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뉴스포털의 신속 조치에는 과정이 없다

2024. 3. 19.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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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정정보도 청구’, 언론에 재갈 악용 우려
비판 보도 포기 땐 언론자유도 ‘끝없는 추락’

2021년 정부·여당은 징벌적 손해배상과 정정, 반론보도 청구권을 강화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에 의안으로 부쳤다. 법개정을 강력하게 반대한 언론계는 통합형 자율규제기구를 설치하여 언론피해구제를 위한 혁신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신문윤리위원회와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라는 자율규제기구가 있지만, 언론피해자 구제는 담당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통합형 자율규제기구를 통해 언론피해구제와 자율적인 언론윤리실천을 하겠다고 밝혔었다. 지금 그 약속은 잊혔다.

언론은 스스로 개혁하지 못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행정규제에 이어서 플랫폼에 의한 강제적인 ‘신속 조치’가 시작됐다. 2023년 9월2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가짜뉴스신속심의센터를 설치한 뒤 신속 심의를 강화했고, 이어 네이버가 지난 3월15일 뉴스포털에서 언론 보도로 명예훼손이나 권리 침해를 당한 이용자 구제를 위해 신속 조치 방안을 내놨다. 이제 누구나 언론 보도로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생각될 때, 온라인을 통해 정정·반론 보도와 추후 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미디어영상홍보학과
이뿐이 아니다. 네이버는 정정보도 등이 청구된 기사 맨 위쪽에 정정보도 청구가 제기되었음을 표시하며, 뉴스 검색 결과에서도 ‘정정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를 노출한다. 또 정정보도 등이 청구된 기사에는 댓글을 일시적으로 닫도록 해당 언론사에 요구하기로 했다. 선거기간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확인한 선거법 위반 댓글을 즉시 삭제하고 경고 조치하며, 반복해서 적발될 때는 댓글 작성을 제한한다. 또 특정 기사에 답글을 과도하게 달 수 없도록 한 기사당 답글 개수를 1인당 10개로 제한한다.

자기 플랫폼이 없는 언론사가 마치 ‘포털이라는 부잣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며 쫓겨날 일만 걱정’하는 모양새다. 언론사가 시장에서의 불공정한 행위를 행정당국에 호소할 수도 있지만, 뉴스포털의 선택도 여야를 불문하고 포털규제를 외쳐온 정치권의 오랜 압박이었음을 생각하면 고육지책이다.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제도는 이미 촘촘하게 마련되어 있다. 언론사가 보도를 통해 개인의 권리를 침해했을 때는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언론사와 피해자 사이에서 중재와 조정을 하며, 방송과 통신을 통해 발생하는 공익과 사익에 대한 침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위법성과 유해성을 판단하여 제재하고 있다. 또 선거기간에는 3개의 선거 관련 심의기구를 통해 정당과 후보자의 권리를 신속하게 구제한다. 그러나 행정규제와 뉴스포털의 신속조치가 다른 점은 과정에 있다. 행정규제기관이나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지도 않고, 자체적인 심의 절차도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언론중재위원회 등의 심의는 언론 보도 피해의 정도와 적정한 수준의 제재를 명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처리한다. 또 위원들이 숙의하여 언론 보도의 유해성을 판단하고 정정·반론보도나 제재 여부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언론사는 설명할 기회가 있다.

그러나 이번 네이버의 정정보도 등에 대한 신속 조치는 과정이 없다. 이제 누구나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불쾌한 기사는 정정·반론보도를 청구할 수 있고, 언론사는 뉴스포털이 정정보도 청구 중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여도 달리 설명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선거를 앞두고 언론에 대한 재갈 물리기로 악용될 여지가 크다.

언론사가 뉴스포털에서 자기기사에 정정보도 청구 중이라는 파란딱지가 붙는 걸 피하려고 비판보도를 포기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은 사라질 것이다. 최근 한국의 언론 신뢰도와 언론 자유도가 끝없이 추락하는 상황에서, 신뢰 회복을 위한 혁신 기회마저 잃게 될 것이다. 언론의 독립성과 개인의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예방하고 신속하게 구제하는 일은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언론 피해 예방과 신속한 피해구제는 행정규제나 거대 플랫폼의 신속 규율이 아니라, 언론계 스스로 실천할 영역이다. 지금처럼 뉴스포털이 정치권 압력에서 뒷걸음치면서 과정을 생략한 신속한 조치로 상황을 돌파하려고 한다면, ‘언론의 껍데기’만 남은 무용한 뉴스포털로 파국만 기다릴 것이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미디어영상홍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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