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자학 개그’ [횡설수설/신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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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10시 미국 워싱턴 그랜드하이엇호텔에서 열린 만찬 무대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올라섰다.
바이든은 시계를 힐끔 보며 말문을 열었다.
82세인 그의 재선 도전에 고령 논란이 커지자 '자학 개그'로 받아친 것이었다.
바이든은 이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78)을 겨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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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는 미국 중견 언론인들이 대통령 등 권력자들을 초청해 격의 없이 소통하는 ‘그리드아이언(Gridiron)’ 만찬이다. 1885년 시작된 이후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초청됐다. 세계 초강대국 지도자인 미국 대통령도 이때만큼은 ‘최고 폭소 책임자(CFO·Chief Fun Officer)’로서 면모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잘만 하면 야당과 국민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전세를 반전시킬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오늘밤, 사상 최초로 저의 출생 비디오를 공개합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1년 이 만찬에서 중대 발표를 했다. 당시 트럼프 등 보수 인사들이 오바마 출생지 의혹을 제기하며 오바마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나 선거법상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던 때였다. 오바마의 엄중한 표정에 만찬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곧 대형 화면에 영상이 재생됐다. 아프리카 평원에서 새끼 사자가 태어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한 장면이었다. 배꼽을 잡는 참석자들 사이에서 트럼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후 7년 뒤인 2018년 트럼프 역시 같은 무대에 섰다. 행사 며칠 전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당시 백악관 선임고문이 족벌정치 논란 끝에 기밀 접근권을 박탈당했는데 트럼프는 이를 빗대 인사말을 했다.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사위가 보안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오래 걸렸네요.” 트럼프는 당시 참모들의 연이은 사퇴에 대해 “요즘 백악관을 떠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다음은 누굴까. 멜라니아(영부인)일까”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마이크만 들고 서서 말로 관객을 웃기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미국에서 웬만한 가수 콘서트 못지않은 인기 공연이다. 이런 문화가 정치에도 투영돼 유머감각은 정치인의 자질 중 하나로 평가된다. 미 대선에서도 “내가 낙선하면 피바다가 될 것(트럼프)” “트럼프는 히틀러 앵무새(바이든)” 같은 험한 말들이 오가지만 가끔 등장하는 자학 개그는 격해진 긴장을 풀어주는 순기능이 있다. 상대의 정곡을 찌르고 유권자의 공감을 얻는 데도 촌철살인이 담긴 유머는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 정치에도 다 같이 빵 터지는 순간들이 많아지면 막말과 혐오의 언어가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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