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별 최저임금 달리하는 차등제, 한은 보고서로 논쟁 재점화 [인사이드&인사이트]
이달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앞.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등 양대 노총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한은에서 5일 발간한 보고서에 두고 “근로기준법, 국제노동기구(ILO) 차별 금지 협약을 위반하는 반인권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연구”라며 폐기를 촉구했다.
노동계가 지목한 보고서에는 돌봄서비스 부문의 인력난을 완화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고 그 비용을 낮추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참석자들은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최저임금보다 값싸게 부리려는 발상”이자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리는 돌봄 노동자의 가치를 폄훼했다”고 비판했다.》
●한은 보고서가 불붙인 최저임금 차등화
두 방안은 모두 현행법으로 가능하다. 최저임금법에는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일하는 사람의 국적이나 지역에 따라 다른 최저임금을 주는 건 불법이지만 업종별로는 다르게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저임금 제도가 처음 시행된 1988년에는 두 그룹으로 나눠 다른 최저임금을 적용했다. 경공업 중심의 1그룹은 시간당 462.5원, 중공업 중심의 2그룹은 시간당 487.5원이었다. 하지만 첫해를 제외하면 매년 단일 최저임금으로 정하며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됐다.
최저임금 차등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른 2018년부터다.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에서 그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전년 대비 16.4% 오른 7530원으로 책정됐다. 이듬해인 2019년에도 10.9% 올라 8350원이 됐다. 이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기 둔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경영자 반발 등의 영향으로 연 인상률이 1∼5%대였지만 영세 사업주들은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최저임금 때문에 부담이 크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경영계는 수년째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차등 적용을 요구하는 중이다. 하지만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 9명씩 참여하는 표결에 부치면 반대표가 더 많아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해 6월에도 업종별 구분 적용에 대한 찬반 투표 결과 반대 15표, 찬성 11표로 부결됐다. 당시 근로자위원 1명이 빠져 26명이 투표했다.
●노조 “최소한의 기준” vs 경영계 “지불 능력 한계”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게 저임금 노동자의 최소 생계를 보장하자는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반대한다. 지난해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최저임금 취지와 목적을 훼손하고 사회 분열과 갈등을 조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희은 민노총 부위원장도 “임금의 최저기준이 최저임금인데 더 낮게 정하자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낮은 최저임금을 주는 업종은 구인난이 더 심해지고, 현재 임금 수준이 낮은 업종의 저임금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번에 논란이 된 돌봄업종의 경우 열악한 근로 환경 때문에 노동자가 부족한 것인데 더 낮은 최저임금까지 적용하는 건 거꾸로 된 처방이란 주장이다.
반면 경영계는 현재의 최저임금이 소상공인의 지불 능력을 넘어섰기 때문에 차등 적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해 심의 때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영세 중소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최저임금은 오히려 제도의 실효성이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사용자위원들은 편의점, 택시 운송업, 숙박·음식점업 등 3개 업종에 대해 최저임금을 낮게 설정하자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는 것에 현실적 어려움도 있다. 어느 업종에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할지 판단하기 위한 통계 등 기초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업종별 매출, 영업이익, 인건비, 경기 상황 등 고려할 변수는 많은데 어떤 기준을 선택할지도 고민이다. 같은 업종 내 다양한 규모의 사업장이 혼재돼 있다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한국표준산업분류상 슈퍼마켓에는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동네 슈퍼가 모두 포함돼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난해 심의 참고자료로 제출한 ‘업종별 구분 적용’ 연구 보고서에서도 특정 업종에 더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할 필요성에 대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전문가들 “문제는 인상 속도와 결정 구조”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할 경우 부작용도 크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017년 전문가로 구성된 ‘최저임금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는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당시 TF는 권고문에서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상 업종별 차등 적용의 타당성을 찾기 어렵고 ‘저임금 업종’이란 낙인효과가 우려된다고 했다.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는 방안도 국토 면적이 작은 일일생활권인 한국에선 지역 간 노동력 이동으로 수급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처럼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나라도 공통의 최소 금액을 정하고 업종 등에 따라 더 높은 임금을 정하는 ‘상향식’ 차등”이라며 “경영계의 주장처럼 기준보다 덜 주자는 ‘하향식’ 차등을 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는 지나치게 빨랐던 최저임금 인상 속도”라며 “현재의 저성장과 낮은 생산성 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휴수당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방식으로 경영계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기선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9860원이 아니라 주휴수당까지 포함한 실질 최저임금 1만1832원이 부담”이라며 “주휴수당을 수년에 걸쳐 서서히 최저임금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최저임금 계산 때 매달 받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전액 반영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김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에도 최저임금을 덜 주는 대신 숙소·식사비 등 제반 비용을 포함하는 식으로 영세 사업주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르면 다음 달 중하순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심의가 시작된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에 대해선 그동안 공익위원 다수가 반대표를 던져 현실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캐스팅 보트’를 쥔 공익위원들이 임기 만료로 교체되기 때문에 예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공익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영계와 노동계의 관심도 한은 보고서에서 조만간 최저임금위원회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주애진 정책사회부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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