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겹치기, 포토샵, AI 보정까지… 진화하는 사진 조작 [사진기자의 사談진談/최혁중]
164년 전인 1860년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유명한 ‘전신 초상 사진’이 대표적이다. 나비넥타이에 긴 트렌치코트 차림의 당당한 정치가 풍모를 보이는 이 사진은 사실 머리는 링컨, 몸은 미국의 7번째 부통령 존 캘훈의 몸을 빌린 ‘합성 사진’이었다.
과거에는 사진을 어떻게 조작했을까? 현재 ‘포토샵 기술자’처럼 예전에는 ‘다크맨’이 있었다.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하고 사진 인화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이렇게 불렀는데 이들이 가장 많이 쓴 방법은 ‘필름 겹치기’였다. 각각의 필름 중 나와야 할 것과 없앨 것을 선별하고 한 장의 필름을 만든 후 이를 암실에서 확대기에 넣어 빛을 투영시켜 인화하는 방식이었다. 필름에 투영되는 빛을 손으로 가리거나 더 노출시키는 ‘닷징’과 ‘버닝’으로 암부와 하이라이트 부분을 수정했다. 확대기 빛의 노광시간을 조절해 콘트라스트 조정도 가능했다. 지금의 포토샵에서 행해지는 후보정 작업이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암실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런 암실의 ‘사진 조작 프로세스’는 ‘응용 사진’이라는 사진학의 한 분야로 발전했다.
사진 조작은 정치가와 독재자들의 정치 활동에서 특히 많이 행해졌다. 자신은 드러나고 주위의 ‘불필요한’ 인물들은 사라졌다. 입맛에 맞게 조작된 사진으로 그들의 ‘역사 속 비중’을 더욱 키웠다.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이 독일의 유일한 권력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1937년 공표한 사진에 나치의 선전장관인 파울 괴벨스의 모습을 삭제시켰다.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는 말을 타고 검을 치켜든 사진에서 조련사가 말의 고삐를 잡고 있는 모습을 없앴다. 1917년 레닌은 노선 갈등을 빚고 스탈린에 숙청된 레온 트로츠키를 뺐다. 스탈린은 레닌의 죽음 직전 마치 그의 마지막을 함께한 것처럼 의자에 앉은 레닌 곁에 자신의 사진을 넣었다. 2009년 북한의 김정일은 당시의 건강 이상설을 잠재우기 위해 같은 해 6월 방문한 7보병사단의 시찰 사진을 4월 851부대 방문 사진과 합성시키기도 했다. 조작된 사진은 이렇게 선전·선동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예전 사람들은 사진의 ‘기계적인 자동성’이 곧 사진의 사실성을 담보한다고 믿었다. 사진은 카메라의 ‘광학’과 필름의 ‘화학’이라는 과학이 만든 결과물이기에 그림보다 사실적일 수밖에 없다는 신뢰였다. 하지만 생성형 AI 보정 기술까지 등장하면서 누구든 너무나도 쉽게 사진을 조작할 수 있다. ‘사진이 진실을 기록한다’는 전통적인 믿음도 점차 옅어지고 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20일 남았다. 후보자들은 27일까지 자신의 선거 벽보(포스터)에 사용할 사진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고 선관위는 이를 확인한 후 29일 각 지역에서 붙인다. 항상 그렇듯 선거 벽보에는 ‘뽀샵’으로 피부톤을 하얗게 하고 턱을 깎고 볼살을 없애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이는 인상 좋고 편안해 보이는 사진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인, 공인의 얼굴은 그 자체가 정보다. 과도한 보정은 사진 조작이고 정보의 왜곡일 수 있다. 좋은 사진은 보는 순간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어색함이 느껴지는 순간 그건 가짜로 해석될 확률이 더욱 커진다. 모든 국민이 사진 전문가인 세상이다.
최혁중 사진부 차장 saji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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