓아낼 수 있다는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그가 2016년 박근혜 탄핵이라는 변칙적 사건을 몰고 온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으로 받든다면 변칙으로 집권한 문재인의 퇴진을 외친 2020년 개천절 집회도 잊어선 안 된다. 변변한 시위 경험도, 조직도 없는 사람들이 입만 열면 촛불을 외치는 문재인이 헌법과 상식을 유린하는 사태를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어 역대 최대 규모로 모였다. 근대 사회에서 시민들의 저항은 한 방향으로만 분출하지 않는다. 그 다양함을 제도한 것이 근대 정치라는 기초부터 백 씨는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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