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의감성엽서] 2349년으로 가다
2024. 3. 19.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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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고 난 뒤의 미래세계가 너무 궁금해 2349년으로 갔다.
그곳에서 416년 만에 무덤에서 깨어난 시체, 윌리엄 랜트리를 만났다.
그러나 죽은 지 416년이 지난 미래세계는 랜트리가 살던 그때의 세계가 아니다.
416년 만에 무덤에서 깨어났지만 랜트리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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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고 난 뒤의 미래세계가 너무 궁금해 2349년으로 갔다. 그곳에서 416년 만에 무덤에서 깨어난 시체, 윌리엄 랜트리를 만났다. 그는 1898년에 태어나 1933년에 죽은 남자로, 미국 환상 문학의 대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지구에 마지막 남은 시체’에 나오는 주인공이며 지구에 마지막 남은 무덤 속 주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무덤마저 소각해버리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그 소식을 들은 랜트리는 416년 동안 자신을 깊은 암흑 속에 홀로 가두어 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불태워 없애버린다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 분연히 관뚜껑을 열고 일어나 지상으로 걸어 올라온다. 그리곤 결심한다. 사람을 태우는 이 도시의 모든 소각장을 폭파하고, 그 시체들을 모아 내 편, 내 친구들로 만들어 이 세계와 대적하겠노라고.
그러나 죽은 지 416년이 지난 미래세계는 랜트리가 살던 그때의 세계가 아니다. 변해도 너무 변했고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절망하고 분노한 랜트리는 혹 살아생전 자신이 좋아했던 작가들이 자신을 도와주거나 용기를 주지 않을까 하여 도서관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에도 자신이 찾는 책들은 한 권도 없었다. 고전이나 명작 반열에 서 있던 책들은 모조리 다 소각되어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진 지 오래였다. 416년 만에 무덤에서 깨어났지만 랜트리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럴수록 분노와 외로움의 힘만 더 가중되었다. 어른을 만나도 아이들을 만나도 상상력이라고는 일 그램도 없는 세계.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평온하고 풍요롭고 선하게 잘 살고 있지만 아무런 갈등도, 고통도, 공포도 못 느끼고, 범죄나 경찰서, 법정이란 단어는 알지도 못하고, 어떤 불면증도, 긴장감도, 기대감도 없는 곳. 과연 그곳을 미래의 낙원이라 할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 단테, 소크라테스, 에드거 앨런 포를 비롯한 우리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이 모두 분서갱유당한 곳. 과연 그곳을 우리가 원하는 미래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랜트리는 결국 정체가 탄로 나 소각장으로 끌려가 소각로 속으로 사라진다. 그와 함께 2349년 이전의 모든 기억, 그와 함께 살고 함께 존재했던 모든 기억도 영원히 불덩이 속으로 사라진다. 인류의 모든 기억이 불에 타 없어지는 것이다.
마치 조지 오웰의 ‘1984’와 헉슬리의 ‘위대한 신세계’를 합쳐놓은 듯한 이 책을 덮으며 가슴 미어지는 충격과 공포, 으스스한 한기와 함께 차오르는 비통을 느꼈다. 예술과 인문학의 대몰락은 과거, 현재, 미래를 망라해서 누구에게나 가장 큰 재앙이며 큰 비극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에 마지막 남은 시체’는 아득한 미래 이야기이면서도 이미 우리가 지나온 과거이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현재이기도 하다. 그곳이 어디든 조금이라도 거추장스럽거나 불필요하면 모조리 소각해 없애버리는 곳에서는 결코 누구도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책을 태우는 곳에서는 장차 사람도 태우리라’는 하이네의 시구가 어떤 경종도 울리지 않는 곳에서는.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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